<대체역사소설> 흐르는 강 116

대원군 집정기 무장개화세력의 봉기, 그리고 다시 쓰는 조선의 역사!

등록 2005.08.09 20:04수정 2005.08.10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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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칠과 조금산이가 흙과 땀으로 범벅이 된 옷을 털며 막사에 들어섰다.

"충성! 점백이 초관님, 아니 중대장님. 회의 안 가십니까요?"


이덕칠이 옆에 있어서인지 조금산이가 경례까지 올리며 격식을 차렸다. 이덕칠이었다면 또 인사를 차린다고 점 초관 어쩌고 했을 것이다.

"응, 안 그래도 가려던 참이었다."

읽고 있던 언문 교범을 덮으며 점백이가 일어섰다.

"그런데 중대장님, 그래도 정위 벼슬이면 나름대로는 종3품이나 진배가 없을 진데 초관이니 별장이니, 첨절제사니 뭐 그런 이름이 아니어서 영 값어치가 없어 보입니다요."

조금산이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게 말이다. 내동 잘 쓰는 편제명을 왜 홀라당 다 바꿔놔서 머릿속이 영…."

점백이도 속내를 드러냈다. 어차피 개화군이야 조정의 정부군과 편제를 달리 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그래도 워낙에 생소한 부대단위와 직급명인지라 어색한 감이 많았다.


"그래도 새 술은 새 독에 담는다고, 개화군은 개화군 실정에 맞게 바꿔야지요 뭐."

이덕칠은 그래도 반감이 적은지 개편을 두둔하고 나섰다.

"그래봤자, 그게 서양 편제를 우리식으로다 바꾼 거라면서요? 그게 무슨 자주인고? 결국 조선 것 버리고 양놈 것 들여온 것밖엔 안 되잖수?"

조금산이가 반박했다.

"아, 그럼 무기가 다르고 전술이 다른데 어찌 옛법을 따르겄는가."

이덕칠은 여전히 개편옹호의 입장을 고수했다.

"하긴, 예전엔 그저 시키는 대로 하면 됐는데 그래도 허울이 장교가 되어 놓으니까 이거 영 맘이 무거워서…."

점백이가 더 이상 이야기 거리를 만들지 않고 중도에서 접었다.

"저도 명색 대총이랍시고, 아니 소대장이랍시고 직임에 매인 몸이다 보니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닙디다요."

조금산이도 얼른 말머리를 돌렸다. 굳이 대거리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아하는 점백이의 성향이었고 누구보다도 재빨리 점백이의 생각을 읽어내는 이가 조금산이었다.

그렇게 말없이 한참을 걸었다.

"오늘은 그 양인 교련관이 무슨 말을 전해줄까요?"

"말이 회의지 코쟁이 교관의 혼잣말이 아니더냐."

간만에 꺼낸 조금산이의 말에 점백이가 마땅찮은 대꾸를 했다.

"그래도 배울 점은 많더이다. 그네들의 무기 이야기도 그렇지만 전쟁사와 그들 전술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도 머릿속에 무슨 그림인가가 그려지는 것 같던데… 비록 낮엔 흑호대 조련병 교육 때문에 밤에만 참석하는 반쪽짜리 무관후보생 교련이 되었지만 나름대로 얻은 성과가 큽니다요. 소인은. 그치들 얘길 듣다보면 어느새 내가 장교가 되었구나 실감도 나고."

이덕칠은 성격이 곧은 것인지 눈치가 없는 것인지 연신 상관인 점백이와는 다른 의견을 서슴없이 내었다. 아마도 아래에서부터 한 솥밥 먹고 같이 고생한 터라 아직도 형님 아우하던 습관이 남아서인 듯했다.

"그래 인석아 너 잘 났으니 너나 많이 듣거라. 난 그저 졸다가 올란다."

점백이도 편하게 받았다.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아 금세 사령실이 있는 막사에 닿았다.

점백이 일행이 들어섰을 땐 이미 수영과 해병 그리고 본영의 무관후보생들 이십여 명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서오시오. 오늘도 반갑습네다."

이들 셋이 들어서자 억양이 약간 서툰, 그러나 유창한 발음의 조선말이 들려왔다. 목소리가 난 탁자의 끝 쪽 응달에 조선 사람보다 키가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는 서양인, 다니엘 정위가 서 있었다.. 그의 부관 겸 교관인 특무정교(特務正校) 레이먼도 단정한 자세로 옆에 서 있었다.

지금은 보름 넘게 보아오며 익숙해진 터였지만 점백이는 서양 군인을 처음 보았다. 운산의 본영에 있을 때 군기창에 서양 장인 둘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고 먼발치서 그들인 듯한 사람을 목격한 바도 있지만 처음 해도에 닿아 무관교육을 받을 때 이들을 대하고 기겁을 하는 줄 알았다.

우리가 서양 군인에게 교육을 받는다. 점백이에겐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새삼 개화군의 존재가 멀면서도 크게 느껴졌다. 듣기로는 초기 개화군 교련은 이들과 유학파 지휘관들이 모두 담당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자체 교련이 가능해지자 교련관을 모두 조선사람이 맡기고 가급적 이들의 존재는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는데 근래 초급장교 양성을 위한 무관후보생 교련의 대부분을 이들이 전담하고 있었다.

영수나 부영수와 함께 조선에 들어왔다면 길어야 4년 안 되는 세월일 터인데 다니엘 정위의 조선말은 매우 유창했다. 강약과 억양의 조절이 다르다 뿐이지 어휘는 무척 매끄러웠다.

"지금 유럽에선 워털루 전투 이후 약 50년 동안 이루어진 발사무기의 개량으로 전술은 혁신의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벌써 내가 겪은 주들 사이의 전쟁 (남북전쟁)에서도 초기 보병의 딱딱한 대형은 사라졌고, 낡은 유형의 기병전이나 보병에 의한 급습작전도 여의치 않게 되었습니다. 삽과 도끼는 미래 전장에서 총만큼이나 중요한 장비가 될 것이며, 흉벽이나 사격호가 성곽을 대신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이제 까지 습진과 진퇴, 진영의 설점 위치, 포병의 운용 등에 관한 교육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쓰고 있는 라이플과 캐논은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쓰고 있는 무기와 비슷하면서 상당히 다른 어떤 특성이 있으므로 이를 바탕으로 나름의 교리를 시급히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지휘관의 역할과 책무에 대해서 논의를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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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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