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와 <조선>에 연일 얻어터지는 방송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다매체 시대, 방송사 위기의 본질은

등록 2005.08.23 09:44수정 2005.08.2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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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치니까 <조선일보>가 받았다. 흔치않은 현상이다.

<한겨레>가 어제, 외주 드라마 제작업체가 작성한 '공중파 방송사 상납 내역'을 보도하자 <조선일보>는 오늘부터 아예 '검은돈에 흔들리는 공중파TV'라는 기획 연재물을 싣기 시작했다. 또 <한겨레>는 오늘자 사설에서 '땅에 떨어진 방송의 신뢰'를 지적했다.

두 신문이 공히 지적하는 바는 '위기'다. 보도국 간부와 기자들이 브로커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상납 받고, 제작 간부와 PD들이 하청업체로부터 돈을 상납 받는 구태가 신뢰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맞다. 이의를 제기할 여지를 한 치도 허용하지 않는 당위론적 비판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방송사 구성원이 금품과 향응을 상납 받는 행태를 보면서 곱씹어야 하는 게 신뢰의 위기만은 아니다. 그런 행태가 종국에는 시장에서의 고립을 자초할 것이라는 점, 그래서 신뢰의 위기뿐만 아니라 경쟁력의 위기를 부를 것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밝혀진 방송사 구성원의 행태는 한마디로 '갑'의 횡포로 정리될 수 있다. 상호 수평적 계약원리를 비웃는 한국식 시장 관행, 즉 '을'이 '갑'에게 고개를 숙이도록 강요하는 관행이 고스란히 답습된 게 이번 사건의 요체다.

그럴 만도 하다. <시사저널>이 지난해 10월, 10개 분야 전문가 10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한국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매체 1위는 < KBS >, 3위는 < MBC >로 나타났다. 신문을 앞서는 영향력을 가진 방송사 보도국 간부·기자들이 목에 힘을 주는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일지도 모른다.


외주제작사가 "제 살 깎아 방송사 먹여 살리는" 처지에 빠진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무리 잘 만든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교양 프로도 방송 화면을 타지 못하면 수익 모델을 찾을 수 없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을'의 생존방식은 고개 숙이는 각도를 60도에서 90도로 더 넓히는 것이다.

'갑'의 횡포가 한국식 시장 관행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그 역가능성을 내포한다. '갑'의 우월적 지위가 약화되거나 뒤집히는 시장 상황이 조성되면 '갑'의 횡포도 새 운명을 맞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앞서 언급한 <시사저널>의 여론조사 결과는 '갑'의 현재와 미래를 극명하게 나눠 보여준다. 비록 < KBS >와 < MBC >가 영향력 면에서 1, 3위를 기록했지만 추이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 KBS >는 2001년 65.3%였던 응답률이 2004년에 57.9%로 떨어졌으며 < MBC >도 46.0%에서 39.4%로 하락했다.

방송사의 이 같은 하락세는 다매체 시대의 도래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 인터넷이 매체시장에 쓰나미를 불러일으켰다면 DMB로 대표 되는 퍼스널 미디어는 연타로 여진을 일으키고 있다.

다매체 시대가 가는 방향은 뚜렷하다. 대중이 아닌 개인, 공동이 아닌 개별이 강조되는 다원적이고 맞춤형의 컨텐츠 제작을 지향한다. 하지만 방송사는 이런 추세에 발맞출 수 없다. 다수를 껴안아야 하는 매스 미디어의 숙명 때문만은 아니다.

방송사가 매체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편성·제작·보도기능을 독점하면서 시장을 과점한 덕이다. 하지만 볕이 강하면 그늘이 짚게 드리우는 법이다. 이제 와선 이게 독이 되고 있다. 독점의 여파로 빚어진 조직 비대화 현상이 기민한 대처를 가로막고 있다.

속보 경쟁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뉴스를 스트레이트에서 해설·기획 위주로 바꾸고 싶어도 현재의 보도국 편제가 이를 허용치 않는다. 장르와 코드가 분화되면서 전문성이 강조되는 영상 컨텐츠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작부문을 아웃소싱하거나 자체 분화하려면 제작국 편제를 대폭 뜯어고쳐야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신생 매체가 강력히 치받는데도 조직적 대응력은 현저히 약화돼 있는 사면초가의 상황에서도 일부 방송사 구성원들은 구태를 답습하고 있다. 지금이 어느 때인지조차 가늠해볼 의향이 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일부 구성원들은 '조직'과 '나'를 나누고 있다. '나'의 생존방식으로 '지금 이대로'를 외치고 '조직'의 생존방식으론 외주제작비 '후려치기'를 동원하고 있다.

미래가 현재의 연장선이란 사실을 잊고 사는 것, 이것이 방송사 위기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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