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교육특구 해체하면 폭동 일어난다?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정부의 '책상물림식 발상'과 <조선>의 논리 뒤집기

등록 2005.08.24 09:45수정 2005.08.2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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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꼬리가 개를 흔드는 격이다."

<경향신문>이 전한 건국대 손재영 교수의 말이다. 부동산 대책의 일환으로 고등학교 학군을 광역화하려는 정부 방안은 "교육이 부동산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인데 부동산을 위해 교육제도를 바꾸는 것"으로 본말이 전도된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고교 학군을 광역화해 선지원 후추첨 배정방식을 확대하겠다는 정부 방안에 대한 반응은 이처럼 비판적이다. 정부가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것이다. 참교육 학부모회의 박경양 회장은 "서울의 특목고가 모두 강북에 있는데 강북과 강남의 부동산문제 해결에 도움이 됐느냐"(<경향신문>)고 반문했고, 서울 대치동의 한 학원장은 "강남에 거주하려는 것은 고교가 우수해서가 아니라 좋은 학원이 많기 때문"(<조선일보>)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경험적 비판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무수히 많다. 그 예 가운데 하나가 지난 16일 <한겨레>가 보도한 사교육비 지출과 수능 성적 간의 상관관계다. 고려대 김경근 교수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월소득 500만원 이상 가구 자녀의 월 사교육비 지출액은 63만 7500원이었던 반면에 월소득 300만원 미만 가구 자녀의 월 사교육비는 20만 3300원이었다. 두 집단 학생들의 2005학년도 수능 평균점수는 각각 316.86과 291.12였다. 25.74점의 격차를 나타낸 것이다.

그래도 이는 양호한 편이다. 서울 강남지역 학생들과 지방 읍면지역 학생들의 수능 평균점수는 무려 43.85점이나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교 성적이 '돈 먹는 하마'라는 사실이 다시금 확인된 것이다.

현실을 도외시 한 정부의 '책상물림식 발상'은 결국 강북 출신 고교생들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할 것이다. 강남 고교에 진학한 강북 학생들은 성적 격차에 따른 열패감뿐만 아니라 경제·문화적 멸시에 따른 모멸감까지 떠안게 된다.

강북 학생들 중 공부 잘하는 학생만 강남을 지원할 경우 '강남 교육 특구'는 더욱 번창하고 강북 고교는 더 극심한 공동화 현상을 빚을 수도 있다.

자식을 강남 고교에 보낸 학부모들이 좀 더 나은 통학 여건을 만들기 위해 '다리 하나만 건너면 강남'인 곳으로 몰려들 경우 집값 상승 영역이 확대될 수도 있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게 아니라 흙탕물만 일으키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학군 조정의 두 시각... <조선>은 강남 대변, <한겨레>는 비강남 입장

그렇기에 정부의 고교 학군 조정 방안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정당하다. 남는 문제는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이 지점에 이르면 목소리는 갈라진다.


<조선일보>는 1면에서 "강남 거주 학생이 타 구(區)에 배정받는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어 집단 반발이 예상"된다고 진단한 뒤 해설면에서 "잘못했다간 강남에서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안"이라는 서울시교육청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반면 <한겨레>는 정부 방안이 실행될 경우 "(고교)평준화의 뼈대를 무너뜨릴 수 있다"며 "선지원, 후추첨 배정제가 확대되면 선호도에 따라 학교간에 서열이 매겨져 평준화의 근본 취지에 어긋난다"는 전교조 한만중 대변인의 말을 소개했다.

두 신문 모두 정부 방안에 비판적이지만 그 차원은 전혀 다르다. <조선일보>는 강남의 시각에서 정부 방안을 바라봤고 <한겨레>는 비강남 입장에서 정부 방안을 비판했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정부가 "개꼬리로 개를 흔드는" 상황을 연출한 마당이니 고교 교육제도에 대한 한바탕 실랑이는 피해갈 수 없게 됐다. 정부 방안이 나오자마자 그 소식을 1면에 전진 배치한 언론이 나름대로 해법을 내놓을 것은 자명한 사실, 신문별 진단법에 따라 해법도 다르게 내놓을 것이다.

지금 예상할 수 있는 언론의 해법은 크게 두 개다. <조선일보>의 시각을 고수하는 언론은 "강남을 죽이면서 하향평준화를 지향하는" 정부 방안과는 정반대의 해법을 제시할 것이다. <한겨레>의 시각을 지지한 언론은 강남 비강남을 막론하고 교육 평등의 원칙이 훼손되지 않는 차원에서 해법을 모색할 것이다.

다급해진 <조선>, 고교평준화 반대에서 찬성으로 논리 뒤집기

하지만 이런 예상은 '크게 본 것'일 뿐, 현미경을 들이대면 아주 기이한 현상을 추가로 발견할 수 있다.

<조선일보>는 그동안 "창의력을 죽이는 획일적인 평준화제도"를 맹렬히 비판해왔다. 따라서 전교조 한만중 대변인의 진단처럼 정부 방안이 고교간 서열화를 조장한다면 <조선일보>로선 무조건 내칠 방안은 아니다. 그런데도 반대를 하고 있다. 왜일까?

<조선일보>는 "강남에서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서울시교육청 관계자의 말을 전하면서 이런 지적을 덧붙였다. "강남 거주 학생이 추첨에 밀려 집에서 가까운 학교를 놔두고 다른 구에 있는 먼 학교로 배정받는 게 불가피하다. 가령 70%를 근거리 배정 원칙으로 배정한다고 해도 30%는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우려하는 이런 '불합리성'은 강남 학생이 빠져나가고 강북 학생이 유입되는 현상이다. 당장은 고교간 서열이 매겨지는 현상이 나타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봐선 강남 명문고의 경쟁력마저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있다. 이른바 '강남 순혈주의'에 터잡은 시각이다.

물론 <조선일보>가 '강남 순혈주의'를 주장한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하지만 근거리 통학 원칙에 입각한 <조선일보>의 비판이 관철된다면 '강남 순혈주의'는 온전히 보존된다.

또 하나 눈여겨 볼 대목은 <조선일보>의 논리다. <조선일보>가 내세우고 있는 근거리 통학원칙은 고교 평준화제도 지지자들의 논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고교간 서열을 매겨서는 안 된다는 대원칙이 확고히 유지된다면 학부모들이 고려해야 할 사안은 자식들의 통학 여건 확보다. 반면 고교 평준화제도를 부정하고 이른바 '명문고'를 집착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통학 여건은 부차적 문제이다.

따라서 <조선일보>의 우려는 고교 평준화제도를 지지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것이지, 엘리트 교육을 신봉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것은 아니다.

고교 평준화제도 폐지란 '먼 산'을 쳐다보다가 도리어 손에 쥔 떡인 '강남 교육특구'마저 잃을 수 있는 상황에 내몰려 상대의 논리를 차용하는 <조선일보>. 다급함에 쫓겨 빚은 촌극이라고 이해하기엔 <조선일보>의 진폭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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