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의 최남단 마라도에서 보내는 가을편지

<포토 에세이> 끝은 다시 시작일 뿐

등록 2005.08.24 16:45수정 2005.08.24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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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임
끝없이 이어질 줄만 알았던 무더위가 꼬리를 잡힌 듯 계절은 벌써 가을의 시작이다. 30도를 오르내리던 수은주가 한 풀 꺾이니 세상은 가을 준비에 여념이 없다.
한낮에 내린 소낙비가 수은주의 동맥을 잘라 버리니, 벌써 한라산의 기온은 13도란다.

김강임
가을, 가을하면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 들녘의 만추, 울긋불긋 붉어지는 산, 그리고 햇빛에 익어 가는 과일, 풀밭에서 울어대는 귀뚜라미. 사람마다 가을에 대한 느낌은 다르겠지만,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소품들은 참으로 많다.


하지만 세상이 가을색인데 마음이 풍요롭지 못하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그래서 가을을 찾아 국토의 최남단 마라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올 여름 섬 기행은 원없이 해 본 것 같다. 비양도와 우도, 그리고 마라도까지.

김강임
제주도에 살면서도 섬 속으로 떠나는 나를 두고 혹자는 "팔자 좋은 인간"이라고 비웃기도 한다. 팔자 좋은 인간!. 팔자 좋은 인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람마다 추구하는 욕구가 다른 법이니 인간의 욕구 마지막 단계는 무엇일까? 그러나 내가 추구하는 풍요는 늘 '떠나는 작업'이니 팔자 좋은 인간이란 말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김강임
시시각각 변해 가는 것이 세상이라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의 색깔인 것 같다. 그 곳에는 가을이 찾아왔을까? 그 곳의 가을 색은 어떤 빛깔일까?

김강임
섬에 대한 호기심은 참 야릇하다. 똑같은 세상인데도 그곳에 가면 피안의 세계에 안길 수 있을 것 같은 착각. 그 착각 속에서 자유를 누리는 어리석음. 그것이 떠나는 자의 행복은 아닌지 모르겠다.

마라도 하면 사람들은 국토의 최남단을 연상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지도의 마침표. 남쪽의 끝. 끝이 주는 의미는 참으로 슬프다. 그러나 그 슬픔 속에서 기쁨을 느끼는 곳이 바로 끝의 매력이다. 끝은 다시 시작의 연속일 뿐이니까 말이다.


김강임
푸른 바다, 푸른 파도 그리고 푸른 하늘, 지상에 펼쳐진 모든 것인 푸름 뿐인 지상낙원. 이곳에서는 젊은이도 늙은이도 모두가 파랄 뿐이다.

하늘이 익어 가면 무슨 색일까? 바다가 익어 가면 무슨 색일까? 가을 색이 파랗다고 하면 사람들은 모두 내게 미쳤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바다에 쇼를 부리는 가을하늘. 가을하늘에 여백을 채우는 뭉게구름. 공허롭지만 풍요로운 국토의 최남단 마라도. 그 마라도에서 가을을 지근지근 밟고 4.2km의 해안선을 따라 걸어본다면 아마 푸른 창공에 미쳐 지난 여름의 더위도, 힘겨움도 스르르 녹아버릴 것이다.


김강임
섬은 여름을 해탈하고 싶은 사람들의 종착역이다. 무더위와 땀방울, 스트레스, 공해, 날마다 매스컴에서 쏟아지는 위기 소식도 그 곳에 가면 망각하게 된다. 그이유는 파란 잔디를 밟는 순간 일상의 피곤함을 잠재우기 때문이다.

김강임
나무하나 없지만 그늘이 있는, 차가 없지만 불편하지 않은, pc방이 없지만 세상 소식이 궁금하지 않은, 그래서 조금은 외롭고 조금은 자유로운 마라도의 가을.

김강임
끝이 다시 시작임을 일깨워주는 국토의 최남단 마라도. 마침표가 쉼표로 변해 한 줄기 여유로운 가을 햇빛을 주는 섬 속의 섬 마라도. 마라도는 지금 가을이다. 마라도는 지금 하늘이 익고 바다가 익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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