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깃배 구경 힘든 끄트머리 섬

김대중 전 대통령 고향 '하의도' 2편

등록 2005.09.15 15:46수정 2005.09.15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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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잠을 깨운 것은 교회종소리였다. 벌써 집주인 윤씨 어르신은 기침을 하셨는지 인기척이 들린다. 객지 잠답지 않게 푹 잔 탓인지 몸이 가볍다. 마루 밖에 달아 놓은 유리창 너머로 감나무가 실루엣 자태를 뽐내는 걸로 보아 곧 동이 터올 것 같다.


안방을 내주고 건넌방에서 주무신 두 어른신은 벌써 어제 오후에 갑자기 내린 비로 창고에 넣어둔 고추를 널어놓고 밭에 나가시는 것 같다. 필자도 집에서는 곧잘 일찍 일어나 설치는 통에 '늙어서 잠이 없다'고 아이들에게 핀잔을 받아왔지만, 이곳에서는 늦잠꾸러기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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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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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해안산중 '빈촌'의 아침

"명태, 조기, 전어, 병치, 장대, 서대, 꽃게, 오징어, 간고등어, 생고등어 사세요."

뒤척이며 얼핏 잠들었던 필자를 깨운 것은 생선장수의 트럭이 질러대는 소리였다. 새벽 6시쯤 된 것 같다. 하의도 오림리에서 맞는 아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오림리에 사시는 윤씨 어르신을 찾은 것은 해방 이후 오림리의 '농민항쟁'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300여 년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서 끊이지 않는 투쟁을 했던 하의도 농민들. 그 중 오림리와 대리는 항쟁을 주도한 대표적인 마을이다. 지금 대리에는 농민항쟁기념관이 만들어져 있다. 그 때문에 오림리를 먼저 찾았다. '장소'는 늘 권력과 함께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어제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저녁도 얻어먹고 잠자리까지 신세를 진 것이다. 하의도에는 변변한 숙소도 없다. 눈치를 보지 않고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은 중국집뿐이다.


빈방이 많이 있지만 어디 여관처럼 손님 맞을 준비를 해 놓은 방들인가. 육지에 농촌도 모두 도시로 도시로 나간 탓에 노인만 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섬은 말할 것도 없다. 오림리의 경우 70여 호가 거주하는데 이중 30여 호가 '안노인'만 살고, 나머지 40여 호는 늙은이 둘만 살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육지에서 '교수' 이름 붙이고 불쑥 찾아온 필자에게 자고 갈 것을 청하고 자리를 내준 것이 안방이었다. 사양을 하였지만 그보다 '권'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두 분을 더 편하게 해 드릴 것 같아 그냥 안방에서 잠을 청했었다.


광주에 사진을 찍으면 늘 인화를 맡기는 곳이 있다. 그런데 그 집주인이 내가 찍은 사진에 유독 많은 관심을 보였다. 처음에는 잘 찍어서 그런 줄 알았다. 근데 그것이 아닌 것 같았다. 나중에는 사진관 주인이 손님이 찍은 사진에 관심을 가지고 조언을 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주인은 내 사진 속에서 '고향'을 찾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주인의 고향이 하의도였던 것이다. 안방을 내주고 건넌방에서 잠을 청한 윤씨 어르신 내외가 바로 주인의 부모님이다. 그런 인연으로 생면부지의 아들 뻘 되는 육지 것에게 밥도 주고, 잠자리도 마련해주고, 평생 살아온 이야기도 솔직하게 말씀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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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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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이지만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볼 셈으로 주섬주섬 옷을 챙겼다. 필자는 늘 사람을 만나면 이야기를 나눈 후나 전에 마을을 돌아본다. 오림리는 자연마을이지만 신촌, 벗원, 유호리, 봉도리 등 자연마을을 합한 대표 행정리이기도 하다.

'벗원'이란 마을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곳에서도 '원'을 막아 소금밭과 농사지을 땅을 일군 모양이다. '벗'이란 '소금밭'을 의미한다. 그래서 지명 중에 '버텅', '버턷', '벗' 등의 지명이 들어가면 열에 아홉은 옛날 소금을 구웠던 곳이다. 하의도는 인근 신의나 비금, 도초와 같이 많은 염전을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고개를 넘어 마을 지나치면서 보면 모든 마을이 작은 염전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을 앞 2번국도 2차선 중 한 차선은 고추와 콩대가 차지했다. 자리를 잡지 못한 농민들은 옥상이나 도시로 떠난 빈집 마당 등 틈만 있으면 가을걷이를 한 밭곡식을 말리느라 분주했다. 그리고 담장 위에도 묶인 깻단이 걸려 있다. 추석을 앞둔 탓인지 아침 일찍 벌초를 하고 내려오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봐도 어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고, 육지에서도 산촌 느낌이다.

"신안에서 제일 가난한 섬이면 전국에서 가장 가난한 섬이제."
"하의도는 끄트머리여."

어제 저녁에 윤씨 어르신이 하신 말씀이다. '끄트머리'를 강조하신 것은 두 가지 의미이다. 경제적으로 가장 낙후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뱃길이 끝이라는 것이다. 더 이상 하의도를 지나 경유할 섬이 없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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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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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깃배는 없는 끄트머리 섬

섬 마을에서 생선장사들이 아침부터 설치는 것이 생뚱맞아 보이지만 하의도의 마을들을 돌아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하의도 관문인 웅곡리 포구에서도 비릿한 냄새와 어민들의 술렁임도 전혀 느낄 수 없다. 오히려 커다란 농협건물이 앞을 가로막는다. 도로마다 콩과 고추를 말리느라 분주한 주민들. 대부분 마을이 있고, 작지만 경지정리가 잘된 논이 있고, 마지막으로 바다와 갯벌에 접한 곳에 제방이 쌓아져 있고 염전이 있다.

염전이 발달한 곳에는 반드시 좋은 갯벌이 있다. 제방을 쌓아 물을 가두고 햇볕에 바닷물을 증발시켜 만드는 천일염도 그렇지만, 해방 전에 불을 때서 소금을 굽던 '화염'(활염)도 반드시 갯벌이 있어야 한다.

화염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화염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은 갯벌 외에도, 나무(소나무라면 더욱 좋다), 섯등(염정), 염막, 염분(솥) 그리고 충분한 노동력이다. 갯벌을 쟁기와 써레로 갈고 마르면 다시 바닷물을 뿌리고 이렇게 대여섯 번 반복한다. 이후 개흙을 댕기질하여 곱게 부순 후 긁어모아 밑에 솔가지나 풀을 깔고 위에 쌓는다. 이를 섯등이라고 한다. 그 위에 바닷물을 부어 개흙에 묻은 소금을 씻어내어 염도가 높은 바닷물을 모은다. 이렇게 모은 염도가 높은 바닷물을 염막 안에 염분에 넣고 불을 때서 소금을 만드는 것이다.

하의도에는 전통소금 만들기 체험장이 있는 후광리 외에도 오림리, 대림리에서도 화염을 만들었으며, 신안 지역은 비금, 도초, 증도, 신의 등 여러 지역에서 전통방식으로 소금을 만들었다. 1947년 비금도에 우리 손으로 최초의 근대염전인 천일염전이 만들어지면서 전통염전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늦게까지 전통소금이 만들어진 곳도 196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 대부분 사라졌다. 하의도 경우도 제방축조기술이 발달하면서 갯벌을 막고 염전과 논을 만들면서 전통소금을 만드는 염전은 사라졌다.

a 전통 소금을 굽던 가마솥

전통 소금을 굽던 가마솥 ⓒ 김준


a 염분이 높은 갯흙을 갈고 모으는 '써레'와 '나레'

염분이 높은 갯흙을 갈고 모으는 '써레'와 '나레'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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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소금 체험장 옆에는 아직 문을 열지 않는 소금전시관 건물이 과거 염전자리에 들어서 있다. 이곳에는 과거의 소금을 만드는 과정, 소금관련 생활 이야기 등이 전시될 것이라고 한다. 아직 확인할 수 없어 어떻게 내용을 구성할지 알 수 없지만 걱정스럽다. 재작년에 개관한 전통소금 제조시설을 이용한 소금생산은 예산 때문에 지금까지 한 번도 시연을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신안지역은 전국의 대부분 소금을 생산하는 천일염의 산지이다. 염전을 자원화하는 방안은 매우 바람직한 시도지만 하의도가 적절한 지역인지 의문스럽다. 외지인들이 특히 어린이들이 2시간 이상 배를 타고 와서 소금을 보는 것, 체험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과 함께, 같은 행정구역 안에서 어떤 지역이 선점하게 되면 다른 지역이 같은 자원을 이용하고 지원을 받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행정적인 조정과 지원이 아쉬울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어지는 기사는 '하의도 3편' '땅, 땅거리는 권력에 똥침을 놓은 하의도 사람들'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어지는 기사는 '하의도 3편' '땅, 땅거리는 권력에 똥침을 놓은 하의도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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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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