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국악기 제조는 내 평생 목표"

[전통문화를 상품으로 빛내는 기업인 만나기 ③] (주)궁중국악기 대표 박성기

등록 2005.09.26 23:31수정 2005.09.27 15:17
0
원고료로 응원
인터뷰하는 (주)궁중국악기 박성기 대표이사
인터뷰하는 (주)궁중국악기 박성기 대표이사김영조
전통문화를 그냥 놔두는 것보다 올바른 계승을 통한 상품으로 빛낼 때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 그 상품을 부단히 알려내는 것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전통문화를 올바로 상업화하는 기업인들을 찾아서 그들의 철학과 기업관을 들어보고, 대중들에게 소개하려고 한다. 그 세 번째로 최고의 국악기의 개발과 보급에 평생을 건 (주)궁중국악기 박성기 대표이사를 만나본다.

성악이든 기악이든 악기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악기는 음악의 바탕이라는 것이다. 그건 국악도 마찬가지이다. 기악은 물론이지만 판소리에도 '1고수 2명창'이란 말이 있듯 북의 역할이 중요하고, 민요에는 장구가 필요하고, 풍물굿에선 바탕이 되기도 한다.


하남의 그윽한 골짜기 속에 아름답게 펼쳐진 (주)궁중국악기 본사에 다다랐다. 들머리에는 아름다운 개랑(매우 좁고 얕은 개울)이 있고, 그 뒤로 언덕 위의 하얀 건물이 보인다. 이 하얀 건물이 바로 궁중국악기의 전시장 겸 본사이다. 박 사장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에 눈에 번뜩 뜨이는 것이 있다. 바로 폭포였다. 깊은 골도 아닌데 웬 폭포가 있을까?

세 군데에서 물줄기가 떨어지고 그 아랜 금붕어가 노니는 호수가 있다. 물줄기 하나는 원래 있었던 물길이지만 두 군데는 박 사장이 의도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작은 호수엔 철갑상어도 10마리나 있었다고 하는데 지난번 폭우에 한강으로 쓸려나가고 한 마리만 남았다고 한다.

궁중국악기 전경
궁중국악기 전경김영조

궁중국악기의 폭포
궁중국악기의 폭포김영조
2층의 사장실로 올라갔다. 사장실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작은 어항에는 특이하게 금붕어가 아닌 부레옥잠이 있다. 부레옥잠은 연못 따위에 관상용으로 기르는데 부영양화를 일으키는 질소와 인을 먹어치워 물을 깨끗하게 하며, 어린 물고기나 새우의 좋은 자람터가 된다고 한다. 아마도 그의 철학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인터뷰를 하러 가면서도 질문지를 준비하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나의 이런 생각은 적중했다. 거의 20년 가까이 국악기에 빠져서 살아온 사람답게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 국악기에 빠지게 된 사연은?
"우연히 고향 선배의 국악기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됐다. 거기서 국악기 만드는 일을 거들며, 틈틈이 일을 배우면서 차츰 국악기에 빠지게 됐다. 국악기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내가 평생 해야 할 일이란 결심을 굳히고 1년 만에 국악기 공장을 차렸다."


궁중국악기에서 만드는 가야금
궁중국악기에서 만드는 가야금김영조
- 20년 만에 내로라하는 선배 국악기 장인들을 제치고 우뚝 설 수 있었던 까닭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처음부터 최고의 국악기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일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20여 년을 죽을힘 다해 뛰었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최고의 장인들은 대를 이어서 악기를 만들던지 나보다 훨씬 오랫동안, 이 일에 매달린 분들이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국악기의 주재료인 오동나무를 건조하는 방법을 고민하던 끝에 어떤 화학약품을 쓰면 쉽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먼저 적은 양으로 실험을 했었어야 했는데 자만에 빠져 고향집 마당에서 많은 양을 한꺼번에 작업했다. 마을은 온통 퀴퀴한 냄새로 가득 찼고 그 작업도 실패로 끝났다. 나무를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말려서 악기를 만들었던 조상의 슬기로움을 몰랐던 것이다. 이로 인해 나는 큰 타격을 받았는데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 같다."


- 어떻게 다른 장인들과 차별화를 할 수 있었나?
"나는 수없는 실험과 연구를 밥 먹듯 했다. 머리가 안 좋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그 과정에서 '대금 제조방법'과 '해금 주화' 특허를 받았고, 실용실안 8건, 의장등록 1건의 실적을 냈다. 나는 그저 선배들의 방법을 답습하고 싶지는 않았다. 안 되면 그냥 포기하지 않고, 직접 해본 다음 왜 안 되는지 고민했다.

악기의 재료, 나무를 살펴보는 박사장
악기의 재료, 나무를 살펴보는 박사장김영조
예전부터 나무를 오줌이나 소금물에 담그면 소리가 좋아진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실험을 해보았다. 오줌의 경우 요소성분이 있어 나무를 삭히기 때문에 소리가 약간 좋아졌지만 소금은 나무의 모공을 막아 오히려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나는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무조건 다 해보았다. 그 때문에 자재도 많이 버렸고, 많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그로 인해 확실한 차별화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악기를 만드는데 여러 가지 공정이 있다. 그냥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하나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우린 그 공정을 하나라도 생략하는 법이 없다. 하지만, 어떤 악기사는 원가를 줄인다는 생각에 몇 공정을 빠뜨리기도 한다. 이것은 결국 소리의 차이를 가지고 온다."

그는 나무를 1년 동안 말리면 100장 중 99장은 쓸 수 있지만 명품은 안 나오고, 3년을 말리면 50장밖에 쓰지 못하지만 그중에 분명 명품이 나온다고 말하며 악기는 공력을 들이는 만큼 소리가 나오는 것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작은 공장에서는 칠이나 조각 등 많은 부분이 외부에 하청을 주기도 하지만 궁중국악기에선 모든 공정을 내부 각 부분의 장인들이 일관되게 작업하기 때문에 그것이 좋은 악기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 여기까지 오는데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초창기엔 지금처럼 국악이 인정받지도 못했고, 따라서 국악기의 수요도 많지 않았기에 매출을 올리는데 어려움이 컸다. 한 달 매출이 100만 원 내외에 불과했다. 하지만, 어디 모든 일이 쉽게 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생각해보니 다 성장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었던 것 같다."

25현 슬
25현 슬김영조

앞줄의 악기들:와공후, 당비파, 향비파, 해금, 월금, 뒤는 종묘제례악 모형
앞줄의 악기들:와공후, 당비파, 향비파, 해금, 월금, 뒤는 종묘제례악 모형김영조
- 이 사업을 후대에 계승시킬 생각이 있는가?
"지금 두 아들 모두 대학에서 국악을 배우고 있다. 한 아이는 아쟁을, 한 아이는 대금을 전공한다. 그 까닭은 국악기를 만드는 사람이 국악을 모르면 제대로 된 악기를 만들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두 아들이 잘 계승하기를 바랄 뿐이다."

- 앞으로 계획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국악기 연구를 계속할 것이다. 그래서 누가 쓰더라도 신뢰받을 수 있는 악기를 만들겠다. 또 다른 꿈은 이 자리에 국악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박물관만이 아닌 국악공연을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두어 온 국민 누구나 와서 쉽게 국악을 접하고 즐길 수 있는 터전으로 만들 것이다. 동시에 박물관 자체의 자생구조를 갖춰나가도록 할 생각이다."

가족들이 함께 찾아 박물관 관람도 하고 국악공연도 보며 식사도 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다. 좋은 박물관들이 자체의 자생구조를 갖추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았기에 단순히 박물관을 짓는다는 것이 능사가 아니란 것이 그의 생각이다.

악기에 조각을 하는 장인
악기에 조각을 하는 장인김영조
전시장 한쪽에는 습기와 상관없는 가죽을 연구하는 장구들이 있었다. 가죽은 축축한 느낌이 들었는데 소리는 일반 장구들과는 달리 소리가 깊고 울림이 좋았다. 끊임없이 연구하겠다는 그의 약속을 실천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장구뿐 아니라 북한 개량악기인 '옥류금'을 가져와 약간 모자란 금속부분 등을 보완했다고 말했다.

공장을 구석구석을 도는 동안 나무 하나하나를 만져보면서 검토하고, 고민하는 모습, 그리고 장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연구하는 모습에서 그의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직원은 박 사장이 늘 작업복을 입고 일을 해 외부에서 온 손님들은 그를 일꾼으로 알기도 한다고 귀띔한다.

그는 외부 공연 지원 등을 통해 자신이 번 것의 일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런 그에 대해 국악 음반을 전문으로 발매하는 업체인 신나라의 정문교 사장은 "국악기를 만드는 수준도 국내 최정상이지만 이익의 사회 환원에도 앞장서는 모습은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연구, 실험 중인 장구들
연구, 실험 중인 장구들김영조
그의 전시장에는 25현 개량가야금을 비롯하여 금, 슬, 운라, 와공후, 어, 축, 소, 특종 따위의 일반인에겐 이름도 생소한 악기들도 있다. 그는 이 악기들을 다 만들 것이라고 하며 앞으론 서양악기인 바이올린에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또 전시장엔 종묘제례악을 연주하는 악공들과 악기의 소품(미니어처)도 있다. 특이한 것은 앞에 10여 개의 누름단추가 있는데 한 악기의 이름이 쓰인 단추를 누르면 그 악기를 연주하는 소리가 나오며, 합주를 누르면 종묘제례악 연주가 흘러나온다.

국악, 우리에겐 소중한 전통문화지만 이 소중한 국악도 국악기가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다. 그래서 국악기의 가치는 대단할 수밖에 없으며, 또 그 국악기를 생산하는 장인들의 존재도 소중할 것이다. 그 한가운데 있는 (주)궁중국악기와 그를 설립하고 최고의 국악기를 만들고 있는 박성기 사장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2. 2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3. 3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4. 4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5. 5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