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아름다운 춤으로 표현한다

밀물무용단의 '말과 글이 춤추는 한글 대탐험' 공연

등록 2005.10.01 21:51수정 2005.10.02 11:50
0
원고료로 응원
“말과 글이 춤추는 한글 대탐험” 공연 표지
“말과 글이 춤추는 한글 대탐험” 공연 표지밀물현대무용단
이제 며칠 후면 559돌 한글날이다. 한글날은 우리 겨레가 온몸으로 기려야하는 날인만큼 갖가지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정부에서 하는 기념식을 비롯해 글짓기대회, 전시회, 포럼 등 무려 20여개의 행사가 펼쳐질 예정이다. 그 중 아주 특별한 행사가 있다. 바로 한글을 춤으로 풀어내는 무용발표회다.

이 행사는 '말과 글이 춤추는 한글 대탐험'이라는 제목으로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오는 10월 4일과 5일 밤 8시에 열린다. 특이하게도 여기엔 부제가 붙어있는데 '한글로 풀어본 댄스뮤지컬 훈민정음'이다. (사)밀물현대무용단 주관으로 문화관광부, 국립국어원, 한글학회, 한글 세계화를 위한 의원모임 등이 후원하고 있다.


이번 발표회는 '한글춤 이어가기 그 열다섯 번째'라고 한다. 밀물무용단은 어떻게 한글이란 형이상학적 내용을 춤으로 풀어내려 했을까? 이번 공연의 성격을 밀물무용단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작품 속에서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으로 나타난 <홀소리>, <닿소리>는 외래어 범람 속에서 낯설고 신기한 체험들을 하게 되지만, 그런 체험을 거치면서 우리 것의 소중함을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이번 작품 '한글 춤 대탐험'은 재미있고 흥미로운 현대 춤과 한글의 만남을 통하여 댄스뮤지컬의 형식을 빌려 좀 더 쉽게 <한글>의 우수성과 독창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깨달음의 무대를 만들어 모두가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체험의 장을 만들 것입니다."

'춤 하나'에선 '어깨동무 한글나라'란 제목으로 '일상 속에서 만나는 현실', '혼란스런 일상', '이상한 나라', '독재자의 춤' 등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어서 '춤 둘'에선 '움직이는 한글'이란 주제로 '훈민정음 판본서체원본이 소리 없이 펼쳐지면서 빛줄기를 타고 한글의 자모들이 잠에서 깨어난다. 10자의 모음과 14자의 자음은 서로에게 기대며, <홀소리>, <닿소리>들의 아름다운 형태들이 들어난다'는 내용을 그려낸다.

인터뷰하는 밀물현대무용단 이숙재 이사장(예술 총 감독 및 안무)
인터뷰하는 밀물현대무용단 이숙재 이사장(예술 총 감독 및 안무)김영조
이런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독특한 춤을 안무하고 이끌고 있는 밀물현대무용단 이사장 이숙재 교수와의 인터뷰를 했다.

- 한글춤을 만들게 된 계기는 뭔가?
"80년대 초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지도교수가 자기의 나라를 대표하는 것을 가져오라고 주문한 적이 있었다. 이때 나는 기와집 모형이나 부채 같은 종류를 가지고 갔는데 자금성 모형 등을 가져온 중국이나 일본학생들에게 규모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주미 한국문화원에 가서 상의했더니 한글과 금속활자를 소개해줬다.


특히 춤처럼 한글은 부호의 개념만이 아닌 생각, 정신, 문화가 녹아있는 것으로만 생각되었고, 이것으론 승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지도교수는 "진정 네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라며, 많은 격려를 해줬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내가 가진 기득권이란 한국인인 것밖에는 없었다."

- 한글춤을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어떻게 15번이나 연속 공연을 할 수 있었나?
"첫 공연은 대한민국무용제(현 서울무용제)에서 했는데 한글춤이 정서적인 것이 아니어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겨우 공연을 할 정도였는데 이후로도 정부나 한글단체 등을 찾아갔을 때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설득하는데 참 애를 먹었다. 기껏 이해를 시키면 담당자가 바뀌곤 했던 것도 어려움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 15년 정도 이 행사를 이어오면서 공연을 본 많은 사람들이 격려하고 지원을 해줬다. 그래서 오늘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첫 공연은 1991년 한국예술평론가협회가 주는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상'을 받았고, 1992년엔 '세종일대기'를 그려낸 '한솔'로 1993년엔 한국의 광고음악이라는 애칭을 받은 '신용비어천가'를 연속 공연하여 상을 받았던 것이 큰 힘이 되었다.

또 한글학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을 다니며, 참 다양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를 활용하면 많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공연을 해나가면서 공기의 중요성을 모르지만 공기가 없으면 죽는 것처럼 많은 사람이 영어만능주의에 빠져 큰일이라는 생각으로 '한글춤 이어가기'를 결심했다."

공연 연습에 열중하는 밀물현대무용단원들 1
공연 연습에 열중하는 밀물현대무용단원들 1김영조

공연 연습에 열중하는 밀물현대무용단원들 2
공연 연습에 열중하는 밀물현대무용단원들 2김영조
그는 참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이야기가 끊길 줄 몰랐다. 특히 정부도 기업들도 한글춤을 잘 이해하지 못해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밀물무용단은 1년에 25편 정도의 공연을 하는데 이중 한글춤 2번 정도를 뺀 공연의 출연료 일부를 적립하고, 일부는 정부의 보조금으로 한글춤 공연비용을 충당한다고 귀띔한다.

- 전통문화인 한글과 서양문화인 무용을 접목시켜 만든 한글춤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젠 사람들이 한글춤을 이해하고, 호평 한다. 그래서 15번이나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정부와 언론이 조금만 더 도와준다면 한글춤은 호평을 넘어서서 한글의 세계화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전통문화와 서양예술의 만남이 어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창작국악의 경우도 국악을 서양악기로 연주하고, 서양음악을 국악기로 소화하여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의 정신을 서양예술을 빌려 표현할 때 오히려 세계 사람의 호응을 받을 수가 있지 않을까?"

한글춤은 이른바 동도서기(東道西器:동양의 정신을 유지한 채 서양의 물질문명을 받아들임)라고 이 교수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문화를 전통문화의 범주에 담아둔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을지도 모른다.

밀물무용단은 창단 20돌 기념공연으로 '신찬기파랑가'를 공연했다고 한다. 또 1991년 '무명저고리'라는 제목의 공연을 국내만이 아닌 뉴욕에서도 무대에 올렸다. '무명저고리'는 무명과 같은 어머니의 마음, 즉 한국의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뉴욕타임스의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앞으로도 한글뿐만이 아니라 다른 전통문화도 자료만 구할 수 있다면 춤으로 표현해 나갈 것이라고 이 교수는 다짐했다.

이 교수는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 본부에서 한복, 국악, 한글, 춤 등 다양한 전통문화를 같이 소개하는 한국주간을 열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의 열린 마음을 주문한다.

이 가을, 한글의 달에 우리는 밀물무용단의 '한글로 풀어본 댄스뮤지컬 훈민정음'을 감상하고, 한글의 위대함을 실감함은 물론 춤의 아름다움도 만끽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밀물현대무용단원이 표현하는 한글 "ㅍ"
밀물현대무용단원이 표현하는 한글 "ㅍ"밀물현대무용단

밀물현대무용단원이 표현하는 한글 "ㅎ"
밀물현대무용단원이 표현하는 한글 "ㅎ"밀물현대무용단

덧붙이는 글 | 공연문의 : 밀물현대무용단 ▶ www.milmul.com  02-578-6810(사무국)

덧붙이는 글 공연문의 : 밀물현대무용단 ▶ www.milmul.com  02-578-6810(사무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2. 2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3. 3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4. 4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5. 5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