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하는 밀물현대무용단 이숙재 이사장(예술 총 감독 및 안무)김영조
이런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독특한 춤을 안무하고 이끌고 있는 밀물현대무용단 이사장 이숙재 교수와의 인터뷰를 했다.
- 한글춤을 만들게 된 계기는 뭔가?
"80년대 초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지도교수가 자기의 나라를 대표하는 것을 가져오라고 주문한 적이 있었다. 이때 나는 기와집 모형이나 부채 같은 종류를 가지고 갔는데 자금성 모형 등을 가져온 중국이나 일본학생들에게 규모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주미 한국문화원에 가서 상의했더니 한글과 금속활자를 소개해줬다.
특히 춤처럼 한글은 부호의 개념만이 아닌 생각, 정신, 문화가 녹아있는 것으로만 생각되었고, 이것으론 승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지도교수는 "진정 네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라며, 많은 격려를 해줬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내가 가진 기득권이란 한국인인 것밖에는 없었다."
- 한글춤을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어떻게 15번이나 연속 공연을 할 수 있었나?
"첫 공연은 대한민국무용제(현 서울무용제)에서 했는데 한글춤이 정서적인 것이 아니어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겨우 공연을 할 정도였는데 이후로도 정부나 한글단체 등을 찾아갔을 때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설득하는데 참 애를 먹었다. 기껏 이해를 시키면 담당자가 바뀌곤 했던 것도 어려움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 15년 정도 이 행사를 이어오면서 공연을 본 많은 사람들이 격려하고 지원을 해줬다. 그래서 오늘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첫 공연은 1991년 한국예술평론가협회가 주는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상'을 받았고, 1992년엔 '세종일대기'를 그려낸 '한솔'로 1993년엔 한국의 광고음악이라는 애칭을 받은 '신용비어천가'를 연속 공연하여 상을 받았던 것이 큰 힘이 되었다.
또 한글학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을 다니며, 참 다양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를 활용하면 많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공연을 해나가면서 공기의 중요성을 모르지만 공기가 없으면 죽는 것처럼 많은 사람이 영어만능주의에 빠져 큰일이라는 생각으로 '한글춤 이어가기'를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