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고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이건희 삼성회장 명예철학박사 학위수여식'이 학생들의 시위로 인해 파행으로 치뤄진 가운데, 삼성이 400여억원을 기부해서 지어진 '고대 100주년 삼성관'에서 열린 만찬에서 이재용 상무(오른쪽)가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법적으로나 행정적으로 경영세습을 되돌릴 방법은 없다. 검찰이 기소하지 않은 나머지 피고발인 31명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다고 하지만 기대할 바가 못 된다.
법학교수 43명이 고발한 사건을 3년 넘게 끌다가 겨우 실무 임원 두 명을 기소하는 데 그친 검찰의 과거 전력을 문제삼아서 하는 말만은 아니다. 검찰의 수사는 배임 행위에 대한 사법처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 편법으로 구축된 지배구조를 바로 잡기 위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이 삼성 총수 일가 또는 계열사 임원들인 피고발인들이 무서워할 것 같지도 한다. 핵심 실무 임원에 대해 업무상 배임죄를 인정하면서도 집행유예형을 선고한 법원의 판결에 미뤄볼 때 '밑져야 집행유예' 정도일 것이기 때문이다.
재벌 3세의 그룹 지배구조가 편법으로 구축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바로잡을 수 없는 법적 현실 앞에서 마지막으로 눈길을 돌릴 곳은 오로지 국민 여론 뿐이다.
미온적인 검찰을 움직여 그나마 '찔끔 기소'라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동력이 국민 여론이었듯, 법적으로 안 되면 정치적 판단으로라도 지배구조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는 동력은 국민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국민 여론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믿음'
물론 정치적 판단의 주체는 이건희 회장이다. 이 회장에게 정치적 판단을 요구할 명분은 법원이 부여했으니 '촉구 행위'가 과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일부 언론도 이건희 회장의 '용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여의치 않아 보인다. 애초 소유와 경영을 분리할 내릴 마음이 있었다면 전환사채를 편법으로 발행하고, 금산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삼성에 유리하도록 총력전을 폈을까 하는 의문은 자연스럽다.
상황이 바뀌면서 이건희 회장의 '용단'을 '강제'할 조건이 갖춰지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안기부 X파일에 금산법 개정파문, 삼성자동차 채무변제 시비 등 악재가 겹치면서 코너에 몰린 이건희 회장이 상황 반전 카드를 꺼내 들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같은 '조건 숙성론'에 반론을 제기하는 '조건 퇴색론'도 만만치 않다. '소나기는 피해가자'는 심산으로 버티면 된다는 게 '조건 퇴색론'의 핵심이다. X파일과 금산법 파문은 이번 정기국회가 정점이므로 시간을 끌면 퇴색될 것이고, 삼성자동차 채무변제 시비는 LG카드의 전례에서 보듯 적당한 선에서 돈으로 타협을 모색할 수도 있다.
이런 계산법의 밑바탕에는 가장 근본이 되는 판단이 깔려있다. 국민 여론은 오래 가지 않는다는 '믿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