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준다고 했지 돈 대준다고 했냐?

꿈을 접고 귀국하던 꼬위우딘의 황당한 주장

등록 2005.10.09 12:39수정 2005.10.09 12:3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많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을 만날 때마다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피부색이나 언어만이 아니라, 생각하고 살아가는 방식까지 다른 것을 겪다 보면, 순간 당황스러운 일을 겪는 건 다반사입니다.


어제 저는 그런 경험을 하였습니다. 점심시간이 약간 지날 즈음에, 귀국한다고 오전에 쉼터를 나섰던 인도네시아인 꼬위우딘(Kowiudin)이 공항에서 전화를 해 왔습니다. 꼬위우딘은 입국한 지 3개월 만에 귀국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난 일요일, 처음 쉼터에 왔을 때 그는 동행한 친구들 속에서 말이 없어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수요일 오후에 갑자기 두 명의 친구와 함께 귀국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면서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꼬위우딘은 "가족이 보고 싶어요. 인도네시아에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하고 말하며 비행기 티켓 예약과 귀국보험료 환급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가 일하던 회사는 일상적인 쌍욕이 있는데다 입국 전 근로계약서상의 급여나 식사가 제공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같이 일하던 친구가 맹장염으로 수술을 받고도 이튿날 퇴원하여 야근하는 것을 보고 지방노동사무소에 가서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자 그는 귀국하기로 마음먹고 회사를 나온 것입니다. 그동안 심각한 심적 스트레스를 받은 그는 사무실에 들어선 친구들이 반팔 티셔츠를 입은 것과는 달리, 긴 옷 잠바를 입고도 추위를 타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간의 사정을 들은 저는 근무처 변경을 하고 다른 곳에서 일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어떠겠느냐고 권해 봤지만 그에게는 이미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는 듯이 보였습니다. 결국 그의 귀국을 돕기 위해 여행사에 연락했더니 "출국 하루 전에 연락주시면 좌석을 어떻게 잡으라고 이제야 연락하세요?" 하면서도 전화상으로 예약을 받아 줬습니다. 더불어 여행사에서는 시간이 촉박하니 항공권은 공항에서 받고 돈도 공항에서 지불하라고 해 줬습니다.


그 다음 문제는 귀국보험료 청구 문제였습니다. 그가 갖고 온 보험 약정서에는 보험회사 이름만 있고, 아무런 연락처가 없었습니다. 연락처가 적힌 다른 소책자를 받은 적이 없느냐고 물어봐도 없다고만 할 뿐 그의 표정은 멍해 보였습니다. 별 수 없이 외국인력을 담당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에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했더니, 담당 직원이 친절하게 청구 절차를 안내해 주고, 오후 4시까지 꼬위우딘 통장으로 해지된 금액을 입금시켜 줘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렇게 출국하기 위해 공항에 갔던 꼬위우딘이 내뱉은 첫마디는 저를 당황스럽게 했습니다.


"Mr.Kim이 돈을 달라고 해요."
"무슨 돈?"
"항공료요."
"당연히 내야죠."
"당신이 도와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네? 내가 도와준다고 했지 돈 준다고 했나요? 비행기 예약과 귀국보험료 환급 절차를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줬잖아요. 그렇다고 항공료를 내 준다고 한 적은 없는데…."

잠시 뜸을 들이더니 꼬위우딘은 "알았어요"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옛말에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라더니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그가 쉼터에서 돈을 내기로 했다고 우긴다면 사람 좋은 여행사 직원은 '그러려니'하고 항공권을 내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그때 여행사 직원이 전화를 걸어 왔기에 "저는 그 사람이 귀국한다고 해서 예약 전화만 해 준 거니까 항공료 달라고 하세요"하고 확실하게 말해두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많은 돈을 벌 꿈을 갖고 왔다가,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귀국하는 그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저에게 보인 반응은 '당신이 도와준다고 했으니, 항공료도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는데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는 제가 돈이 남아돌아서 이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어찌됐든 귀싸대기 한 방 얼얼하게 맞은 기분입니다.

덧붙이는 글 | 꼬위우딘과 함께 일했던 친구들에 의하면 그의 말이 왔다 갔다 해서 불안했다고 합니다. 귀국후 심신의 안정을 찾기를 바랄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꼬위우딘과 함께 일했던 친구들에 의하면 그의 말이 왔다 갔다 해서 불안했다고 합니다. 귀국후 심신의 안정을 찾기를 바랄 뿐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3. 3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