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혼란? 한나라당 먼저 수습하라

[取중眞담]강재섭 원내대표의 '남북한 경제특구' 제안을 접하며

등록 2005.10.15 16:10수정 2005.10.16 11:53
0
원고료로 응원
a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강재섭 원내대표가 13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천정배 법무장관의 강정구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 지휘권 발동과 관련한 동료의원들의 발언을 들은뒤 박수를 치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강재섭 원내대표가 13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천정배 법무장관의 강정구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 지휘권 발동과 관련한 동료의원들의 발언을 들은뒤 박수를 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말인가.

강재섭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14일 남한의 파주에서 개성공단을 포함한 북한의 해주지역을 연결하는 '남북한 통일 경제특구' 건설을 제안했다. "한반도 경제 공동체 건설이라는 원대한 구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게 그 배경이다.

그러나 전날(13일)까지만 해도 강정구 교수의 발언을 비판하면서 "남북이 통일되고 사회주의 통일돼도 좋다, 저는 우리 아들 꽃제비 만들 수 없다"면서 강 교수 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해서도 비아냥댔던 인물은 바로 강 원내대표가 소속한 한나라당의 전여옥 대변인이었다.

'통일경제특구'? 전날 북한에 쌍심지 켠 것 기억 안 나나

어디 이 뿐인가. 13일 열린 한나라당의 의총은 강정구 교수와 천 장관, 그리고 북한을 싸잡아 비난하는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강 원내대표를 위해 일부 의원들의 발언을 발췌해 보자.

"장관이 친북·용공 발언을 한 특정인에 대해 불구속 수사하라며 개입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이 정권이 친북·반미·좌파 정권임을 드러내고 있다."(이방호 의원)

"이 정권이 김정일 정권의 대남적화 전략을 적극 도와주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강정구라는 사람은 학자라고도 할 수 없는 인물로 그의 발언을 보면 북한의 핵심간부보다 더 지독한 김일성주의자이자 주체사상 맹신자이다."(김용갑 의원)


"전염병걸린 환자는 격리시켜 다룬다. 이 사람(강 교수)은 분명히 빨간 색깔로 오염된 전염병 환자이니 빨리 격리시켜 국민 선동을 중지시켜야 한다."(황진하 의원)

"(천 장관이) 민주주의의 기본질서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지 않느냐. 조류독감에 걸린 닭·오리는 도살처분 한다."(김광원 의원)


"강정구 같은 이런 확신범이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하리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이다. 학생들에게 붉은 바이러스 퍼뜨리는 국기 문란 행위를 막기 위해 학생들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김무성 사무총장)


이러고도 공동체 건설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 한나라당이 대체 누구와 손잡고 '한반도 경제 공동체 건설이라는 원대한 구상'을 실현시켜나가겠다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상대방이 그 제안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또 그 제안을 한 강 원내대표는 북한이 이를 수락할 것이라고 털끝만치도 예상을 했는지 궁금하다.

도대체 누구와 손잡고 한반도 공동체 만들자는 것인가

강 원내대표는 이날 대표연설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국민대통합연석회의' 제안을 사실상 거부하면서 "연석회의는 어쩐지 겉치레 이벤트로 느껴지는 것이 솔직한 심경"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전날 북한을 향해 실컷 욕설을 쏟아붓고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반도 공동체' 운운한 것이야말로 대국민 이벤트가 아니었는지 강 원내대표는 한번 자문해봐야 한다.

강 교수와 북한을 향한 한나라당의 적개심은 강 원내대표가 이날 연설에서 밝힌 좌우명 '대해불택세류'(大海不擇細流, 한없이 큰 바다는 어떤 물도 가리지 않고 다 받아들인다)와도 전혀 맞지 않는다.

또 자당의 대표가 '남북한 통일 경제특구'를 제안했는데도, 하루 전 북한을 향해 쌍심지를 켰던 의원들이 왜 침묵하고 있는지 대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공당이 이렇듯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비쳐서야 되겠는가. 게다가 그들의 말대로라면 이건 국가 정체성이 관련된 중대한 문제이지 않는가.

한나라당은 한 교수의 연구논문에 대해 발끈해 국가의 정체성을 우려할 게 아니라 자당 대표와 의원들간의 정체성 혼란부터 수습해야 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AD

AD

AD

인기기사

  1. 1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2. 2 "독도 조형물 철거한 윤석열 정부, 이유는 '이것' 때문" "독도 조형물 철거한 윤석열 정부, 이유는 '이것' 때문"
  3. 3 방치된 폐가였는데 이젠 50만명이 넘게 찾는다 방치된 폐가였는데 이젠 50만명이 넘게 찾는다
  4. 4 일본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어떤 관계일까 일본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어떤 관계일까
  5. 5 독일에서 한국산 미역 구하기 어려운 까닭 독일에서 한국산 미역 구하기 어려운 까닭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