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55

갈림길

등록 2005.10.17 18:18수정 2005.10.1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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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업이 양해를 구하고 먼저 자리를 비운 사이 차충량과 차예량, 장판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우리는 더 이상 의주에서 운신하기가 힘드네. 그런 판국에 부윤께서 술자리를 마련하여 우리에게 그런 언질을 준 까닭이 무엇이겠나? 역적 정명수놈을 베라는 뜻 일걸세."
"그런 놈 하나 베어 죽인다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습네까? 오히려 청의 경계만 더욱 심해질 뿐일겁네다."
"그렇지는 않네. 그놈을 친 후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끝낸다면 뒤탈이 있겠나?"


차충량의 말에 차예량이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형님! 설마…."
"내 장초관에게 염치없는 부탁 하나 합세."

차충량은 아직 뭐가 뭔지 모르는 장판수를 향해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말해보시라우요."
"내 정명수와 두 박가놈을 척살하고 싶으나 그만한 무예를 갖추고 있지는 않아 성공할지 자신이 없네. 그러니 장초관이 날 도와주었으면 하네만."

그제야 장판수는 차충량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정명수 일행을 죽이려는 것을 알아채었다.


"그런 일은 도울 수 없습네다."

차충량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장판수를 멍하니 바라본 후 대신 설득이라도 하기를 바라는 표정으로 아우 차예량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차예량도 장판수의 속마음을 정확히 모르는지라 말문을 열수 없었다. 어색한 침묵이 잠시 지나간 후 상대방의 애간장을 태우는 태도를 좋아하지 않는 장판수인지라 먼저 그 이유에 대해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그런 자를 죽이면 심양에 있는 자들을 청나라가 돌려보내기라도 한다는 것입네까? 오히려 더욱 엄히 다스릴 것입네다. 그런 일에 목숨을 버려서는 아니됩네다. 목숨을 아껴야 합네다."

"장초관! 겁이라도 먹은 것이오?"

차충량의 말에 장판수는 답답함을 느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짓고 말았고 이는 술기운이 올라온 판국에 가뜩이나 장판수의 태도에 심기가 상해있는 차충량의 화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차충량은 장판수의 멱살을 단숨에 움켜잡고 소리쳤다.

"이 멍청한 평치놈아! 네 놈이 할 수 있는 게 칼질 밖에 더 있겠냐? 그런 재주 하나 빌려달라고 내가 무릎이라도 꿇고 빌기라도 할 줄 알았더냐?"

장판수는 멱살을 잡고 있는 차충량의 손을 홱 뿌려 치고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가버렸다. 차예량은 그런 장판수의 뒤를 따라다니며 소리치며 불렀다.

"이보시오 장형! 나와 얘기합시다!"

장판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퉁명스레 소리쳤다.

"이제 볼 장 다 봤습네다! 앞으로는 각자 갈 길을 가는 게 났겠소!"

장판수의 걸음은 달음박질 같이 빨라졌다. 그간 산길을 쉴 새 없이 오르내린 장판수인 지라 평지를 걷는 걸음은 보통 사람이 여간해서 따라잡을 수 없었다. 더구나 큰길가로 나오면 청의 세작배(細作輩 : 간첩)가 그의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차예량은 숨찬 목소리로 끊임없이 장판수를 불러대었다.

"장형! 내가 생각이 있어 이러는 것이니 제발 발걸음을 멈춰 주시오!"

잠시 뒤를 돌아본 장판수는 걸음을 멈추고 차예량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래,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기를 쓰고 따라오는 것이네?"

차예량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장판수의 손을 부여잡으며 간곡히 말했다.

"장형! 부탁하건데 제발 형님을 도와주시오!"

장판수는 그런 말은 더 들을 것도 없다며 손을 뿌리쳤다. 하지만 차예량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장형! 내 말을 잘 들어보시오! 나도 형님을 말리고 싶으나 우리 형님은 한번 하고자 마음먹으면 반드시 하는 사람이오! 그러니 장형이 못 이기는 척 형님의 뒤를 따라가 그 시도를 방해하고 목숨을 구해주시오! 내 그동안에 심양에 가서 장형이 하고자 하는 일을 시작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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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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