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가지 잔불에 갈치 한 토막 구워 볼까?

[가을걷이 6]갈치 한 토막에 밥 세 그릇 뚝딱

등록 2005.10.21 14:21수정 2005.10.2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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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살이 터질 것 같은 갈치구이가 노릇노릇 식욕을 당긴다. 한 토막이면 밥 두 그릇도 거뜬히 비운다.

살이 터질 것 같은 갈치구이가 노릇노릇 식욕을 당긴다. 한 토막이면 밥 두 그릇도 거뜬히 비운다. ⓒ 김규환

딱 5% 봄철보다 여유로운 가을걷이


초여름 보리 벨 때는 5, 6학년 학생들이라도 와서 한꺼번에 베어주고 가지만 가을 농사철에는 품앗이마저도 없다. 봄이나 가을이나 농사는 두 회전을 하게 되는 건 마찬가지지만 봄 농사는 모내기가 기다리고 있고 가을엔 보리 갈기가 있으니 5% 가량 여유가 있다. 따라서 가을엔 모든 일이 가족단위로 이뤄진다.

공무원들이 대민봉사를 간혹 나오기는 하지만 면사무소 인근이나 사진 찍기 좋은 큰 마을에 몇 번 나가고 말았으니 면 소재지로부터 20리 길이나 되는 먼 우리 마을까지 손길이 미치기 힘들다.

그러니 들쥐가 사람이 먹을 식량을 축내는 것처럼 야금야금 들 논을 먹어가야 한다. 산골짜기에서부터 시작하여 단풍이 내려오는 길목을 따라 들녘으로 접어들고 서리와 첫눈이 내릴 무렵 맨 마지막엔 동네 앞 문전옥답을 마치는 게 순서다.

심는 벼도 달랐다. 산골엔 올벼를 심고 차차 중생종이었다가 보리와 2모작을 하는 문전엔 키가 크고 수확량도 많은 만생종이었다. 늦은 수확을 마치고는 부랴부랴 논을 갈아엎어 보리씨 뿌려 흙덩어리를 깨 덮어주면 파릇파릇한 보리 새싹이 나면 겨울로 접어든다.

손대가 있는 집안은 그래도 해볼만한 게 가을걷이다. 아들 숫자가 많지 않은 집이라면 부녀자들이 지게를 지고 다니는 건 어렵잖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러니 생산력의 척도였던 아이를 무지막지하게 많이도 낳았던 때가 1966년 이후 내리 3년간이다.


넉넉지 않았던 시절 추수 때 단백질 보충 방법

a 민물새우를 새비라고 한다. 토하는 지금이 제철이니 시골 오일장 들르거든 한 보시기 사와서 무나 호박에 달달 졸여 먹으면 일품이다.

민물새우를 새비라고 한다. 토하는 지금이 제철이니 시골 오일장 들르거든 한 보시기 사와서 무나 호박에 달달 졸여 먹으면 일품이다. ⓒ 김규환

먹는 것도 부실하기 그지없어 밥에 김치, 시레기국, 고구마로 때울 때도 있었고 그나마 그거라도 배불리 먹으면 다행이었다. 무슨 가을철에 전어를 맛볼 수나 있었으랴.


추수를 앞두고 한 달 전쯤 오일장에 가도 갈치 몇 마리, 꽁치와 고등어자반 한손을 사오는 게 전부다. 소금에 절여 오는 건 물론이요 소금단지 속에 밀어 넣어 두고두고 먹었을 뿐이다. 어찌나 짭조름한지 소금 맛이 아니라 소태맛이다. 짜기보다 쓰다고 하는 게 맞겠다.

손에 꼽을 만한 단백질 보충 방법은 정해져 있었다. 본격 추수에 접어들기에 앞서 수렁논을 뒤져 추어탕 한 솥 끓이고 논일 밭일 마치고 오가며 풀숲을 조리로 건지면 민물새우 토하(土蝦)가 있으니 까무잡잡하게 쇠어가는 호박이나 무 뿌리에 고듯 달달 졸여서 먹었다.

약방에 감초보다 질리게 빠지지 않았던 건 멸치다. 요즘으로 말하면 국물멸치라고 하는 큰 멸치를 똥만 빼고는 싹싹 비벼서 모든 국과 조림 재료로 썼으니 서민과 멸치는 한 세월을 넘어 우리와 떼려야 결코 뗄 수 없는 각별한 사이다.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은 멸치 비린내가 싫다고 하지만 촌에 살았던 우린 아직도 멸치국물이 핏속에 녹아 스며있다.

돼지고기는 딱 반근을 사와 두 번에 나눠 무채 모양으로 잘게 토막 내 홀랑홀랑 훌렁훌렁하게 김치 서너 포기 넣고 국물에 둥둥 뜬 기름기나 맛보는 정도였다. 한 식구 열명이 반에 반근을 먹으면 당시 이밥에 고깃국으론 최고의 성찬이었다. 여기에 갈치조림이 곁들여져 가을 밥상을 그나마 메마르지 않게 했다. 누가 호사스럽게 구워서 먹었을까 보냐.

솔잎 잔불에 갈치를 굽자 정지에 고소한 향이 가득

a 봄철 보리 벨 때 말린 갈치를 고추장에 재웠다가 볶으면 도시락이나 들일 할 때 훌륭한 밑반찬이었다.

봄철 보리 벨 때 말린 갈치를 고추장에 재웠다가 볶으면 도시락이나 들일 할 때 훌륭한 밑반찬이었다. ⓒ 김규환

어려움 속에서도 간혹 별미가 있는 밤이 있다. 어머니는 온통 농사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라 까먹기 일쑤지만 아버지나 내가 소죽을 쒀놓고 정지로 들어가면 밥상이 확 달라진다.

"쇠죽 퍼줬냐?"
"잉. 엄마 그건 그렇고 갈치나 서너 토막 구을끄라우?"

"왜? 오늘은 찬거리가 많은디 뭐할라고?"
"글도 한번 구워보께라우."

"정 그렇다면 하고자운대로 하그라."
"야~오늘 저녁밥은 더 맛나겠소. 언넝 내다 줏쇼."
"그려, 언넝 구워봐."

밥솥과 국솥 아궁이는 크기가 다를 뿐만 아니라 불이 들어간 양이 차이가 있다. 밥은 끓으려면 꽤 시간이 걸리지만 국솥은 밥 하던 아궁이에서 타다 남은 나무를 꺼내다가 조금만 더 보태면 김을 폴폴 내며 잘도 끓는다. 밥솥에 뜸을 들이려고 쏘시개로 한 번 더 불을 붙이면 뽀글뽀글 거품이 터져 나온다.

어머니가 소금단지로 갈치를 꺼내러 간 사이 나는 못에 걸린 적사-석쇠를 내려 대강 씻어놓았다. 꼬리와 머리까지 딱 다섯 동강이다. 아궁이 앞에 쭈그려 앉아 도막도막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a "할머니 갈치 얼마예요?" "싸게 싸게 드릴라요 5천원 주시면 세마리 드릴라요."

"할머니 갈치 얼마예요?" "싸게 싸게 드릴라요 5천원 주시면 세마리 드릴라요." ⓒ 김규환

이내 밥솥 아래 불은 그냥 보아서는 꺼지기 일보직전이다. 그래도 갈치는 잔불이라야 좋다. 잉그락(이글이글 퍼렇게 타오르는 숯불과 비슷한 상태. 불잉걸. 잉걸)이 없다고 꺼졌다고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다. 쏘시개로 솔잎을 넣었던지라 부지땅(부지깽이)으로 살짝 들추면 파다닥 서캐가 타죽는 소리를 내며 잿더미 속에 잠자던 잎이 마저 탄다.

붉은 숯이 오롯이 살아 전깃불도 없는 부엌에 더 반짝반짝 속삭인다. 무던히도 불장난하다 오줌싸개가 되어 소금깨나 얻어와 집안 살림에 보탰던 그 시절 그 자리다. 그렇다고 적사를 그냥 곧바로 올리지 않는다.

헤집으면서 잉걸을 하나하나 모아주고도 할 일이 남아 있다. 홈을 파서 공기구멍을 내주고는 그 사이에 연기를 내지 않을 부지깽이를 걸쳐놓아야 한다. 숨구멍이 있어야 짓눌리지 않고 골고루 익는다.

입을 오므려 후욱 불어주고 갈치를 올렸다. 슬슬 꺼질 듯 말 듯 하던 불 위에서 겉이 마르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데워지고 나자 기분 좋은 향기가 퍼졌다. 꽤 오래두고 뒤집어주니 "뽀글뽀글" 아이가 물코로 풍선을 불 듯 껍질이 터져가면서 기름을 게워낸다. 파르르 육수가 빠지면서 연기가 한번 일더니 짜고 비린 냄새가 정지를 감쌌다.

내 차지 반 토막을 손에 들고 먹는 맛

a 프라이팬에 구워드실 때 기름을 두르지 않고 담백하게 굽는 방법이 있다. 우선 갈치 물기를 쪽 빼놓고 팬을 센 가스 불에 올려 달군다. 약한 연기가 피어오르면 불을 줄이고 생선을 올린다. 자체 기름이 빠져나올 때까지 건들지 말다가 차르르 기름방울이 튀면 그 때 한번 뒤집어주면 깔끔한 구이를 먹을 수 있다. 불 조절이 중요하다.

프라이팬에 구워드실 때 기름을 두르지 않고 담백하게 굽는 방법이 있다. 우선 갈치 물기를 쪽 빼놓고 팬을 센 가스 불에 올려 달군다. 약한 연기가 피어오르면 불을 줄이고 생선을 올린다. 자체 기름이 빠져나올 때까지 건들지 말다가 차르르 기름방울이 튀면 그 때 한번 뒤집어주면 깔끔한 구이를 먹을 수 있다. 불 조절이 중요하다. ⓒ 김규환

골똘히 쳐다보던 동안 어머니와 누나는 밥과 매옴한 고추를 듬성듬성 썰어 넣은 무시레기국을 퍼 담고 생채까지 들여갔다.

"아직 안 익었냐?"
"누나 얼추 돼가는디. 쨈만 지달려 곰방 각고 갈텡게."
"그려."

지글지글 기름이 타들어간다. 처음엔 시커멓던 먹갈치가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다. 솔향기까지 더해졌다. 식을세라 통째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더운 공기로 밥 먹기 딱 좋은 온도다. 적사를 쫙 펼쳐서 접시에 올렸다.

"옴마 오늘은 국 안 묵을라요."
"좋을 대로 혀."
"누나 쩌기 물 좀 줘봐. 물 말아 먹어야지."

a 조기나 갈치는 좀 바싹 구워 손에 들고 머리와 꼬리, 뼈를 씹어야 더 고소한데 밥에 물을 말아먹으면 쪽쪽 당긴다.

조기나 갈치는 좀 바싹 구워 손에 들고 머리와 꼬리, 뼈를 씹어야 더 고소한데 밥에 물을 말아먹으면 쪽쪽 당긴다. ⓒ 김규환

식구 숫자가 많아 한 토막을 들었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아버지가 젓가락질을 하자 나는 절반으로 잘라 왼손에 들었다. 말았던 밥 한 숟가락 먹고 손톱보다 적은 양을 베어 물었다.

짠듯하면서도 밥이 달다. 잔가시도 바삭바삭 잘 구워져 몇 번 깨물자 쉬 부서졌다. 입 안엔 타다만 솔잎까지 씹히고 있었다. 그 때서야 고소한 맛이 더해졌다. 몇 숟가락이나 떠먹었을까 물만 있을 뿐 밥이 동이 나있다.

"옴마, 밥 좀 더 줏쇼."
"여깄다. 찬찬히 묵어. 글다 까시 걸릴라."

"괜잖아라우."
"니 동상 목구녕에 걸렸다가 혼쭐난 거 알잖아."

아버지가 주신 반 토막에 밥 세 그릇

남아 있던 물에 밥을 마니 맨송맨송 밥맛이 달아났지만 다시 갈치를 뜯어 넣으니 입맛이 돌았다. 가장자리를 다 먹고 이젠 가운데 가시와 토실토실한 살점만 남았다. 양쪽으로는 가시가 빗살처럼 볼가져 있다. 정말 여기는 세상 어떤 것과 맞바꾸고 싶지 않은 고갱이다.

a 성남 모란시장에 가면 생선 모듬을 구워서 판다.

성남 모란시장에 가면 생선 모듬을 구워서 판다. ⓒ 김규환

만지작거리며 가능한 한 조금씩 먹었다. 흘깃 곁눈질로 상을 보니 남자들 상엔 한 점도 남아있지 않고 어머니 앞에만 고스란히 남아있어 동생을 떼어 먹이고 있으니 최대한 아껴먹어야 한다. 아쉬워 갈치 등줄기 뼛골을 빼먹고 있었다.

"예있다."

아버지 밥에 올려진 갈치가 내 손으로 넘어왔다.

"밥 좀 더 줘 누나."
"막둥이아들이 클랑가봅소."

그날 나는 갈치 한 토막으로 밥을 세 번이나 먹었다. 다음날 아침 내 입가엔 침이 질질 흘러 있었던 걸로 보아 꿈에서도 꿀맛을 다셨던 모양이다.

당시 갈치 맛도 갈치려니와 많지 않은 양이었기에 더 맛이 있었을까. 그 뒤 연탄불에 고기를 구워 먹어 봐도 예전 그 맛이 나지 않았다. 아, 언제나 아궁이에 불 피워 생선을 뒤집어볼 날이 있을까나. 실바람이 예전 내 고향집으로 데려간다.

a 비굴하게 굴비나 한번 먹어볼까나.

비굴하게 굴비나 한번 먹어볼까나. ⓒ 김규환

덧붙이는 글 | 전어, 고등어, 갈치, 굴비 무얼 구은들 맛이 없겠습니까? 주말에 고향이나 체험마을에 가시거든 생선 몇 마리 사가서 모닥불을 피우고 구워보시기 바랍니다. 소나무나 잣나무, 전나무, 편백나무, 삼나무 등 침엽수를 쓰면 고기 향기가 더 좋습니다.

덧붙이는 글 전어, 고등어, 갈치, 굴비 무얼 구은들 맛이 없겠습니까? 주말에 고향이나 체험마을에 가시거든 생선 몇 마리 사가서 모닥불을 피우고 구워보시기 바랍니다. 소나무나 잣나무, 전나무, 편백나무, 삼나무 등 침엽수를 쓰면 고기 향기가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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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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