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65

좌절

등록 2005.11.03 19:26수정 2005.11.0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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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술 떨어지려고 그런다.”
“아, 형님 저 쪽에 한 동이 더 가져다 놓은 거 안 보이시우?”

무뢰배들은 장판수가 헛기침을 하건 말건 자기들 기분과 술에 취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장판수는 허리 품에 찬 짧은 지팡이로 빼어들고 술동이로 성큼성큼 다가가 냅다 내려쳤다. 술동이는 산산조각이 났고 술은 모조리 밖으로 쏟아져 한 방울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에그그 저 아까운 술!”
“저 놈이 실성을 했나!”

무뢰배들은 삽시간에 눈에 독기를 품고 벌떡 일어났고 게 중에 성질 급한 털보하나가 팔뚝을 걷어붙이고 장판수에게 사납게 덤벼들었다. 장판수는 가볍게 몸을 틀어 이를 피하고 털보의 팔을 잡아 비틀어 꺾었다.

“아야야! 이 놈이 사람치네!”

장판수는 털보의 팔을 단단히 잡으며 무뢰배들을 노려보았다.

“이놈들! 돈까지 받고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여기나와 술판을 벌이며 무슨 신소리를 하는 거냐!”


그때서야 깡마른 사내가 장판수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그 양반네가 아무 것도 모르는 줄 알았더니 사람을 시켜 우리 뒤를 밟게 했구나! 그런데 혼자서 뭘 어쩌겠다는 거냐!”


무뢰배들은 각자 손에 묵직한 몽둥이를 집어 들어 털보를 붙잡고 있는 장판수를 둘러싸려고 했다. 장판수는 재빨리 털보를 앞으로 밀어버린 후 처음으로 몽둥이를 집어든 무뢰배에게 달려들어 한주먹에 쓰러트렸다. 또 다른 무뢰배가 뒤에서 달려들자 장판수는 팔꿈치로 배를 찍은 뒤 배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인 무뢰배의 턱을 걷어차고선 땅에 떨어진 몽둥이를 들어 닥치는 대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무뢰배들은 창졸간에 당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술에 취해 마음먹은 대로 몸이 움직여 주지 않았다. 장판수는 여차하면 지팡이에 숨긴 칼을 뽑아들 작정까지 했지만 그럴 필요조차도 없었다. 장판수의 몽둥이에 맞아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진 무뢰배들은 신음소리를 내며 여기저기 널브러졌고 장판수는 숨을 씩씩거리며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사발을 집어 들고 조금 남아 있는 술을 죽 들이켰다가 푹 내뿜은 후 소리쳤다.

“거 술맛도 고약하구만! 망할 삿기들!”
“아이고, 몰라 뵙고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몸을 피했다가 기어 나온 깡마른 사내가 기어오며 용서를 구했지만 장판수는 사발을 집어 던지며 더욱 윽박질렀다.

“네 이놈들! 당장 요절을 내고 싶지만 네 놈들이 쳐 먹은 술과 돼지고기 값은 해야 할 일이 있다우!”

깡마른 사내가 우는 소리로 하소연했다.

“아이고! 내 받은 돈은 이자까지 쳐서 돌려 드릴 테니 그 일만은 못하겠소! 괜히 청의 관리를 죽이는 일에 끼어들었다가 치도곤을 당할 일이 있소이까!”
“누가 그 일을 하라고 이러는 것이네!”
“그, 그럼 뭘 할깝슈.”
“어제 네 놈이 만난 선비를 찾아 꽁꽁 묶어 오는 일이라우. 네 놈 부하들에게 누군지 일러두라우. 그 선비를 찾아 올 때까지 네 놈은 나와 함께 있어야 갔어.”

깡마른 사내의 얼굴이 조금은 밝아졌다.

“아이고! 그런 일이라면 우리가 잘합죠!”
“되도록이면 고이 모셔 와야 하네!”

꽁꽁 묶어오랄 때는 언제고 고이 모시라는 말에 무뢰배들은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자신들을 모조리 쓰러트린 장판수에다가 평소 두렵게 여기던 깡마른 사내마저 굴복하니 이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무뢰배들이 차충량을 찾아 이리저리 흩어진 후 장판수는 깡마른 사내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냥 짱대라고 합죠. 뭐 성 같은 것 없습니다.”
“짱대라… 장대가 아니라 짱대? 말이 좀 어렵구만. 큰 키에 비썩 말라서 기렇다 이 말이네?”

장판수와 짱대는 방금 전까지 질펀한 술자리가 벌어졌던 곳에 앉아 해가 떨어진 뒤에도 한참을 기다려 무뢰배들이 차충량을 데리고 오기를 학수고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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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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