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64

좌절

등록 2005.11.01 18:40수정 2005.11.0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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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참 아무리 한양이 넓다하나 어찌 이리 종적이 묘연 할 수 있네….'

장판수는 전에 갔었던 국밥집에 앉아 그득하게 담긴 장국밥을 앞에 놓은 채 수저를 드는 둥 마는 둥 하며 내일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어찌되었건 차충량은 남별궁에 나타날 것이고 그때 장판수가 말린다면 목숨을 구할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 자리에서는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장판수로서는 오늘 내로 차충량을 찾아 그를 힘으로라도 억눌러 거사를 막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국밥이 영 맛이 없으시우? 통 자시지를 않네 그려."

언제부터인가 국밥집 주인이 장판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조금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 아닙네다. 아주 맛납네다."

장판수는 얼떨결에 밥 한 숟갈을 그득 떠서 덥석 입에 넣어 삼켜 대었다. 순간 차충량이 어제 수상한 사내와 한 얘기가 퍼뜩 떠올랐다.

'자네와 어물패들은 그저 나를 도와 방해하는 놈들은 치고….'


"주인장!"
"에구 깜짝이야!"

장판수가 먹는 양을 보고 고개를 돌렸던 국밥집 주인은 장판수가 마치 화라도 난 것처럼 소리치자 놀라서 펄쩍 뛰었다.


"혹시 어물패라고 압네까?"

국밥집 주인은 그 말에 순간적으로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니 공손한 태도로 돌변했다.

"뒤뜰에 묻어둔 술이 있는데 좀 올립갑슈?"

장판수는 주인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잠시 멍했다가 곧 속으로 웃음이 났다. 국밥집 주인은 장판수가 어물패와 한 패인 줄로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말이 아닙네다. 내래 어물패에 좀 볼일이 있어서 그럽네다."

국밥집 주인은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며 퉁명스레 대답했다.

"어물패가 어물전에 있지 퇴물전에 있겠수?"

국밥 그릇을 싹 비운 장판수는 어물전을 물어 찾아가 상인들에게 어물패에 대해 물었지만 그들은 행여 장판수가 기찰포교일지도 모를까싶어 대답을 꺼려했다.

"뭐 맨입에 그런 걸 가르쳐 달란 말인가."

게 중에 한 상인이 은근슬쩍 이런 말을 흘리자 장판수는 품속에서 은전 한 닢을 넌지시 건네주었다. 뜻밖의 횡재에 상인은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지며 입이 가벼워졌다.

"그 놈들이 요즘 우두머리가 바뀐 후로 사람들이 잘 모르는 도성 밖 주점에 모여 있다 하오. 서소문 밖으로 나가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외다. 거 몸조심하시구려. 술이라도 취하면 개고기 같은 놈들이니까."

장판수는 잰 걸음으로 어물전을 빠져나와 서둘러 서소문 밖으로 나갔다. 상인의 말대로 주점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는데 제대로 된 주점이라기보다는 농지에 덩그러니 서 있는 커다란 가축우리와도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 예닐곱 명의 무뢰배들이 모여 왁자지껄하니 술동이를 옆에 두고 돼지를 잡아 삶아서 뜯고 있었다. 그들은 장판수가 와서 지켜보던 말든 상관하지 않고 멋대로 지껄여 대었다.

"그 멍청한 양반, 내일 얼마나 황망할꼬?"
"하여간 세상 물정 모르는 것들은 그렇게 당해도 싸지 그래!"

장판수가 자세히 살펴보니 게 중 깡마르고 낯빛이 검은 사내는 분명 전날에 마주친 이가 분명하였다. 장판수가 보기에 술을 마시고 방자하게 행동하는 것은 분명 거사를 앞둔 이들의 태도가 아니었다.

'이 놈들이 차선달을 속였구만!'

어처구니가 없어진 장판수는 조용히 발길을 돌리려다가 마음을 바꾸어 오히려 그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크게 헛기침 소리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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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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