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66

좌절

등록 2005.11.04 17:10수정 2005.11.0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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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됐네?"

사대문의 통행을 금하는 시각까지 차충량을 찾아다니다 제일 먼저 돌아온 무뢰배에게 장판수는 성마르게 소식을 다그쳤다.


"워낙 촉박한지라 장터만 뒤져 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진짜로 뒤져 보았는지 대충 어디서 노닥거리다 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설사 열심히 찾아보았더라도 그 동안에 차충량의 행방을 알아내는 것은 힘든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무뢰배는 짱대를 향해 어설프게 눈짓을 해보였는데 장판수는 대번 이를 눈치 채고선 속으로 비웃었다.

'이놈들이래 찾으라는 사람은 안 찾고 아까 당한 일의 분풀이를 하겠다고 지들끼리 작당한 모양이구만.'

그렇다고 순순히 당할 장판수가 아닌지라 미리 생각해놓은 방도대로 짱대를 끌어 일으키고서는 무뢰배에게 말했다.

"내일 어디로 모여야 할지 알고 있지? 아침에 그쪽으로 모두들 오라우. 난 니들 두목과 함께 좀 가봐야 할 곳이 있어."


장판수는 당혹스러워 하는 무뢰배를 남겨놓은 채 짱때를 끌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 나갔다. 무뢰배들이 준비를 하고 덤벼든다면 장판수가 이겨낼 수 없었고, 자는 동안 봉변을 당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장판수는 짱대일행이 있던 헛간에서 멀리 떨어진 인가에 들러 하룻밤 신세를 부탁했다.

"거, 인상 좀 펴라우! 내래 험한 일 시키려고 이러는 게 아니야! 사람하나 구하겠다고 이러는 것 아니네?"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한 방안에 짱대가 제대로 눕지도 않고 우거지상을 하고 있자 장판수는 그를 달랠 양으로 말했다. 하지만 짱대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뭐 이런다고 해서 누가 알아줍니까? 차라리 그 양반이 청의 관리인지 뭔지 하는 놈을 죽이도록 놔두는 게 나을 것 같소이다."

장판수는 짱대의 말에 벌컥 화를 내려다가 마음을 바꾸어 차분히 타일렀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왜 나를 데려오고 자네들에게 힘을 빌리려 했겠네? 그리고 이제 그런 놈 하나 죽여 봐야 약간 분풀이는 될지 몰라도 아무런 득이 될 게 없어."

짱대는 머뭇거리는 태도를 취하다가 벌렁 자리에 누워버렸다.

"에이! 모르겠소! 내일 닥쳐보면 어찌 되겠지!"

다음날, 장판수는 좀처럼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려는 짱대를 억지로 깨워 아침도 거른 채 남별궁 인근으로 향했다. 예전 같으면 사신을 맞아들이기에 앞서 병사들이 늘어서고 주변 정돈을 단단히 했을 터이지만 그럴 의지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경황이 없는 것인지 남별궁 주위에는 그저 인적만 드물 뿐 아무런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풀숲에 앉아 사람들을 기다리던 장판수와 짱대는 차충량은 고사하고 짱대의 부하들조차 나타나지 않자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이거 네 부하놈들이 널 내버려 둔 모양이군."

짱대는 얼굴이 벌게진 채 장판수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앉아 있기가 갑갑해진 장판수는 차충량을 찾아 탁 트인 남별궁 인근을 돌아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만 돌아갑시다. 그 양반이 겁을 먹고 포기한 것이 아니오. 그러니 장형에게도 말없이 사라진 것이고."

장판수는 차충량이 일을 뒤로 미루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지만, 일단 청 사신일행이 남별궁에 들어선 후에는 손을 쓸 방도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잠했던 남별궁 근처에 하나 둘씩 병사들이 늘어서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때가 된 것 같은데 일단 일행이 나타나기까지는 기다려 보자우."

짱대는 마구 투덜거렸지만 곧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습을 나타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다물고서는 행차를 구경하기 위해 손을 눈 위에 가져다 대고 입을 해죽 벌렸다. 장판수는 짱대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가볍게 툭 치고서는 병사들이 의심하지 않게 편안히 서서 행차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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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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