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인 선에서조차 보호 못받는 이주노동자들

담당 공무원들, 관련 규정 몰라 선의 피해 우려

등록 2005.11.09 21:02수정 2005.11.1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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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기본적인 규정도 제대로 모르는 관련 공무원들 때문에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이 애매한 곤란을 겪는 일들을 요즘 들어 자주 목격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노동부 지역 고용안정센터에 갔던 인도네시아인 루슬란(Ruslan) 전화를 받았는데, 담당 직원이 규정을 잘못 이해하여 어쩔 줄 모르고 도움을 요청해 왔습니다. 루슬란은 1년간의 근로계약이 만기가 되어 사업장이 있는 지역 외국인 지원단체 실무자의 도움을 얻어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하러 갔던 것인데, 사장의 동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변경신청 접수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업장 변경 신청이 되지 않는다는 담당 직원의 완강한 태도에 전화를 해 왔던 루슬란은 '혹시 잘못돼서 불법체류자가 되는 건 아닌지'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루슬란은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하기 전에 자신이 일하고 있던 회사에서 급여를 정당하게 주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서 우리 쉼터를 찾아왔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가 가져왔던 급여 내역서에 의하면 기본급이 40만 5천원으로 책정돼 있었습니다. 금년도 최저임금 고시금액과는 30만원 가량 차이가 나는 낮은 급여였습니다.

a 루슬란 급여내역서

루슬란 급여내역서 ⓒ 고기복

하루 3시간 이상씩 잔업을 하고도, 식대를 포함해서 최저임금에 준하는 금액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는 근로계약이 만기가 되면 사업장 변경 신청을 허락해 달라고 사장에게 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단순히 월급 문제만은 아니고 작업장의 연기 때문에 목이 아프고, 매일 밤 기침으로 잠을 못 자는 통에 건강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급여 문제도 있고 건강 문제도 있으니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할 수 있겠지만 회사에 일손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그는 1년은 채우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1년간의 근로계약이 만기가 되어 사업장 변경을 허락해 달라는 요청에 대해 업체 사장은 "계약을 3년 하고 데려 왔는데, 1년만 하고 옮기면 안 된다. 회사를 옮기면 당장 법무부에 이탈 신고하겠다. 그러면 불법체류자 되는 거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합니다.

결국 루슬란은 사장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고용안정센터에 직권으로 근무처 변경을 해 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 '사업장 변경 신청서' 접수를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은 1년 계약 만기가 사업장 변경 사유가 되지 않는다며 신청서 접수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전화상으로 담당직원이 계약직이라 업무를 숙지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어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9조(근로계약)에서 근로계약을 1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음과 근로계약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고용주는 고용변동신고를 할 의무가 있음을 설명해 줬습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사용주가 고용변동신고에 응하지 않을 경우 노동부 직권에 의한 근무처 변경사유가 되며, 직권에 의한 판단시 근거서류로 계약기간 만료를 알 수 있는 근로계약서를 제시하도록 외국인의 고용 및 취업관리 지침에서 규정하고 있다'면서 외국인력 담당자에게 알아듣게 설명을 했는데도, 담당자는 신청서 접수에 대해서는 완강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전화상으로 긴 설명을 하고 나서도 담당 직원이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지만 인천으로 당장 달려갈 수도 없고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해당 업무로 먹고 사는 업무 담당자에게 외부인이 아주 상식적인 선에서 업무에 관한 규정을 설명했지만, 알아듣지 못 했다면 문제가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싶었습니다.

일이 이쯤 되자, 루슬란은 본의 아니게 자신이 불법체류자가 되는 게 아닌지, 회사로 돌아가서 사장에게 잘못했다고 해야 하는지 물어왔습니다. 전화상으로 길게 얘기를 할 형편이 되지 못했던 나는 "담당 직원이 규정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내일까지 회사에 연락을 취한다고 했으니 한 번 기다려 보자"면서 그를 달랬습니다.

문제는 이런 식의 전화가 오늘만의 일이 아니라는데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부천에서 1년을 일했던 수립또(Suripto)와 그 친구 나낭(Nanang)은 1년 계약 만기가 돼서 근무처 변경 신청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지난주 회사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지역 고용안정센터에서는 '외국인들이 사업주의 승인 없이 근무처 변경 신고를 하러 왔기 때문에 사업장 변경 신청 접수를 거절했다'고 말을 하며, 업체 복귀 안하면 불법체류자 된다는 업체를 거들었습니다.

규정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담당직원은 심지어 외국인들의 근로계약이 언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7조에 의하면 '근로계약의 효력발생 시기는 외국인근로자가 입국한 날로부터 된다'고 되어 있는데, 외국인이주노동자의 특성상 근로계약 시기와 절차에 대한 관련 규정은 담당공무원으로서 기본적인 상식일 텐데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었습니다.

관련 규정을 들며 설명을 해 주는 사람이 마치 생떼를 쓰는 것처럼 비춰지는 현실 앞에선 분통이 터지기도 합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이럴진대, 당하는 입장에서야 오죽할까 마는, 오히려 '불법체류자가 되면 어쩌나?'하는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의 현주소입니다.

기본적인 규정도 제대로 모르는 관련 담당자들로 인해 상식적인 선에서조차 보호 못 받는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우리사회가 이제는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겼다는 생각이 드는 지금도 같은 문제로 전화를 해 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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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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