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여, 부디 일관성을 지켜라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구속·불구속 논란 바라보는 이중적 시각

등록 2005.11.11 11:30수정 2005.11.1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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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국일보> 10월 13일자 사설(위)과 11월 11일자 사설. 두 사설은 검찰의 구속과 불구속 원칙에 대해 언급하면서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

<한국일보> 10월 13일자 사설(위)과 11월 11일자 사설. 두 사설은 검찰의 구속과 불구속 원칙에 대해 언급하면서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 ⓒ 한국일보 PDF

두 신문의 사설이 눈길을 끈다. <중앙일보>와 <한국일보>의 사설이다. 두 사설 모두 두산그룹 총수일가에 대한 검찰의 불구속 처리를 소재로 삼고 있다. 주장도 같다.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접근법은 다르다.

우선 <중앙일보> 사설부터 짚고 넘어가자. <중앙일보>는 검찰의 불구속 처리를 "어렵지만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평가했다. 근거는 하나다. "비리 경영인과 기업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재판 절차가 남아 있는 만큼 법의 심판을 통해 경영인을 징벌하되 굳이 기업까지 죽이거나 멍들게 할 필요는 없다"는 설명도 붙였다.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 <중앙일보>의 주장엔, 구속은 기업을 죽이는 것이고 불구속은 기업을 살리는 것이라는 논리가 깔려있다. 이해할 수 없는 건 바로 이 부분이다.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해괴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미루어 짐작하는 일조차 버겁다.

굳이 추측하자면 경영인을 구속하면 당장 기업 경영에 타격이 오기 때문에 기업을 죽이는 결과를 빚는다는 우려를 깔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도 아니다. 박용성 전 회장과 박용만 전 부회장은 검찰이 불구속 처리하기 며칠 전에 이미 직을 내놨다. 그럼 두 사람의 사퇴는 항간의 추측대로 '면피용 쇼'란 말인가?

외환위기 이후 상당수 재벌 계열사가 그룹에서 떨어져 나왔다. 당연히 기존 경영인은 축출됐고 이 기업들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여러 기업이 우량기업으로 재탄생해 인수합병 시장에 나올 채비를 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먼저 이 점부터 되돌아봐야 한다.

해괴한 <중앙> 사설, 경영인 구속하면 당장 경영에 타격?

<중앙일보> 사설에 대한 '감상'은 이것으로 갈음하자. 좀 더 주의 깊게 읽어야 할 사설은 <한국일보>의 것이다.


<한국일보>는 "참여연대와 진보언론 등은 (불구속 처리를) 재벌 봐주기라고 비난"하는데 "이 논리가 오히려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강정구 교수 구속을 고집한 검찰이 두산 일가를 불구속 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다는 "참여연대와 진보언론"의 논리는 "불구속 원칙이 무죄추정 정신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

비판 뒤에 <한국일보>가 내놓은 결론은 이런 것이다. "진정한 인권의식에 바탕"한 것이 아니라 "편향되고 왜곡된 논리"를 펴는 "시민사회와 언론부터 원칙과 대의에 충실해야 한다"


얼핏 봐선 흠잡을 데 없는 지적이다. 무죄 추정의 정신과 인권 의식을 강조하는데 어떻게 반론을 들이댈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공감'은 얼핏 봤을 때의 얘기다. 자세히 보면 '공감'은 철회돼야 한다.

<한국일보>가 일관성이 없다고 먼저 따졌어야 할 대상은 검찰이다. <한국일보>가 강조한 무죄 추정의 정신과 인권 의식에 기초하면 강정구 교수 또한 불구속 처리했어야 마땅했다. 도주와 증거 인멸의 우려, 그리고 사는 곳이 일정치 않을 때를 제외하고는 불구속을 원칙으로 한다는 형사소송법의 규정에 입각해 봐도 그렇고, 강 교수가 경찰 조사에 순순히 응하는 등 도주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검찰 수사팀의 보고서 내용을 훓어 봐도 그렇다.

그런데도 검찰은 강 교수는 구속, 두산 총수일가는 불구속 의견을 내놨다. 전자는 '죄질', 후자는 '국익' 등등의 형사소송법 외적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참여연대와 진보언론"이 지적한 바는 바로 이것이다. 이런 지적이 어째서 "국가 형벌권 남·오용을 감시하는 시민사회와 언론"의 "원칙과 대의"에서 일탈한 것으로 매도돼야 하는가.

<한국일보>가 일관성 문제를 제기했으니 하나 더 추가하자. <한국일보>는 천정배 법무장관이 지휘권을 발동하자 지난달 14일 이런 내용의 사설을 내놓은 바 있다.

"구속수사를 굳이 가로막은 명분이 별로 설득력이 없(다)." 또 천 장관의 명분이 "너무 원론적이어서 오히려 설득력이 낮다."

"구속수사를 가로막은 명분이 별로 설득력이 없다"는 건 무슨 말인가? <한국일보>가 그토록 강조한 무죄 추정의 정신과 인권 의식에 기초해 불구속 수사 지휘를 한 게 "너무 원론적이어서 오히려 설득력이 낮다"면 "국가 형벌권의 남·오용을 감시해야 할 시민사회와 언론"은 어떤 기준으로 사법당국을 감시해야 하는가?

<한국> 사설의 갑작스런 돌변, 일관성 요구하더니 자신의 일관성은

<한국일보>는 이 사설에서 "헌법정신에 기초한 불구속 수사 원칙은 늘 존중해야 하지만… 구체적 범죄 혐의의 중대성과 구속사유 충족 여부는 검찰과 법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순리"라고 했다.

두루뭉술하게 버무려진 구절이기에 재구성이 필요하다. 정리하자면 불구속 수사 원칙은 존중해야 하지만 구체적 범죄 혐의의 중대성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구속사유 충족 여부는 검찰과 법원의 판단에 맡기자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니 치명적 맹점이 발견된다. 검찰에게 '구체적 범죄 혐의의 중대성'을 명분으로 '늘 존중돼야 하는 불구속 수사원칙'을 갉아먹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구체적 범죄 혐의의 중대성'이 '범죄를 구성하는 행위의 위법성 정도'를 뜻하는 것이라면 검찰이 판단하고 말 것도 없다. 그건 사실판단 영역이다. 하지만 <한국일보>가 말하고 있는 것은 가치판단이 동반되는 '중대성'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강 교수 구속 파동이 나왔고, 국가 형벌권 남·오용 논란이 빚어졌다.

이렇게 '회고'하고 나니 앞의 말을 보완해야 할 것 같다. <한국일보>가 일관성이 없다고 먼저 따졌어야 할 대상은 검찰뿐 아니라 <한국일보> 자신도 포함된다. 한 달 전에는 형사소송법 외적 요인에 의한 검찰의 자의적 판단 여지를 부여해놓고선, 이제 와서는 무죄 추정의 정신과 인권 의식을 거론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오늘자 사설 제목으로 "구속·불구속 논란의 혼란스러움"을 뽑았지만 이 "혼란스러움"은 <한국일보> 사설란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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