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명자(元明子)는 공동(崆峒)의 이대제자로 사십 줄에 접어든 도장(道長)이었다. 그는 제마척사맹의 선발대의 퇴로를 확보하고, 후발대와의 연결로를 확보하기 위해 선발된 삼십이 명의 인원 중 한명이었다.
그는 공동의 비전절기인 현명신장(玄冥神掌), 단망인(斷網印)을 익혔을 뿐 아니라 경신술인 행운유수(行雲流水)에 능숙해 깎아지른 절벽을 타는데 무리가 없었기 때문에 선발된 인물이었다. 그는 며칠동안 동료들과 함께 절벽을 샅샅이 조사했고,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 선발대의 삼진 역시 아무 일없이 천마곡으로 진입한 후라 느긋한 마음도 들고 있었다.
“........?”
헌데 어찌된 일인가?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네 마리의 개가 절벽을 타고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희고, 검으며. 누렇고, 잿빛인 네 마리의 개였다. 그 개들은 아슬아슬하게 절벽 사이를 누비며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저것들이 갑자기 어디서 나온 것이지? 분명 늑대는 아닌 것 같은데....”
야생의 개들은 아니었다. 털에 기름기가 돌고 가지런한 것으로 보아 분명 사람의 손이 탄 개들이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그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자신을 피해 절벽을 타고 오르는 잿빛 개를 쫓았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인적이 전혀 없던 곳에서 야생의 들개도 아닌 사람이 기르던 개가 돌아다닌다는 것은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확인해야 했다.
“무슨 짓을 하는 것....이...”
원명자의 눈에 잿빛 개가 앞발로 땅을 헤집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숨겨놓은 뼈다귀라도 찾는 것일까? 아니면 숨어있는 들쥐라도 잡으려는 것일까?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개는 뼈다귀처럼 생긴 것을 입에 물고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자 그의 고막을 찢는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
콰---쾅---쾅---!
지진이라도 난 듯 계곡 전체가 흔들리더니 뒤이어 어디선가 또 다른 폭발음이 들렸다. 우박처럼 바위덩이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원명자는 급히 신형을 날리려 했으나 집채 만 한 바위가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고 절벽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 의식을 잃었다. 공동이 자랑하는 행운유수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 뒤에 연이어 두 번의 폭발음이 들리고 마지막으로 터진 폭발은 온 절벽을 뒤흔들어 아예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했다. 이것으로 천마곡은 무너져 내린 바위와 흙더미로 거대한 산이 가로 막힌 듯 그 입구가 사라졌다. 제마척사맹의 선발대와 후발대의 연결이 끊어진 것은 물론 천마곡의 통로는 완전히 사라졌다.
더구나 아직 폭발의 여진이 남아있어 언제 산사태가 일어날지 모를 형국에 목숨을 걸고 험준한 바위덩이를 헤치며 천마곡에 들어가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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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하 혁잠(爀箴)입니다.’
전음이었다. 전월헌은 뜨겁게 느껴지는 초여름의 햇살을 맞으며 관도(官道)를 걷고 있었다. 자신의 좌우산인(左右狻人) 중 좌산인인 혁잠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그림자였다.
‘종리추는?’
전월헌 역시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걸어가면서 전음으로 물었다. 하지만 잠시 대답이 없었다. 좋지 않은 결과라는 의미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이어진 관도의 끝을 보는 듯 시선을 지평선으로 던졌다.
‘모두 당했습니다.’
대답은 두 호흡이 지난 다음에야 나왔다. 전월헌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그것은 그가 극히 기분이 상했다는 뜻.
‘그는?’
‘중독시키고 부상을 입히기는 했으나 치명적이지 못했습니다.’
전월헌은 기분이 나빠졌다. 정말 나빠져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정도였다. 누구라도 자신의 앞에 있으면 베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가 그렇게 강하던가?’
‘강했습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방조자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방조자...?’
방조자가 있었다는 말에 전월헌은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종리추가 이끌고 간 전력은 무시 못 할 정도였다. 모습을 보인 상태에서 드잡이 질을 한다 해도 자신할 수 없었다. 더구나 그들은 살수였고, 충분한 기회를 노렸을 터였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담천의 그 자는 강했지만 종리추는 결정적인 순간에 방조자에 의해 당했습니다.’
종리추가 죽었다는 말을 듣는 이 순간에도 전월헌은 기분이 더욱 나아지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이유인지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가 마음속으로 두려워하는 상대는 이 중원에서 오직 세 인물뿐이었다. 대사형 장철궁과 셋째사형 방백린, 그리고 다섯째 사형인 강명이었다. 그런 인물은 셋이면 족했다. 더 이상 나타나서는 안 된다.
‘비원의 인물인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방조자는 어느 순간 사라졌고 그 자 혼자 주왕을 만났습니다.’
‘비원의 인물도 아니다...? 도대체 누구일까?’
이미 혁잠도 균대위의 수장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가 균대위의 수장들을 거론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균대위의 인물도 아니다. 기이한 호기심이 일었다.
‘그는 주왕과 만나고 난 뒤 곧 바로 북쪽으로 향해 떠났습니다.’
‘천마곡....?’
‘가능성이 있습니다. 추측컨대 주왕은 그 자를 설득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마척사맹의 맹주이니 당연히 천마곡으로 가야할 것이다. 전월헌은 다시 걸음을 떼었다. 그리고는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공환(蚣䴉).... 있는가?”
“속하.... 대령해 있습니다.”
공환은 전월헌의 우산인. 목소리는 사오 장 밖에서 들렸다. 하지만 목소리는 또렷했고 전음과도 같이 전월헌의 귀를 파고들었다.
“둘째사형은...?”
“합비(合肥)를 지나고 있습니다.”
“두렵기는 한 모양이군. 꽤 멀리 갔어. 헌데 어디로 가는 거지? 천마곡으로 갈 줄 알았는데.....”
금릉에서 천마곡으로 가려면 물길을 타고 회음(淮陰)을 지나는 것이 지름길이다. 헌데 백결은 안휘성 합비로 넘어간 것이다.
“중원 천지 어디를 가던 상관없지. 절대 내 손을 벗어나지 못해.”
무엇을 믿고 저리 큰소리치는 것일까? 하지만 나직이 중얼거리는 그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잡으려다 놓친 두 마리의 토끼다. 어느 토끼를 먼저 사냥해야 할까?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쫓으려다간 모두 놓칠 수 있다.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 했지만 곧바로 결정을 내렸다.
“말을 구하도록.... 우리는 합비로 간다.”
오래 생각하는 것은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도 결국 천마곡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었다. 담천의는 천마곡에서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될 터였다. 그렇다면 행선지가 불분명한 남은 한 마리의 토끼를 먼저 잡는 것이 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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