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도리 굴밭이 다시 열리던 날

[섬이야기 15] 핵폭풍 지나간 '위도에 가다' 2

등록 2005.11.24 09:44수정 2005.11.2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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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에 가난하기로 친다면 농사를 짓는 치도리만한 곳이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상대적으로 빚이 없고, 작은 돈이지만 통장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치도리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마을 앞에 갯벌이 있기 때문이다. 위도에서 유일하게 갯벌 어업이 발달한 곳이 치도리이다.

a 여명과 함께 치도리 갯벌 길을 열었다.

여명과 함께 치도리 갯벌 길을 열었다. ⓒ 김준


a 갯벌이 아니라 자연이 준 선물 '굴 밭'이다.

갯벌이 아니라 자연이 준 선물 '굴 밭'이다. ⓒ 김준

'갯벌' 막아 '논' 만드는 것, 주민 숙원 사업


몇 년 전까지 딴치도 앞에 지주식 김양식을 했지만 핵폭풍이 몰아치면서 중단되었다. 지금쯤이면 김발을 일찍 설치한 곳은 초사리(첫수확)가 눈앞인데 치도리에서 그 흔적은 없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기가 막힌다.

핵 귀신이 부안과 위도를 갈라놓았을 때 위도 주민들은 '격포에서 김양식에 필요한 재료들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김양식이 어렵다. 차라리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에 상황을 알리고 보상을 받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한수원 지역소장의 '실비 차원에서 보상은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바다에 그대로 방치한 채 보상도 받지 못하고 3년을 맞고 있다.

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마을 갯벌을 논으로 만들어주기를 원했다. 논이 귀한 섬에서 농지를 마련하는 것보다 중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격포로 뱃길이 열리면서 위도는 전국의 섬들 중 교통이 좋기로 손에 꼽힌다. 교통이 좋아졌다는 것과 다리를 놓는다는 것은 섬 주민들에게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다리를 놓는다는 것은 육지 것들이 무시로 자동차를 가지고 섬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뱃길이 좋아졌다는 것은 섬에서 생산한 것들이 육지로 유통되기 편리하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치도리처럼 겨울철 굴작업을 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위도에서 유일하게 농사를 짓는 곳은 핵폐기장 후보지로 주목을 받았던 망금봉 아래 내원사 인근의 분지이다. 이곳 분지는 60만 평에 해당하는데 논과 밭들이 이곳에 집중해 있고 대부분 치도리 주민들의 땅이다. 핵폐기장이 들어오게 되면 치도리 주민들은 직접적인 토지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찬성을 많이 했다.

a 어민들, 길을 내준 바다에 감사할 뿐이다.

어민들, 길을 내준 바다에 감사할 뿐이다. ⓒ 김준

치도리는 이곳 분지에 있는 땅 말고도 마을 앞에 넓은 갯벌을 가지고 있다. 마을 앞 작은 딴치도와 큰 딴치도 밖까지 드러나는 갯벌은 농사 지을 땅을 갖고 싶어 했던 주민들에게 군침을 흘리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앞에 작은 섬 두 개가 있어 연결해 매립하기도 쉽기 때문에 기회만 있으면 각계요로에 간척을 해줄 것을 요청했었다. 하지만 논을 만드는 것 보다 더 중요한 농사지을 물을 마련할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만일 그 갯벌을 막아서 논을 만들었다면 100여 호의 치도리 주민들은 무엇로 생계를 해결하면 살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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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a 갯벌을 연 첫날 치도리 주민들이 모두 갯벌로 나왔다.

갯벌을 연 첫날 치도리 주민들이 모두 갯벌로 나왔다. ⓒ 김준

갯벌을 연 치도리(전 핵폐기장 후보지)

도무지 앞뒤를 분간하지 못한 만큼 어둡던 하늘에 조금씩 열리면서 치도리 앞 큰 딴치도가 성큼 앞으로 다가 서고, 작은 딴치도가 뒤따른다. 차가운 유리창에 얼굴을 붙이고 밖을 쳐다봤다. 새벽을 가르고 치도리와 딴치도 사이의 바닷길이 열리고 있었다. 위도판 '모세의 기적'이랄까. 진도 회동의 바닷길은 관광객용이겠지만, 위도 치도리 바닷길은 주민들의 생명의 길이다.


새벽 6시 45분. 두런거리는 사람들 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창문을 타고 넘어왔다. 개가 짖지 않는 것으로 보아 마을 주민들이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목도리에 털모자까지 눌러쓰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갯벌에서 호미질을 하기에는 어둡다. 그래도 부지런한 사람들은 딴치도 가까이 들어가 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대문 앞에, 선착장에 주민들이 모여서 어둠이 가시기만 기다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11월 15일)은 이 치도리 갯벌이 처음 열리는 날이다. 1년 내내 가두었던 갯벌을 열고 처음 굴을 채취하는 날이다. 추운 날씨 탓이지만 약간 상기해 있는 모습이다. 매년 이맘때면 열리는 갯벌이지만 장가간 신랑이 첫날밤 신부의 옷고름을 풀듯 조심스럽다. 어디 이 갯벌이 예사 갯벌이던가.

a 내년 3월까지 굴 채취는 계속될 것이다.

내년 3월까지 굴 채취는 계속될 것이다. ⓒ 김준

치도리 마을 중앙에서 작은 딴치도와 큰 딴치도로 Y자 모양으로 갯벌이 열리는 바닷길 위가 그대로 굴 밭이다. 굴을 따는 것이 아니라 주워 담는다고 해야 옳을 정도이다. 특히 종패도 뿌리지 않는 자연산이라고 한다. 내년 3월까지 계속될 굴작업은 물때와 관계없다. 물이 적게 나면 작업시간이 짧고 많이 나면 작업시간이 길다는 차이만 있을 뿐 매일 작업은 계속된다.

얼추 100여 명은 넘게 갯벌에 들어온 것 같다. 여자들은 굴을 담고 남자들은 지게나 경운기로 운반을 한다. 껍질째 담아 와서 굴을 까는 작업을 거쳐 판매하고 있다. 섬 안에서 소화할 수 없기 때문에 PT병으로 담아서 밖으로 보낸다. 개인별로 단골들도 형성되어 있다.

굴 가격은 시세에 따라 변하지만 쌀 때는 1만5천 원에서 2만5천 원까지 거래되었다. 주민들 중에 굴작업을 잘하는 사람은 1천여만 원 벌이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못해도 5백만 원 벌이는 한다. 옛날에는 가구당 1명씩 굴작업하는 인원을 엄격하게 제한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한 가구에서 2명이나 3명이 들어와서 작업을 하기도 한다.

가구 구성원이라고 해봐야 1명 아니면 노인부부가 고작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생산보다는 오히려 판로라고 한다. 육지의 어촌처럼 상인들이 들어와서 곧바로 가져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치도리 주민들의 유일한 소득원이며 용돈벌이, 도시에 있는 자식들에게 보내는 고향의 맛, 부모로서의 품위가 바로 이 갯벌에서 이루어진다.

a 해풍과 햇볕을 막기 위해 화장을 하는 그녀를 주민들은 '칼라아줌마'라고 부른다. 회갑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해풍과 햇볕을 막기 위해 화장을 하는 그녀를 주민들은 '칼라아줌마'라고 부른다. 회갑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 김준


a 양지바른 곳에서 ' 굴까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양지바른 곳에서 ' 굴까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 김준

세대간, 지역간 통합과 함께 새로운 방안 모색을

'핵폭풍'이 불고 지나간 위도에 뭐가 남았을까. 파장금 횟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평일에다 추운 날씨 탓인지 식당에는 지역 주민 4명이 소주를 마시며 무슨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내용은 핵폐기장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찬성과 반대가 같은 동네에서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손바닥 보듯이 훤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찬성 측의 주요 직책을 맡았던 사람들인 모양인데 최근 주민투표에서 경주로 결정된 것을 놓고서 위도에 유치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지역발전의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것과 그 책임이 전적으로 유치반대를 했던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었다.

a 해가 머리 위에 오를 참까지 작업이 계속되었다.

해가 머리 위에 오를 참까지 작업이 계속되었다. ⓒ 김준


a 치도리 갯벌에서 본 망금봉, 봉우리 너머에 핵폐기장이 세워질 계획이었다.

치도리 갯벌에서 본 망금봉, 봉우리 너머에 핵폐기장이 세워질 계획이었다. ⓒ 김준

핵폐기장을 둘러싸고 섬 내부에서만 갈등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부안군 내부에서도 새만금 사업의 재판이 형성되었으며, 출향 인사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생겨났다. 특히 섬에 있는 부모와 서울을 비롯해 도시에 나가있는 자식들 사이에 의견이 달라 세대간, 부자간의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심각한 경우에는 부자지간이 위협받는 사례가 생기기도 했다고 한다.

이제 모두 물 건너간 마당에 찬성과 반대 의미가 없지만 위도에는 그 상처가 오래 갈 것 같다. 아니 언제고 다른 계기가 생기면 재현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국가 프로젝트에 의해서 입은 상처들은 위도의 당사자들을 제외하고는 금방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주민들에게 '트라우마'가 되어 있다. 찬성과 반대 어느 쪽이건 국가에 의해서 무책임하게 휘둘려진 폭력 앞에 피해는 주민들만 입고 말았다.

이런 폭력에 대한 치유 없이 불쑥 새로운 '제안'을 내놓은 것은 자칫하면 침잠해 있는 트라우마를 불러오는 결과를 낳고 말 것이다. '제안' 자체가 주민들이 겪은 고통과 갈등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진정 위도의 섬사람들을 위한다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찬성과 반대를 했던 시민단체, 주민이 함께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황해시대>에도 제공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신황해시대>에도 제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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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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