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316회

등록 2005.11.29 08:16수정 2005.11.29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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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관왕묘라던가 아니면 사당(祠堂)이라고 하는 것이 옳았다. 폐찰이라면 지어진 건물이 적어도 두세 채는 있어야 했지만 부서진 담벼락과 한쪽이 떨어져 나간 문짝 사이로 보이는 것은 뎅그러니 한 채의 건물뿐이었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군.”


좌측에 서 있는 인물의 입에서 감정이 섞이지 않은 메마른 목소리가 흘렀다. 말한 인물은 주위를 쭉 훑었다. 그리더니 천천히 걸음을 떼어 부서진 문 안으로 들어가자 나머지 인물들도 따라 들어갔다.

밖의 낡아 부서진 담벼락이나 문과는 달리 건물은 비교적 나은 편이었다. 벽은 돌로 만들어 진 것 같았는데 부서져 내린 곳이 없었고, 문짝 역시 낡기는 했으나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

사당의 문 쪽으로 다가가려던 인물이 두 걸음을 떼기도 전에 우뚝 멈췄다. 무언가 느낀 것이다. 극히 미세했지만 분명 살기였다.

“접대할 사람이 있어야 맛이 나지.”


중얼거림과 함께 흑의의 사내는 고개를 돌리며 관을 메고 있던 네 사내를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문짝 하나 정도는 날려야 하지 않겠나?”


그 순간이었다. 사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관을 든 네 명의 사내는 어깨에 메었던 관을 양손으로 높이 쳐 올리더니 사당의 문을 향해 던지는 것이 아닌가? 관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일직선으로 쾌속하게 문을 향해 날아갔다.

슈우----

그것은 곧 문짝을 박살내고 관마저 부서질 것 같았다. 하지만 관이 문짝에 부딪치려는 순간 사당의 문이 저절로 활짝 열렸다. 동시에 사당 안에서 두 명의 인물이 모습을 보이더니 날라 오는 관을 사뿐히 받아드는 것이 아닌가?

“아주 고약한 짓을 하는걸 보니 철혈보의 미친개라는 원월만도(圓月彎刀) 좌승(佐承)이란 작자인 게로군.”

노기 어린 말과 함께 열려진 문으로 둥근 얼굴에 약간 살이 찐 듯한 초로의 노인이 모습을 보였다. 왼손에는 주사위로 보이는 것을 돌리며 딸그락 소리를 내고 있었고, 오른 손은 선명하게 달빛을 반사시키는 것으로 보아 금속으로 만든 의수를 끼고 있는 인물이었다.

바로 열락장에 나타났던 도천수(賭天手) 혁련기(赫連奇)였다. 그는 매우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서서히 걸어 나오다가 문을 막듯이 더 나오지 않고 걸음을 멈췄다. 눌러 쓴 사립 아래로 흑의사내의 가지런한 흰 이가 드러났다.

“미친개라… 누가 지었는지 아주 마음에 드는군. 한 번 미친개에게 물려보겠소?”

그는 사립을 치켜 올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사립을 혁련기에게 날리고 있었다. 사립은 맹렬하게 회전하면서 혁련기의 얼굴을 향해 쏘아갔다.

스으윽---

비록 사립이지만 맞으면 얼굴이 온통 뭉개질 판이었다. 하지만 혁련기는 슬쩍 몸을 낮추며 사립을 피했다. 그 순간 원월만도 좌승의 신형이 일직선으로 쏘아나가며 그의 도가 번쩍 섬광을 토해냈다. 사립은 그저 그의 이목을 가리기 위한 수단이었고, 미세한 틈이라도 보면 반드시 벤다는 그의 도는 어느새 혁련기의 허리를 베어가고 있었다.

츄아악----!

그저 사립을 피하기 위해 몸을 낮춘 것은 혁련기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허리와 무릎을 슬쩍 구부리며 사립을 피하는 자세는 갑작스런 공격에 신속히 반응할 수 없는 모습이어서 혁련기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그는 급히 신형을 뒤로 물렸다.

하지만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피하기에는 좌승의 도는 너무 빨랐다. 아무리 급히 피한다 해도 최소한 복부라도 베어질 판이었다.

파직---!

꼼짝없이 혁련기의 복부가 좌승의 도에 의해 그어지려는 순간 문 양쪽에서 두 자루의 검날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교모하게 서로 엇갈리며 좌승의 도를 튕겨내는가 동시에 좌승의 어깨와 복부를 노리며 쏘아갔다.

하지만 좌승은 물러나지 않았다. 순식간에 두 개의 검날을 쳐내는가 동시에 원월만도가 기이로운 호선을 그려내며 검날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두 인물을 오히려 압박해 갔다. 모습을 보인 인물들은 바로 용화사에서 강중 장군을 모시던 종륜(宗侖)과 항인(恒寅)이었다.

좌승의 도에서는 섬뜩한 살기가 흘러 나왔지만 원월만도가 그려내는 월광(月光)은 차라리 아름다웠다.

파파파--파--팍--!

두 자루의 검과 한 자루의 도가 허공에서 십여 차례나 격돌을 일으키며 불꽃을 피워냈다. 좌승은 누구나 인정하는 고수였고, 도귀(刀鬼)였다. 그럼에도 종륜과 항인은 전혀 밀리는 기색이 없었다. 그들의 몸놀림은 날렵했고 안정되어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오래 동안 함께 보낸 시간 덕택이었는지 손발이 척척 맞고 있었다. 종륜이 공격해 가면 항인이 수비를 겸하고, 좌승이 공격해 오면 방어와 동시에 공격해 들어갔다. 그러다보니 순식간에 이십여 초가 교환되었음에도 양쪽 모두 전혀 이득을 보지 못하였다.

좌승의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가며 일그러진 미소를 보였다. 좌승의 미소는 곧 분노였다. 그의 눈빛이 더욱 차갑게 변하는 것과 함께 그의 도가 갑작스런 변화를 일으켰다. 지금까지의 그의 원월만도는 호선을 그으며 아름답기까지 했다. 하지만 변화를 일으킨 그의 도는 달무리처럼 푸르스름한 도기를 내뿜고 있었다.

스으으--- 스슷----

원월만도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원월만도가 허공을 긋자 도영(刀影)이 빽빽하게 허공에 수놓아지며 종륜과 항인을 압박해 들어갔다. 좌승의 도가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자 두 사람 역시 얼굴에 긴장감을 떠올리며 마주쳐갔다.

파지지직---

허나 종륜과 항인은 단 일수의 교환에 급격하게 수세로 몰렸다. 종륜은 하마터면 자신이 잡고 있는 검을 놓칠 뻔 했고, 그 충격으로 손목에 통증이 느껴져 제대로 검을 세우지 못할 지경이었다. 항인 역시 질식할 것 같은 압박을 느끼며 급히 검을 휘둘렀지만 파고드는 원월만도의 도기에 옷자락에 베어나가고 있었다.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매우 위태로웠고, 재차 신형을 날리며 두 사람을 쏘아가는 좌승의 도는 더욱 강렬한 살기를 띠우고 있었다. 헌데 그 순간이었다.

“건방진 놈…!”

말과 함께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아볼 수 없는 강렬한 한줄기 빛줄기가 수직으로 좌승의 전신에 내리 꽂혔다. 눈을 뜰 수 없는 밝은 빛이었는데 좌승은 경악과 함께 헛바람을 집어 삼키며 그 빛줄기에 마주쳐갔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고 판단되자 공력을 십성까지 끌어올려 쳐내려 한 것이다.

츠츠츠으으---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그 불꽃은 한순간이나마 사당 입구를 대낮같이 환하게 밝혔는데 좌승이 서 있던 자리에는 어느새 나타났는지 덩치가 큰 사내가 서있었다.

“허…억…!”

좌승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온 것은 그의 신형이 뒤로 다섯 걸음이나 밀리고, 멈추기 위해 지탱했던 발이 일장이나 뒤로 주륵 밀린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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