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320회

등록 2005.12.05 08:15수정 2005.12.05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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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루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정작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이미 약속된 시각에서 하루나 늦게 도착했으니 먼저 떠났다 해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자신이 늦게 되면 먼저 출발하라고 했던 것이다.

(먼저 떠난 것이겠지.)


그는 주루 안을 둘러보다가 자신이 찾는 일행이 없자, 자리에 앉을 것인지 그냥 나갈 것인지 망설였다. 하지만 찾는 일행이 없다면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그는 몸을 돌려 문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이상 신검산장(神劍山莊)에 들렀다 가야겠군.)

진성현. 이곳은 신검산장이 있는 곳. 처음 찾아갈 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갔지만, 그곳에서 많은 것을 알았다. 결국 도망치듯이 빠져 나왔지만 이제는 다르다. 초혼령주가 된 지금 균대위의 인물들이 군집해 있는 신검산장은 자신의 영역과 다름이 없었다. 지금 자신의 휘하 이대오위의 수장(首長)들은 다른 일로 신검산장에 있지 않을 터이지만 전대 균대위의 인물들은 상당수가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헌데 그때였다. 황급히 주루 안으로 들어서는 두 사내가 그를 보더니 그 중 한 사내가 반가운 목소리로 불렀다.

“담형…!”

모용수였다. 그의 옆에는 여전히 일엽이란 인물이 있었는데 담천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매우 모호해 보였다. 모용수는 환한 미소를 띠우며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모용형도 이제 도착하신 것이오?”

담천의 역시 포권을 가볍게 취하며 반갑게 맞았다. 이미 도착해 있어야 할 남궁산산의 일행이 보이지 않고 처음 보는 인물이 그의 옆에 있어 다소 궁금했지만 일단 찾던 일행을 만나자 반가웠다.


“그럴 리가 있겠소? 소제는 그제 오후에 도착했소. 담형을 기다리다가 마차를 준비하러 나갔다 오는 길이오.”

“마차라니… 웬 마차를 준비하시오?”

“하하…. 일단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모용수는 먼저 창가에 있는 자리로 가 담천의가 앉기를 기다렸다가 같이 앉았다. 그리고는 장난기가 섞인 은근한 눈길로 나직하게 말했다.

“현 중원에서 가장 지고한 신분이신 제마척사맹의 맹주를 모시려면 아무래도 마차 정도는 필요하지 않겠소? 어찌 맹주 신분에 걸어갈 수 있겠소?”

그의 태도나 말투로 보아 농(弄)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제마척사맹의 맹주 신분이라면 말 한 마디로 현 무림문파를 움직일 수 있는 위치다. 그 권위를 타 문파에서 인정하느냐의 여부는 불확실했지만 대부분의 문파가 제마척사맹으로 뭉친 이상 현 무림에 있어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임에는 분명하였다.

“모용형 답지 않게 그 무슨 말씀이시오? 구구히 변명하지는 않겠으나 앞으로는 그런 말씀하지 마시오. 소제는 제마척사맹인가 하는 무림맹의 맹주가 되겠다고 한 적이 없소.”

나직이 대화한다고는 했지만 그들의 대화를 들었는지 옆 좌석에서 잠시 웅성거림이 있었다. 현 중원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었다면 바로 담천의다. 지금까지 비밀에 쌓여있던 균대위의 수장인 초혼령주요, 이번 탕마멸사의 기치를 세우고 전 무림이 뭉친 제마척사맹의 맹주다.

말로만 듣던 그 인물이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것이다. 담천의는 나직한 수군거림이 이어지면서 주루 안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다고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도 아니어서 내심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하… 이미 정해진 것인데… 하여간 알겠소. 가 보면 되지 않겠소?”

모용수 역시 주위의 움직임을 느꼈는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제법 많은 주루 안의 인물들은 이쪽을 주시하고 있어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담천의는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 했다.

“산산과는 만나지 못하셨소?”

“아… 산산은 어제 새벽 일찍 먼저 출발했소. 아마 지금쯤 천마곡에 당도했을 것이오.”

모용수는 대답과 함께 손짓으로 점소이를 불렀다. 그들 좌석으로 점소이가 종종 걸음으로 뛰어왔다. 점소이는 차 주자를 가져와 탁자에 놓으면서 손님들의 눈치를 살폈다.

“기가 막힌 연화백(蓮花白)이 들어온 것이 있는데 그것으로 올릴 깝죠?”

돈 깨나 있을 법한 모용수를 보며 양 손을 비비며 말하는 점소이 역시 담천의를 힐끗거렸다. 눈치 하나는 점소이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 이미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소리를 이미 들은 모양이었다.

“허… 누가 술을 마시겠다고 하였느냐….”

이미 어둠이 내리는 저녁때라서 그런지 허기도 지고 있었다. 하지만 담천의를 만난 이상 이곳에서 오래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그는 말끝을 흐리다가 담천의를 바라보았다. 아마 식사를 하겠느냐는 의미였던 것 같은데 담천의가 아무 말 없자 담천의의 의향을 물었다.

“어차피 가다가라도 식사를 해야 할 것 같으니 이곳에서 요기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러더니 담천의의 입에서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자 점소이에게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래… 연화백(蓮花白) 한 병하고 삼색소채(三色蔬菜), 홍소어시(紅小魚翅)… 그리고 자네가 괜찮다고 할 만한 것 두 가지 정도 더 가져오게. 음식을 재촉하는 것은 좋지는 않지만 우리가 급히 떠나야 하니 특별히 주방에 부탁 좀 하고….”

그러면서 모용수는 소매에서 조그만 은덩이 하나를 꺼내 점소이에게 손에 건네주었다. 순식간에 점소이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지는 것 같았다. 대개 동전 몇 문 쥐어주는 일은 있어도 이리 은덩이를 주는 손님은 흔치 않은 일이다.

“감사합니다요… 본 주루의 최고 요리로 금방 대령하겠습니다요…. 헤헤….”

점소이는 너무나 기분이 좋은지 얼른 손에 있는 은덩이를 품속에 넣으며 부리나케 주방 쪽으로 뛰어가며 외쳤다.

“삼색소채… 홍소어시… 연화백(蓮花白) 한 병이오. 그리고….”

돈이란 누구에게나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부자라 해서 돈을 마다할 리 없고, 가난한 자일수록 돈에 대한 즐거움은 배가 되는 것이다. 점소이가 뛰어가는 모습을 보며 담천의가 씁쓸하게 웃자 그 모습을 본 모용수가 옆에 앉은 일엽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소개했다.

“아… 소제가 너무 생각이 많았나 보오. 인사들 나누시오. 이쪽은 본 가에 큰 도움을 주시는 일엽형이오.”

그러자 아무런 표정 없이 담천의를 주시하던 일엽이 앉은 채로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당금 무림맹의 맹주이자 초혼령주를 이리도 가깝게 뵐 수 있게 되어 무상의 영광이오.”

분명히 담천의가 제마척사맹의 맹주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모용수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음에도 일엽은 못들은 척 또 다시 그 말을 꺼낸 것이다. 정말 영광스럽게 생각해서 그러는 것인가? 아니면 은근히 심사를 거슬리려 하는 것인가? 하지만 일엽의 얼굴은 청수한 모습 그대로 담담한 표정이어서 선뜻 그의 내심을 읽기 힘들었다.

(고수다.)

평정심을 잃지 않는 모습이었다. 무림세가의 가신(家臣)이라면 대단한 고수일 것이다. 하지만 담천의가 본 일엽은 누구 밑에 들어가 굽실거릴 인물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하여간 자의이던 타의이던 간에 갑작스럽게 대접을 받게 되는 일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담천의요…. 헌데 일엽형께서는 도장(道長)이시오?”

담천의의 물음에 일엽의 눈빛이 미세하게나마 반짝였다. 그는 고개를 미미하게 끄떡였다.

“오래된 일이지만 한때 도관(道館)에서 밥을 축낸 적이 있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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