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조정, '무늬만' 진검승부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꼼수 찾는 여, 밥그릇 싸움 검·경

등록 2005.12.07 09:51수정 2005.12.0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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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후 열린우리당 검·경 수사권조정정책기획단(단장 조성래 의원)이 국회 중앙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박정호


겉모습만 봐서는 '진검승부' 같다. 검찰은 열린우리당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정상명 검찰총장은 수사지휘권 확립 원칙은 양보할 수 없다고 했다. "해볼테면 해보라"는 식이다. 바야흐로 열린우리당과 검찰의 정면 대결이 빚어지는 모양새다. 하지만 겉만 그렇다.

큰 틀은 이미 정해졌다. 검찰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건 열린우리당의 수사권 조정안이지 수사권 조정 그 자체가 아니다.

대검찰청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의 협상 과정을 알고 있었다면 청와대에서 내놓은 안을 수용했어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가 어제 보도한 내용이다. 그래서 <한겨레>는 "검찰이 청와대 안을 마지노선으로 삼고 최종 협상에 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청와대안은 민생범죄에 한해 경찰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이고, 열린우리당안은 외환·내란·공안·선거사범 등을 제외한 나머지 범죄에 대해 경찰 수사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정면대결? 글쎄...

<한겨레>의 전망은 법무부와 검찰 간부들 입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검찰 수사정책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박상옥 대검 공판송무부장은 민생범죄에 한해 경찰에 수사권을 주는 데 동의한다고 했고, 천정배 법무장관도 같은 얘기를 했다.

결국 '정면대결'의 실상은 떡판을 둘러싼 싸움이 아니라 떡고물을 둘러싼 싸움이다. 그리고 검찰 수뇌부의 '목소리 높이기'는 기득권 상실에 반발하는 평검사를 의식한 '제식구 위무용'이다.

물론 수사지휘권 문제가 남지만 이 문제는 수사주체 문제와 연결돼 있다. 검찰은 민생범죄에 한해 경찰에 수사권을 주더라도 검찰의 수사지휘권은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리 설득력이 커 보이지는 않는다. 수사권 앞에 붙는 수식어가 바로 '독자적'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열린우리당의 태도이지만 꽉 막혀있는 것 같지는 않다. 열린우리당은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확정하면서 이를 '준(準) 당론' 형태로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어제 고위정책회의를 열어 "앞으로 당정협의를 해나가면서… 필요하면 구체적 입법화 과정에서 정부 의견을 고려하는 등 합리적이고 바람직하게 풀겠다"고 의견을 정리했다. 이후의 변경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정리하자면 열린우리당 스스로 자신들의 안이 그대로 관철될 것이라 확신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금융산업구조개선법에 대해 그렇게 목청을 높이다가 청와대의 분리대응안이 나오자 이를 슬그머니 당론으로 채택한 전력만으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얘기다.

그럼 왜 열린우리당은 강수를 선택한 것일까? 이와 관련해 정상명 검찰총장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던 열린우리당이 왜 우리를 흔들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는 말이다.

열린우리당 노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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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권 조정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검찰(왼쪽)과 경찰. ⓒ 오마이뉴스

상당수 언론도 이런 견해에 동의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열린우리당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이경제검(以警制檢)'으로 규정했고, <한겨레>는 '검찰 한방먹이기'로 분석한 바 있다.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한 반발, 두산 총수일가 불구속 및 전직 국정원장 구속 등 열린우리당과 엇박자를 쳐온 검찰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이번 조정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설령 자신들의 조정안이 관철되지 않더라도 경고 메시지로는 충분하지 않느냐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검찰은 일단 초반 기선을 잡은 것 같다. 열린우리당의 조정안을 정치색 짙은 '꼼수'로 몰아붙이면서 야당을 추동한다면 떡고물을 최대한 챙길 수도 있을 것 같아 보인다.

여론의 향배가 변수가 될 수도 있지만 현재로선 그리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다. 검·경 모두 인권보호를 외치고 있지만 국민은 냉소를 보내고 있다. 경찰이나 검찰 모두 '도진개진'이라는 시각이다. 이들의 갈등을 '밥상머리 싸움'으로 보는 시각도 바탕에 깔려있다.

언론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꼼수'를 견제하는 분위기는 역력하지만 발을 깊숙이 담그려 하지 않는다. 경찰의 민생 수사권 확보를 기정사실로 전제한 뒤 경찰의 권력기관화를 견제하기 위한 장치 마련을 촉구하는 등의 미시적 방법론을 거론하고 있을 뿐이다.

상황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국민의 냉소 속에서 검·경과 정치권이 얽히고 설키면서 '거래'를 시도하는 국면이 만들어지고 있다. 검찰이나 경찰 모두 수사권을 '권력'으로 생각하는 기본자세부터 고치라는 지적은 '밥그릇' 안으로 잦아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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