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자체조사를 기대한다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어차피 거쳐야 할 검증, 신속히 투명하게

등록 2005.12.08 10:44수정 2005.12.08 16:46
0
원고료로 응원
a

수면장애와 극심한 피로, 스트레스로 인한 탈진으로 건강이 악화돼 서울대 병원에 입원한 황우석 교수가 7일 오전 병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황광모


돌아보면 어쩔 수 없는 귀결인 것 같기도 하다.

<한국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학교의 의대, 치대, 농생명과학대, 생명과학부 등 생명과학과 관련한 단과대의 젊은 교수들이 황우석 교수 문제에 대한 학교 차원의 검증을 정운찬 총장에게 요구할 계획이라고 한다. 건의 또는 성명 형태로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의견을 표명한다는 것이다.

사실 확인이 더 필요한 측면은 있다. <한국일보>의 보도가 "알려졌다" 차원인데다가 서울대 일부 교수들이 소장과학자들의 의견 표명을 만류하고 있다는 만큼 결과는 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서울대 소장학자들의 움직임이 그간 운위됐던 '과학계 자체 검증' 주장을 현실화하는 것이란 점에서 주목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

연구결과에 의문이 제기될 경우 해당 연구자가 속한 기관에서 검증하는 건 과학계가 확립한 하나의 원칙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대 소장과학자들의 움직임은 지극히 원칙적인 차원의 대응이다.

더구나 MBC < PD수첩 > 후속편이 불방된 이후 갖가지 의혹이 어지럽게 제기되는 상황을 말끔히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방책이기도 하다.

서울대 수의대 기관윤리심사위원회가 조사결과를 발표한 적은 있지만 당시의 조사 초점은 윤리문제였다. 지금 제기되는 진위논란이 조사대상이 아니었다.

어차피 거쳐야 할 검증이라면 신속히, 그리고 투명하게 진행하는 게 최선이다. 과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서울대가 자체 조사에 나설 경우 일주일 정도면 연구 데이터 검증을 통해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고 한다.

두가지 관건

관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서울대가 잡음 없이 말끔하게 조사를 진행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한국일보>의 보도대로 일부 교수가 소장과학자들을 뜯어말리는 상황이라면, 자체 조사에 대한 의견차가 조사 자체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서울대가 이런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황 교수팀이 서울대 자체조사를 흔쾌히 수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황 교수팀은 진위논란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해하기 힘든 모습을 보여온 게 사실이다. < PD수첩 >의 1차 검증 결과에 대해 검사 오류 가능성을 제기하며 재검증을 문서로 약속했다가 번복한 사실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MBC가 < PD수첩 >의 취재윤리 위반 사실을 공개하며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자마자 황 교수팀의 한 관계자는 재검증 대신 배아줄기세포 복제과정을 시연하는 방법을 유력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한겨레>가 이 사실을 보도한 바로 그날 황 교수팀은 이 방법을 부인했다. 그리고 다시 하루 뒤 안규리 교수는 <조선일보> 기자에게 배아줄기세포 복제 과정 시연 및 복제된 배아줄기세포 공개를 진위논란을 잠재우는 방법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또다시 하루 뒤 이병천 교수는 이 방법을 부인하면서 차후의 연구논문으로 답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혼선에 대한 황교수팀의 설명은 두 가지였다. < PD수첩 >과의 '검증' 약속을 번복한 데 대해서는 < PD수첩 >의 강압적 취재에 어쩔 수 없이 응했다가 과학자의 자존심 때문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다.

'시연'을 둘러싼 혼선에 대해서는 연구팀원간의 의견 불일치, 그리고 과학자로서의 자존심을 그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서울대 자체 조사에는 이같은 이유가 성립되기 힘들다. 같은 과학계가 나서서 '과학적으로' 검증하는데다가 전 세계적으로 확립된 '소속 기관에 의한 검증' 원칙에도 부합되는 것이기에 과학자로서의 자존심이 손상될 이유가 없고, 연구팀원간 의견을 달리할 여지도 별로 없다.

서울대 소장과학자들이 실제로 학교측에 자체조사를 건의하고, 학교측이 이를 수용한다면 지금의 진위논란은 가닥을 잡을 것이다.

또하나 남은 문제

남는 문제가 하나 있다. 일각에서는 < PD수첩 >의 후속편을 방송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불거진 의혹이라면 의혹의 실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방송하는 게 세간의 갖가지 추측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현실성이 없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미 취재윤리 위반을 공개사과한 MBC가 취재윤리를 어기며 제작한 방송물을 틀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넌센스다. 방송위원회가 심의 및 징계 절차에 들어간 상태에서 방송을 틀라는 '압박'이 주효할 수도 없다.

설령 방송을 튼다 해도 그것이 담을 내용은 '의혹 제기'에 국한된다. 하지만 지금 국면은 의혹의 '규명과 해소'다. 비록 방송되지는 않았지만 내용의 대강이 기자회견이나 보도자료로 공개된 상태다. 언론으로서의 문제제기 기능은 상당부분 실현됐다는 얘기다.

나머지는 과학계에 맡기는 게 타당하다. 그런 점에서 서울대 자체조사는 가장 유력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연봉 천만원 올려도 일할 사람이 없어요", 산단의 그림자
  2. 2 은퇴 후 돈 걱정 없는 사람, 고작 이 정도입니다
  3. 3 구강성교 처벌하던 나라의 대반전
  4. 4 왜 여자가 '집게 손'만 하면 잘리고 사과해야 할까
  5. 5 [단독] "문재인 전 대통령과 엮으려는 시도 있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