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의 단식이 천성산 위기 또 부른다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벌써 80여일째? 약속 어디로 갔나

등록 2005.12.09 09:27수정 2005.12.09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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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0일 천성산 고속철도터널공사에 반대하며 96일째 단식중인 지율스님의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열흘 전이다. 이 '뉴스가이드' 란을 통해 "세치 혀가 천성산 위기 또 부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제 이 지적을 지율 스님에게도 전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지율 스님을 <경향신문> 기자가 찾아냈다. 경기도 인근 모 사찰에서 단식 중이라고 한다. 가까운 인사들에게 "내가 죽어야만 천성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도 한다.

<경향신문> 기사 중에서 주목할 대목은 단식 기간이다. <경향신문>은 지율 스님이 80여일째 단식 중이라고 했다. "지율 스님의 단식이 천성산 위기 또 부른다"고 지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산해보면 지율 스님이 단식을 시작한 시점은 9월 20일 전후다. 이 시점은 지율 스님과 정부의 합의에 따라 환경영향 공동조사가 시작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환경영향 조사의 대강조차 나오지 않은 시점에서 지율 스님이 단식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정부도 지율 스님도 지켜야할 '신의 성실의 원칙'

문제는 여기에 있다. 지율 스님은 정부와 약속했다. 환경영향 공동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조사내용을 일체 발설하지 않고, 조사 뒤에도 양자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대법원에 호소하기로 했다.

지율 스님이 정부와 몇가지 사항에 합의한 바탕에는 '신의 성실의 원칙'이 깔려 있다. 환경영향 조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어떠한 행위도 하지 말자는 다짐 말이다.

열흘 전에 철도시설공단의 섣부른 '입놀림'을 비판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조사보고서가 작성되기도 전에 "환경영향 공동조사 결과 천성산 공사가 환경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언론에 말한 것은 명백한 약속 위반이었고, 그것이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지율 스님 측은 공동 조사를 거부하며 철도시설공단에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그런데 지율 스님이 철도시설공단의 '입놀림'이 있기 70여일 전부터 단식에 들어갔다고 하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더구나 그 이유가 천성산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지율 스님의 이런 행동엔 '예단'이 작용하고 있다. 환경영향 공동조사에 나서긴 하지만 그 결론은 뻔할 것이니까 자신의 몸을 불사르겠다는 단정 말이다. 이건 약속한 사람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철도시설공단의 '입놀림'을 맹비난하면서 내세웠던 논리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태도다.

지율 스님은 기다렸어야 한다. 모든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부와 새끼손가락 걸며 약속했다면 조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어야 한다. 그것이 이미 공인이 돼버린 지율 스님의 바른 처신이다.

목숨을 담보로 한 투쟁, 다시 생각해보자

또 한가지 지적할 게 있다. 그 누구보다도 생명의 소중함을 설파해야 할 종교인이 목숨을 담보로 환경보호 투쟁을 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처신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지율 스님의 비장한 각오를 모르는 바 아니다. 환경 파괴가 더 많은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인식 아래 자신의 한 몸을 불사르자고 각오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환경 못잖게 중요한 여러 사안을 놓고 또 다른 누군가가 목숨을 담보로 투쟁을 하고자 할 때 지율 스님은 뭐라고 할 것인가? 종교인으로서 '결사투쟁'하라고 감히 독려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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