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왕의 귀환'만 남았는가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이건희는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을 바란다

등록 2005.12.15 09:59수정 2005.12.1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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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ㆍ국정원 도청'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 황교안 2차장검사가 14일 오후 지검청사 브리핑룸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제 '왕의 귀환'만 남았다. 검찰이 순백색 꽃을 뿌려줬으니 사뿐히 즈려밟고 돌아오면 된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 본관으로, 홍석현 씨는 중앙일보사로…. 귀환일을 간택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길일 잡기가 영 쉬워 보이지 않는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이 22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보고대회'에 참석할 것이라는 일부 보도를 부인했다. 연내 귀국은 어렵다고 했다. "이건희 회장이 막내딸 윤형 씨를 잃은 이후 심신이 극도로 지치고 허약해졌기 때문"이란 게 삼성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유가 그것 뿐일까? '왕의 귀환'을 성사시키기 위해선 또 다른 '왕의 귀환'을 막아야 한다. 오리털 파카 입고 거리로 나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검찰 수사 종료가 상황 종료를 뜻하는 건 아니다. 특검이 남아있다. 열쇠는 국회가 쥐고 있다. 더 좁히면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가 쥐고 있다.

얽히고 설킨 '왕의 귀환'

특검의 성격상 한나라당을 왕따시키고 특검법을 제정하는 건 무리다. 열린우리당은 이미 특검법과 특별법의 절충안을 제시한 바 있다. 한나라당의 특검법을 대폭 수용한 것이다.

더 나아가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오늘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특검법만 우선 제정하는 방안을 놓고 열린우리당과 상당부분 의견 접근을 이룬 상태라고 밝혔다. 도청 내용의 공개 여부를 민간위원회가 결정하는 특별법안이 문제라면 특검 수사를 먼저 개시한 후 차후에 특별법 문제를 논의하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것이다.

논의가 여기까지 이르렀다면 한나라당으로선 반대할 명분이 별로 없다. 애초에 특검법을 주장한 곳이 한나라당이다. 게다가 검찰 수사결과 발표 이후 특검 도입 주장이 드세게 일고 있다. 한나라당으로선 고민할 필요도, 고민할 이유도 전혀 없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그래서 한나라당의 나경원 원내공보부대표는 "특검법이라면 수용할 수도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속내는 복잡하다.

거리로 뛰쳐나오기 얼마 전, 즉 정기국회가 한창일 때 한나나라당은 자신들이 제안한 특검법 제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이 사법처리 된 후 보인 모습이다. 정치적 득실 계산에 들어간 것이다.

이러던 차에 거리로 뛰쳐나왔다. 검찰 수사결과 발표 하루 전이다. 우연이라고 보기엔 너무 절묘한 시점에 거리로 나선 것이다.

검찰 발표 하루 전, 너무 절묘한 시점의 거리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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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사학법 개정안 처리에 반발하며 13일 장외투쟁에 나서 서울 명동등지에서 집회를 가졌다. 장외투쟁에 나선 박근혜 대표가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이 특검법 제정에 정말 마음이 없다면 장외투쟁을 지속해야 한다. 국회로 돌아가면 특검법에 대해 '가'든 '부'든 입장을 정해야 하는 부담을 안는다. 하지만 거리에 머물면 특검법을 피해갈 수 있다. 특검법 제정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사학법 무효화가 더 급선무이기에 거리에 머무는 것이라고 강변하면 된다.

그렇게 올해만 버티면 된다. 해를 넘기면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예정돼 있다. 개헌 논의도 본격화할 것이다. 국민의 관심도 희석될 것이다.

그 뿐인가. 특검 수사결과의 정치적 악용 가능성도 제기할 수 있다. 연초에 특검법을 제정하면 공교롭게도 특검 수사결과 발표는 지방선거 일정과 맞물리게 된다. 통상 특검의 수사기간은 90일이다. 1월에 특검법을 제정하고 2월 초에 특검팀이 발족한다면 특검 수사결과는 지방선거 직전에 이뤄진다. 게다가 특검의 수사대상은 국정원을 아우르는 게 아니라 오로지 안기부 X파일로 한정된다.

그래서일까?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X파일 특검의 수사기간을 길게 잡자고 말하고 있다. 한나라당으로부터 있을 지 모를 공세를 차단할 수 있을 뿐더러 조사항목이 대단히 많은 사안의 성격으로 봐도 수사기간을 길게 잡는 게 맞다는 판단이다.

이리 보거나 저리 보거나 한나라당으로선 거리에서 버티는 게 상수다. 이건희·홍석현 씨도 바라마지 않는 상황이다.

박근혜 대표는 언제까지 오리털 파카를 입을까

하지만 매사엔 역측면이 있는 법이다. 한나라당이 거리에서 버티면 버틸수록 비난 여론은 가파르게 상승할 수 있다. 시한이 연내로 정해져 있는 새해 예산안과 파병연장동의안을 왜 팽개치느냐는 비난 뿐 아니라 장외투쟁이 특검법 비껴가기용 아니냐는 추가 비난을 살 공산이 크다.

관건은 한나라당, 그리고 박근혜 대표의 맷집이 얼마나 강한가 하는 점이다. 이런 비난 여론을 무릅쓰면서도 오리털 파카깃을 여밀 수 있을까?

물론 박근혜 대표는 여론이 뭐라 하든 내 갈 길 가겠노라고 했다. 대단한 결의지만 장외투쟁을 혼자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비난 여론에 넉 다운 상태에 이른 자당 소속 의원들이 오리털 파카를 벗기려 한다면 그때도 버틸 수 있을까?

이건희·홍석현씨야 격려의 맘을 담뿍 담아 보내겠지만 그들은 너무 멀리 있다. 나설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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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삼성 X파일 사건과 관련해 이건희 회장과 홍석현 전 주미대사, 이학수 구조본부장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린데 대해 민주노동당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공동으로 14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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