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신사에는 누가 '모셔져' 있을까?

[중-일, 패권경쟁 달아오른다 6] 야스쿠니 참배, 왜 문제가 되는가? - 2편

등록 2005.12.22 12:05수정 2005.12.2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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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상반기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놓고 한·중 양국과 일본 사이에 첨예한 대립이 벌어진 적이 있다.

그런데 TV 화면상으로 야스쿠니 문제를 접한 많은 일부 국민들이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도대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갖고 있는 듯하다.

오늘날 한·중 양국 정부에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문제 삼는 것은, 야스쿠니신사 안에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중 양국 정부의 주장은 "A급 전범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에 총리가 직접 참배하는 것은 전쟁 피해국 국민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참고로, A급 전범이라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연합국의 국제군사재판에서 '국제조약을 위반하여 침략전쟁을 기획·개시·수행한 사람'으로 분류된 자들을 말한다.

그런데 야스쿠니신사에 '모셔진' 14명의 A급 전범들에 대해서만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야스쿠니신사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야스쿠니신사 자체가 일본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기능을 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는 A급 전범 14명 말고도 수백만 명의 일본 군인 및 군무원들이 신(가미)으로 추앙받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부언하면, 고이즈미 총리는 A급 전범 14명에 대해서만 참배를 하는 게 아니라 실제적으로는 그 안에 '모셔진' 수백만 명의 영령들에게 참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A급 전범 말고도 '넓은 의미의 전범'들이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를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A급 전범이니 B급 전범이니 하는 것들은 제2차 대전 승전국인 미국·영국 등의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미국·영국 입장에서는 자신들과 관련된 전쟁에 대해서만 전범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우리 땅에서 전쟁을 도발한 청일전쟁 당사자들도 모두 전범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입장에서는 청일전쟁·만주사변·중일전쟁 등을 도발한 자들도 모두 전범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A급 전범에만 시야를 한정시키는 것은 야스쿠니신사의 본질에 대해 눈을 감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비단 A급 전범뿐만 아니라 어떤 자들이 야스쿠니신사의 신으로 '모셔져'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야스쿠니신사의 정면. 2001년 10월 17일 현재 야스쿠니신사에는 총 246만6364위의 신들이 모셔져 있다. 이 신들은 모두 일본 군국주의 하에서 전쟁에 가담한 혹은 동원된 군인·군무원 출신이다.
야스쿠니신사의 정면. 2001년 10월 17일 현재 야스쿠니신사에는 총 246만6364위의 신들이 모셔져 있다. 이 신들은 모두 일본 군국주의 하에서 전쟁에 가담한 혹은 동원된 군인·군무원 출신이다.김재영
야스쿠니신사,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그럼, 야스쿠니신사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신들이 '모셔져' 있을까? 야스쿠니신사측이 공표한 <전후 사변별 제신수>(戰後事變別祭神數)라는 자료에 의하면, 소위 헤세(平成) 13년 즉 2001년 10월 17일 현재 야스쿠니신사에는 총 246만6364위의 신들이 모셔져 있다. 이 신들은 모두 일본 군국주의 하에서 전쟁에 가담한 혹은 동원된 군인·군무원 출신이다. 일본 군국주의 하의 전쟁에 가담했다가 혹은 동원되었다가 전사한 자들이 신으로 '모셔져' 있는 것이다.


<전후 사변별 제신수>에 의하면, 야스쿠니신사에 '모셔진' 신들의 숫자를 사건별로 정리하면 이러하다. 메이지유신(1868년) 전사자 7751위, 세이난전쟁(1877년) 전사자 6971위, 청일전쟁(1894년) 전사자 1만3619위, 대만침략(1874년 이후) 당시 전사자 1130위, 북청사변(1900년, 의화단운동) 당시 전사자 1256위, 러일전쟁(1904년) 전사자 8만8429위, 제1차 세계대전 전사자 4850위, 제남사변(1928년) 전사자 185위, 만주사변(1931년) 전사자 1만7175위, 중일전쟁(1937년) 전사자 19만1220위, 태평양전쟁 전사자 213만3778위가 야스쿠니신사에 '모셔져' 있다.

여기서 메이지유신·세이난전쟁은 대외침략이 아닌 내전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지만, 일본 군국주의의 확립과정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그리고 한국과 관련성을 갖는 것으로는, 한반도 지배권 확립을 위해 벌인 전쟁인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들 수 있다. 태평양전쟁 역시, 그 전쟁에서 우리 조상들이 많이 희생되었다는 점에서 우리와 관련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주로 중국과의 전쟁에서 사망한 자들이 신으로 '모셔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청일전쟁·대만침략·북청사변·제남사변·만주사변·중일전쟁 전사자들을 신으로 '모신' 것이 바로 그러하다.

메이지유신과 세이난전쟁 같은 내전과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같은 대외침략의 공통분모는 일본 군국주의다. 그러므로 야스쿠니신사는 일본 군국주의 확립과정에서 전사한 영령들을 신으로 '모셔' 놓은 곳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야스쿠니신사에는 일본인들만 '모셔져'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 군국주의의 강압에 못 이겨 전쟁터에 끌려간 한·중 양국 국민들도 야스쿠니신사에 모셔져 있다. 위 <전후 사변별 제신수>에 따르면, 대만 출신의 신 2만8천여 위, 조선 출신의 신 2만1천여 위도 그곳에 합사(合祀)되어 있다. 그러므로 야스쿠니신사에 '모셔진' 신들의 면면을 보면, 이 신사가 일본의 대외 식민정책까지도 미화하는 곳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출신도 2만1천 위 합사... 일본 대외 식민정책 까지 미화

그렇다면, 전사자 혹은 전범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야스쿠니신사의 신으로 '모셔'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제5회 기사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인간도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일본의 인신신앙(人神信仰)을 뒷받침하는 일본의 신(神) 관념 중에 '어령신앙'(御靈信仰)이라는 것이 있다. 어령신앙이란 생전에 원한을 품고 죽은 인간이 사후에 재앙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 그를 신으로 모시면서 위로하는 신앙을 말하는 것이다. 일본이 침략전쟁의 전사자들을 신으로 '모셔' 놓은 기본적 목적은 그들을 신으로 추앙하면서 그들의 영령을 위로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이렇게 질문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비록 침략전쟁의 전사자라고 할지라도 전쟁에서 죽은 사람의 영령을 위로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는 나쁜 일이 아니지 않은가?"라고 말이다. 물론 전혀 일리 없는 말은 아니지만, 다음 3가지만 살펴보아도 일본이 침략전쟁 전사자들을 신으로 추앙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일제의 침략전쟁과 관련하여 일차적으로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의 침략전쟁 당시 군인·군무원으로 동원된 일본인들은 기본적으로 가해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침략전쟁으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쪽은 중국이고 그 다음이 한국이다. 그 침략전쟁과 관련하여 일차적으로 위로를 받아야 할 쪽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다. 이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 일본이 자국의 대외침략과 관련하여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또 응분의 배상을 하였다면, 자국의 침략전쟁 전사자들을 위로한다 하여도 주변국들이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이 침략전쟁의 피해자들에게는 응분의 배상을 하지 않으면서, 그 가해자들의 영령을 국가적으로 위로할 뿐만 아니라 총리대신까지 나서서 참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식민지배 피해배상 문제로 한·일 간에 아직도 갈등이 존재하고 있지만, 사실 중국측은 한국만큼의 배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 받은 배상금도 아주 미흡한 것이지만, 한국은 중국에 비하면 작게나마 배상을 받은 편에 속한다. 그만큼 일본이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배상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반성하지도 못하는 나라가 침략전쟁 전사자들을 국가적으로 위로하고 있다면, 다시 말해 피해자는 버려두고 가해자만 떠받들고 있다면, 일본을 과연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둘째, 전범으로서 야스쿠니신사에 안치되어 있다는 것이 일본사회에서는 그다지 치욕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전사자들의 유족들은 그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에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학살 가담자들의 영령을 위로하는 시설을 만든다고 하면, 그러한 시설이 세워지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당장 학살 가담자들의 유족들이 일차적으로 반발하고 나설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문의 치욕으로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야스쿠니신사에서 A급 전범들의 위패를 분리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을 때에 A급 전범의 유족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그들 입장에서는 자기 조상들이 야스쿠니신사에 '모셔져' 있는 것이 일종의 '영광'이기 때문이다. 야스쿠니신사가 일본 군국주의를 반성하고 회개하는 장(場)이라면 과연 이러한 현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와는 정반대로, 야스쿠니신사가 일본 군국주의를 미화하고 찬양하는 곳이기 때문에 유족들이 그처럼 반응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세계적인 강대국이 야스쿠니신사에서 자국의 과거를 미화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국들이 더더욱 위험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A급 전범 유족 위패 분리 반대...야스쿠니신사는 그들에게 영광

세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까지 시도하고 있는 강대국 일본이 아직도 과거의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그 전사자들을 신격화하고 있다면, 이는 우리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고 남는 일이다.

만약 일본이 약하고 무능한 나라였다면, 그들이 감히 야스쿠니신사를 유지하지도 못했겠지만, 설령 야스쿠니신사에서 일본 총리가 공식 참배를 한다 해도 우리가 그다지 신경을 쓸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세계적인 강국에다가 중대한 침략 전과까지 있는 국가가 과거를 뉘우치기는커녕 그 과거를 미화하고 동경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의 안전에 빨간 신호가 켜져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한·중은 기회 있을 때마다 야스쿠니신사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대목이 있다. 야스쿠니신사에서 전범 혹은 전사자들을 위로하고 신으로 떠받들고 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하고 있을까? 야스쿠니의 신들을 위로하는 방법에는 가면극도 동원되고 있는데, 그 점에 관하여는 제7회 기사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가 운영하는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가 운영하는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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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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