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의 신들은 과거의 재현을 갈구한다

[중-일, 패권경쟁 달아오른다 7] 야스쿠니 참배, 왜 문제가 되는가? 3편

등록 2005.12.23 11:14수정 2005.12.2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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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기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은 메이지시대 이래의 군국주의 확립 및 대외팽창 과정에서 전사한 246만6364위(2001년 10월 17일 현재)의 신들을 야스쿠니신사에 안치하고 있다. 이들을 신사에 안치하는 것은 군국주의 전쟁의 전사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서 기본적으로 어령신앙과 관련을 갖고 있다는 점도 이미 검토한 바 있다.

그럼, 야스쿠니신사에서는 어떠한 방법으로 군국주의 전사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을까?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초혼제(招魂祭)라는 의례적 장치가 동원된다. 그런데 이 초혼제는 다음과 같은 2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첫째, 관용을 담고 있던 전통적인 일본의 위령제와는 달리, 야스쿠니신사의 초혼제에서는 다분히 소아적(小我的)인 모습이 연출된다. 이는 야스쿠니신사뿐만 아니라 다른 신사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해당하는 말이다.

오늘날 일본의 초혼 관념은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년) 말기에 민간에 유포된 것이다. 이 시대의 초혼 관념에 기초를 둔 일본 신사의 초혼제는 그 이전 시기의 위령제와 양상을 달리하고 있다.

이전 시기의 위령제에서는 적군·아군을 가리지 않고 쌍방 전사자들의 넋을 모두 위로하는 관용적 모습을 보였었다. 그런데 일본 군국주의가 확립되기 시작한 시기에 등장한 초혼제에서는 아군 즉 일본 국왕(소위 '천황')을 위해 전사한 자들만이 제사의 대상이 되었다. 종래의 관용적 자세에서 소아적(小我的) 자세로 퇴보하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일본은 자국의 대외침략과정에서 자행된 무수한 인명 살상에 대해서 응분의 배상은커녕 진심 어린 사과 한 마디조차 하지 않으면서, 대외침략전쟁의 가해자라 할 수 있는 일본군 희생자들을 야스쿠니신사에 안치해 놓고 총리대신까지 나서서 참배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상대국의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일말의 도의적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하면서 침략전쟁에 가담한 일본인들의 넋은 국제적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위로해 주려 하는 것이다. 물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만 일본이 이처럼 인류사회나 국제사회의 보편적 윤리까지 도외시한다면, 일본인들은 '일본인'은 될 수 있을지라도 결코 '인간'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야스쿠니신사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소아적 모습은, 적군 희생자는 배려하지 않은 채 아군 전사자만 '챙기는' 일본 군국주의 초기의 초혼제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야스쿠니신사의 초혼제에서는 연극 공연을 통해 전사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노'(能)라는 일종의 가면극을 통해 신들을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노'의 주인공은 대개 생전에 원한을 품고 죽은 사람들이다. '노'에서 공연되는 것은 이들의 생존 당시 활동상이다. 그런데 특기할 만한 것은 '노'에서는 주인공만이 원한의 감정을 표출한다는 점이다. 이는 주인공 생존 당시의 상황을 철저히 재현시켜 주고 또 주인공으로 하여금 자신의 원한을 실컷 말하게 함으로써 그 원한을 풀어 주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죽은 자의 원한을 풀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인들이 집단적으로 그러한 관념을 갖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야스쿠니신사에서 '노'라는 가면극을 통해 군국주의 전사자들을 위로하는 일본인들의 방식이다. '주인공의 생존 당시의 상황을 철저히 재현시켜 주고 또 주인공으로 하여금 자신의 원한을 실컷 말하게 해 준다'는 일본인들의 관념과 발상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제6회 기사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야스쿠니신사에 안치되어 있는 신들은 19세기말 이래 일본 군국주의 확립과정에서 전사한 자들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생존 당시의 상황이라는 것은 일본이 한국이나 중국 등지에서 벌인 침략전쟁이다. 이러한 상황을 철저히 재현시켜 주어야만 전사자들의 넋을 위로할 수 있다는 그 발상이 위험하다는 말이다.

물론 제2차 대전 이후 세계가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감시하는 상황에서, 일본이 '노'라는 가면극을 통해 군국주의 전쟁을 있는 그대로 재연하기는 힘들다. 그게 힘들기 때문에, 군국주의 이전 시대에 죽은 군인들의 한을 풀어 주는 내용의 가면극을 '대신' 공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노'라는 가면극에서 어떤 작품이 공연되든 간에, 다시 말해 그 작품이 군국주의 이전 시대에 관한 것이건 군국주의 시대에 관한 것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일본인들이 야스쿠니 신들의 생존 당시를 철저히 재현시켜 주어야만 그들의 한을 풀어 줄 수 있고 또 그래야만 일본이라는 나라를 편안하게 할 수 있다는 관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노'라는 가면극에서 군국주의 이전 시대의 작품이 공연되더라도, 일본인들의 관념 속에서는 군국주의 시대의 침략전쟁이 재현되고 있다는 점이 우리의 우려를 자아내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관념 속에서 침략전쟁이 재현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과거에 대한 반성을 위한 것이면 별문제가 될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침략전쟁의 관념적 재현을 통해 자신들의 과거의 '한'을 풀려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진정 한이 맺혀야 할 사람들은 한국과 중국의 민중들인데, 일본 지도자들에게는 피해자의 '한'보다도 가해자의 '못다 이룬 한'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더 더욱 위험한 것은, 일본이라는 나라가 그러한 관념상의 과거 재현을 야스쿠니신사라는 공적 제도를 통해서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인들이 야스쿠니신사를 통해 국가적·집단적으로 과거 침략전쟁 상황을 관념 속에 재현하면서 그 시기에 자신들의 조상이 겪은 '한'을 안쓰러워한다는 점은 한국·중국 등 주변국의 안보에 위협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외부적 행위는 모두 내부적 관념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시무시한 흉기를 들고 있는 자가 코앞에 있는 사람을 죽이는 상상을 한다면, 이는 현실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생명과 신체에 위협적인 일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진 일본인들이 야스쿠니신사에서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있다면, 이는 한국·중국 등 주변국 국민들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의 지도자들이 야스쿠니신사에서 '노'라는 가면극을 공연하도록 하는 것은, 일본 국민들이 부지불식간에 침략전쟁을 미화하도록 하기 위한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국민들의 의식을 무의식적으로 조종하기 위한 심리적 장치가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한국·중국 등 주변국들은 야스쿠니신사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일본 총리의 신사 참배에 대해서는 더 더욱 경악을 표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일부 일본인들은 '야스쿠니신사는 그저 우리 조상들의 넋을 위로하는 곳일 뿐인데, 한국·중국은 왜 툭 하면 불필요한 시비를 거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평범한 일본 국민들은 일본의 지도자들이 각종 심리적 장치를 통해 자신들의 의식을 조종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둔감할 것이다. 그러므로 평범한 일본 국민들은 주변국들의 반발에 불평을 나타낼 것이 아니라, 뒤에 숨어 자신들의 의식을 조종하고 있는 일본 지도자들을 탓해야 할 것이다.

그럼, 야스쿠니신사가 그토록 위험한 시설이라면, 일본이 패망한 1945년 이후에 국제사회가 야스쿠니신사를 제어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점에 관하여는 제8회 기사에서 언급하기로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가 운영하는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가 운영하는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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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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