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비(香妃)묘에 가다

[중국배낭여행길라잡이] 자티 실크로드를 가다 0819 - 카스

등록 2005.12.27 18:25수정 2006.01.0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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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9 날씨 화창

침대에 누운채 눈맞은 아가씨와 나즈막한 수인사. 프랑스 아가씨다. '칼리쿨'호수에 간다며 나보고 같이 가자고 한다. 흠! 마드모아젤 오늘 나 바빠서 안돼요. 삐친 프랑스 아가씨는 얼른 짐 싸들고 나간다.


작년 산동에서 한국어 선생 할 때 친하게 지내던 신강 여학생들에게 전화. 내사랑 카르멘 집에는 전화받는 사람이 없다. 놀래줄려고 연락도 안하고 왔는데 둘째 학생은 어디 놀러가서 내일 온다고. 세 번째 학생은 전화를 받는다. 11시에 로비에서 만나기로.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을 입증하려는 듯이 커피를 마시는 중 일어난 아가씨는 놀랍게 한국 아가씨다. 귀엽게 생긴 미인이다. 같이 보내기로 결정.

10시쯤 아가씨 화장과 옷 갈아 입는데 걸리적 걸릴까봐 1층에 있는 '여행사'로 내려가 컴퓨터로 사진정리, 1시간에 5위안이나 받는다. 30분에 3위안이라고.. 손가락 부러질 정도로 빠르게 좌판 때려가며 이메일과 사진정리, 30분에 소화. 2위안 굳었다. 여기는 1분만 넘어가도 5위안 받는단다.

등 뒤에서 무척 딱딱한 억양의 영어를 구사하던 동양인은 나이넘긴 한국중년이다. 뭐 도와드릴까요하니 내일 기차표를 예매하는 중이고 수수료가 80위안이라고 한다. 잉? 80위안. 보통 많이 받아야 50위안인데. 내일이라고 비싸다고 여행사 직원이 그런다. 억울합니다라는 말투지만. '니덜' 컴퓨터인심을 보니 알만하다. 같은 방 쓰는 안양 아가씨는 출발 일주일전에 예매를 해 수수료 20위안에 했다고 하던데.

어제 파키스탄에서 넘어와 내일 투루판으로 간다는 전직 영어 선생님은 파키스탄에서 만났다는 또래의 일본인과 영어로 대화 몰두. 파키스탄에서 한국인이 하는 민박에서 4인실 침대하나에 40달러나 주고 묵었다고 연신 불평. 민박 주인장이 '나가서 이런 가격대에 잘 수 있나요?'라고 했다고 성질까지 낸다. 내가 봐도 심한 금액이다. 외지에서 한국사람 만나면 무서운 경우가 있는데 그 경우다.


안양 아가씨가 내려온다. 신강학생은 11시가 되서도 안 온다. 흠. 다시 전화. 학생 아버지가 받는데 무슨 말인지 한마디도 못 알아듣겠다. 중요한 한마디는 확인했다. '나갔어!'라는 말.

다시 로비로, 옆에 앉은 총각이 한국여권을 들고 있길래 인사나 나누려고 했더니 인사했는데 쳐다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대답한다. 흠! 같이 식사나 하려고 했는데. 먼저 인사한 노인네(?) 정말 민망해진다.


건성 대답 한국총각은 곧 서양인들과 합류 후 사라진다. 좋게 표현하면 국제교류(주로 영어권 서양인)를 위해 한 길로만 매진하는 훌륭한 총각이다. 이런 부류들도 많이 보인다. 편 가르기는 아니지만 꼭 이솝우화에 나오는 '박쥐'같아 보인다.

곧이어 다른 한국 총각 등장. 부산 산다고. 수인사 후에 같이 식사하기로.

안양 아가씨, 부산 총각, 나, 영어 선생님, 일본기자가 오늘 점심 먹을 팀이다.

'투르손나이'는 정확히 11시에 도착, 신강시간으로. 나는 북경시간 11시를 말한건데.. 미안함에 안절부절하는 제자를 달래며, 배고픔으로 쓰러질 것 같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일행들을 데리고 호텔 프런트 직원에게 물어본 싸고 맛있는 집으로.

조촐하게 먹었다면 거짓말이다. 내가 누군가 삼사일동안 면만 먹어서 입안에 밀가루 냄새만 가득한 배.나.온.기.마.민.족 아닌가?

'투르손나이'에게 시켜보라니까 선생 주머니 걱정 탓인지 싼 면요리만 시킨다. 내가 대신 주문. 오늘 제자 영양 보충 좀 시켜줄려고 팀까지 만들었는데. 훗.

전채에 속하는 찬요리로 설탕 친 토마토와 소고기를, 뜨거운 요리로는 홍소우육, 양갈비구이, 매운 닭토막 볶음, 신강특고기 덮밥, 신강 명물인 넓은접시 닭요리(따판지, 大盤鷄), 아가씨들을 위해 요구르트, 그리고 신강에서 제일 유명한 양꼬치와 비둘기꼬치

간단하게 먹었다면 돌날라올 풍성한 식탁. 모두 만족해하는 표정이다. 특히 파키스탄부터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는 두 중년들은 10대 못지않은 왕성한 식욕을 자랑한다. 메뉴 선택한 내 기분도 부른 배만큼 커졌다.

a 식사후.. ^^; 죄송합니다. 식사전에 찍어야 되는데, 먹고나야 생각이 나기때문에 늘 이렇습니다.

식사후.. ^^; 죄송합니다. 식사전에 찍어야 되는데, 먹고나야 생각이 나기때문에 늘 이렇습니다. ⓒ 최광식


a 아~ 정말 감동적이기 까지한  비둘기 카와브(꼬치) 추가 해서 시켜먹었습니다.

아~ 정말 감동적이기 까지한 비둘기 카와브(꼬치) 추가 해서 시켜먹었습니다. ⓒ 최광식

두분 형님들은 여행자수표를 돈으로 바꿔야 한다기에 은행으로 같이 가주기로 했다. 화장실을 연상시키는 획기적인 디자인의 은행은 닫혀있다. 신강시간 오후 2:00 부터 엽니다라고 써있다. 근처 공원에서 적당히 시간 맞춰 쉬다가 은행으로.

여행자수표 가운데칸에 서명되어 있다는 이유로 지불을 거부하는 여직원과 이런 곳, 이런 경우도 처음이라고 불쾌한 기분을 불쾌한 한국어로 여직원을 성토하는 전직 영어선생. 휴우~ 제발 한국어로 욕하실려면 우리끼리 있을 때만 하시던가. 기본 소양문제다. 이런 건.

한족 여직원의 설명이 너무 빨라 위구르 제자를 불러 통역을 부탁. 결국 새 여행자수표를 꺼내 가운데 칸에 서명안하는 걸로 상황 끝. 무척 간단하게 넘어갈 상황을.

몇 시간 동안 기차표 타령만 해대던 일본기자와 비슷한 전직 영어 선생님은 호텔 여행사로 표를 예매하러 가고, 남은 네 사람은 카스시내 구경하기로.

'향비(香妃)묘'로 갔다. 내가 아는 사실은 '향비는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다. 이런 가공의 향비에 관한 가장 유명한 소설은 역시 대중소설로 유명한 '김용(金庸)'선생의 '서검은구록 (書劍恩仇錄)'일 것이다. 작년인가도 중국 각 매체에서 중국 교과서에 김용 선생의 소설을 실어도 되는가에 대해서 왕성한 토론이 있었다. 문장만 좋으면 되지, 왜 장르(무협)가 문제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소설의 내용은 한족 레지스탕스 조직인 '천지회' 진가락, 이슬람 위구르족장의 딸이고 몸에 기이한 향기가 나는 '향향공주'와 청나라 건륭제 - 소설속에서 진가락의 친형인 한(漢)족으로 나온다 - 사이의 애정문제와 당시 청대 시대상을 아주 중국인, 특히 한(漢)족스러운 시야로 쓴 무협소설이다. 요즘 말로 하면 중국정부와 '코드'가 맞는 대중작가이기도 하다. 소수민족역사를 자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정부의 입맛에 맞는다고 하는 것이 옳을지도. '반청복명(反淸復明,청나라를 물리치고 명나라를 다시 세우자)'을 이어받은 중국공산당정부의 소수민족 어우르기에 적당한 소재이기도 하다.

현재의 중국(영토) 모든 죄는 만주인였던 '청'의 탓이고, 위구르족과 한족은 친하게 지냈고 만주족 치하에서 같이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18세기부터 20세기초(또는 21세기초)까지 일어났던 민족갈등, 종교갈등 탓을 만주족에게만 돌린다면 상당히 억울한 것이다. 만주족들은.

전설의 향비는 소설속의 '향비'와 비슷하다. 한족남자친구가 없다는 점만 빼고는. 전설의 향비는 당시 아마 핍박받은 민족였던 '위구르'족의 마음이 투영된 것 같다. 침략자들에게 의해 북경까지 끌려간 후, 죽은 후에도 북경에 묻히기 싫어서, 청나라수도에 묻히기 싫어서 3년에의 기나긴 고향으로 옮겨야 묻힌 위구르 처녀 '향비'.

진실 속의 향비는 청나라의 앞잡이로 일족의 침략에 앞장섰던 위구르호족의 딸이며, 건륭제의 총애를 받아 잘먹고 잘살았던, 이 땅의 친일파 같은 '용비(容妃)'다. 가장 '향비'에 가까운 사실속의 인물이지만, 향비의 가장 큰 특징인 향(香)과는 전혀 상관없었다는 점에서 또 '전설'의 '향비'와 다른 점이다.

'진실'과 '전설'의 향비묘에 서있는 것이다. 나는.
'진실'의 맛을 쓰지만, '전설'의 맛은 아련하다.

a 향비묘

향비묘 ⓒ 최광식


a 우상숭배를 막기위해 그림보다는, 문양이 발달한 이슬람 문화특징

우상숭배를 막기위해 그림보다는, 문양이 발달한 이슬람 문화특징 ⓒ 최광식

'향비묘'의 위구르 안내양이 나름대로 차분하고 또렷한 중국어로 설명하더니, 위구르 제자가 위구르어로 물어보니 한여름 두꺼운 양털코트를 입었다가 벗은 듯, 후련하게 위구르어로 설명, 내 제자가 다시 중국어로 번역해준다.

홀가분한 표정의 위구르 안내원을 뒤로 하고, 과원(果園)이라는 곳으로. 향비묘에 따린 조그마한 포도원이다. 뭐 이렇게 작아 볼 것이 없네! 하고 있는데 살구가 나온다. 신 과일은 피로와 갈증에 좋지 않던가!

음악소리가 갑자기 크게 나와 짜증이 나려는 순간 위구르 무희가 나와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소박하게, 끝없이 원을 그리는 듯한 위구르춤을 춘다. 당(唐)대의 수많은 시인들이 봤을 호무(胡舞)였을 것이다.

백거이도 '호선녀(胡旋女)'라고 읊지 않았던가..

'마음은 비파소리에 따라 감응하고, 손은 북소리에 따라 움직인다.
비파소리, 북소리 하나가 되면 날렵하게 양소매를 올려 감으며
바람에 날린 눈 구르듯 광야에 쑥 흐트러지듯 춤춘다.
좌로 돌고, 우로 돌아도 지칠 줄 모르고
수만 번 돌면서 그칠 줄 모른다.. '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 나가사와 가즈도시/민족사 에서)

a 위구르 무희

위구르 무희 ⓒ 최광식


a 배나온 위구르아저씨와 배나온 기마민족(흠.. 숨을 들이마시고 있었음)

배나온 위구르아저씨와 배나온 기마민족(흠.. 숨을 들이마시고 있었음) ⓒ 최광식

갑자기 이 조그마한 포도원이 너무 정겨워 진다. 이태백이 '소년행(少年行)'에서 그린 것처럼 호희(胡姬)가 손 내밀어 나그네를 취하는 만드는 듯하다. 마르코 폴로가 그의 여행기에서 '그들은 풍부한 땅의 열매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여행객들에게 그것을 융숭하게 대접한다. 그들은 아무 걱정없이 놀고 노래하고 춤추고 인생을 즐기는 낙천적인 사람들이다'라고 쓴 것은 아마 위구르인들을 보고 쓴 것일 것이다. 노래하고 춤추는 거야 기마민족인 우리민족도 옛부터 유명하지 않았던가? 위구르인들과 어울려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위구르 춤은 엇박자가 많아 제법 어렵다.

a 남녀간에 춤추는 경우는 드물다고 하더군요. 제 제자말에 의하면

남녀간에 춤추는 경우는 드물다고 하더군요. 제 제자말에 의하면 ⓒ 최광식

취한 듯한 한 시간이 지나갔다.

바자르 구경 후에 이슬람사원인 청진사로, 신강에서 제일 크다는 이 사원은 많으면 2만명이 동시에 예배를 본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작아 보인다. 하여간 제일 큰 사원이라고 한다.

a 천정의 문양이 너무 예뻐서..

천정의 문양이 너무 예뻐서.. ⓒ 최광식


a 네모칸하나가 한사람이 예배보는 크기입니다.

네모칸하나가 한사람이 예배보는 크기입니다. ⓒ 최광식

위구르제자의 안내를 따라 사원 왼쪽 길을 따라 들어가니 분위기가 완전 달라진다. 마치 어디서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떼라도 나올 것 같은 중국 내에서 가장 중국스럽지 않은 거리다. 이슬람 문명으로 들어선 듯하다.

위구르 제자 집 근처에서 가볍게 저녁식사.

a 카스의 모택동 동상

카스의 모택동 동상 ⓒ 최광식

내일 집으로 오라고 한다. 위구르처녀가. 오잉. 무슬림 집은 어떨까? 강한 호기심이 생기는 바람에, 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접었다. 어쩌라 나는 호기심 많은 기마민족인 것을.

덧붙이는 글 | ㅇ 이 글은 '인터넷한겨레-차이나21-자티의 중국여행(http://ichina21.hani.co.kr/)', 중국배낭여행동호회인 '뚜벅이 배낭여행(http://www.jalingobi.co.kr)'에도 올리고 있습니다. 

ㅇ 중국여행에 필요한 자료는 
'인터넷한겨레-차이나21-여행자료실(http://bbs.hani.co.kr/Board/tong_tourdata/list.asp?Stable=tong_tourdata)'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ㅇ '여행일기'라 평어체를 사용했습니다. 독자분들의 이해를 바랍니다. 제가 올리고 있는 '중국배낭길라잡이'의 내용을 실전에서 어떻게 사용하는지 잘 봐주시길.. 

ㅇ 중국어는 경어가 거의 없기에, 사실에 가깝게 번역했습니다. 현장감 있는 번역이라고 주장하고 싶군요. 

ㅇ '여행지정보'보다는 '여행정보'에 치중했습니다. 괜한 그리고 많은 '여행지'사진은 스포일러(영화결말을 말하는) 같아서. 

ㅇ 중국돈 1위안은 2005년 8월 한국돈 136원(팔 때 기준) 정도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ㅇ 이 글은 '인터넷한겨레-차이나21-자티의 중국여행(http://ichina21.hani.co.kr/)', 중국배낭여행동호회인 '뚜벅이 배낭여행(http://www.jalingobi.co.kr)'에도 올리고 있습니다. 

ㅇ 중국여행에 필요한 자료는 
'인터넷한겨레-차이나21-여행자료실(http://bbs.hani.co.kr/Board/tong_tourdata/list.asp?Stable=tong_tourdata)'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ㅇ '여행일기'라 평어체를 사용했습니다. 독자분들의 이해를 바랍니다. 제가 올리고 있는 '중국배낭길라잡이'의 내용을 실전에서 어떻게 사용하는지 잘 봐주시길.. 

ㅇ 중국어는 경어가 거의 없기에, 사실에 가깝게 번역했습니다. 현장감 있는 번역이라고 주장하고 싶군요. 

ㅇ '여행지정보'보다는 '여행정보'에 치중했습니다. 괜한 그리고 많은 '여행지'사진은 스포일러(영화결말을 말하는) 같아서. 

ㅇ 중국돈 1위안은 2005년 8월 한국돈 136원(팔 때 기준)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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