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

[헌법재판 오디세이 13] 우리사회 인권 논쟁의 주소

등록 2006.01.04 19:09수정 2006.01.0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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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보편적 개념입니다.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장소도 변수가 될 수 없지요. 거룩함이 사는 곳에 따라 달라질 수는 없다는 이론입니다. 현실은 어떤가요. 당위가 늘 존재로 구현되는 것은 아니지요. 특히 국경을 경계로 하는 공간을 이동할 때 무게감은 현저히 달라집니다. 인권은 국가권력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나라마다 더욱 차이가 납니다.

우리나라 인권상황은 우리 몫입니다. 헌법재판소 결정도 기여를 하였습니다. 인권을 침해하는 법률 효력을 상실시켜 왔지요. 국회를 통과하여 형식적 정당성이 있더라도 실질에서 정당성을 결여해 헌법에 반한다면 효력을 없앱니다. 국가 공권력이 기본권을 침해하는 사건에서는 위헌임을 선언했습니다.

결과에 따라서는 불만에 찬 비평도 들리지만, 인권침해 법률과 위헌적 공권력을 막을 기관과 제도가 있다는 현실은 감사한 일입니다. 히틀러가 늘 국회에서 만든 법으로 정책을 집행했다는 역사를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헌재결정에 아쉬운 대목은 채워나가야 할 과제입니다.

인권위, 출범당시부터 논쟁

국가인권위원회도 인권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습니다. 헌법재판소 못지않게 인권에 관한 이슈를 낳고 있습니다. 출발부터 논쟁은 뜨거웠지요. 생성당시 논의를 기억합니다. 특히 지위와 권한문제에서 갈등이 첨예화되었지요. 국가기관으로 할 것인지, 법인으로 할 것인지 하는 두 갈래 선택 문제에서 3년 넘게 공방은 지루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법인으로 하자는 견해가 설득력 있어 보였습니다. 인권침해는 대개 국가가 하는데 인권전담기구를 다시 국가기관으로 두어서는 효과가 없다는 논거를 듭니다. 국가기관은 결국 국가편에 서는 속성상 한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민간 특수법인으로 해야 자율적으로 적극성을 띤다는 입장이지요.

맞서는 측은 손사래를 쳤습니다. 현실을 보아야 한다고 설득합니다. 법인으로 하면 주무관청 감독을 받게 되는데 가령 법무부 검사를 받으며 검찰을 견제할 수 있겠느냐고 따집니다. 1998년 9월에는 '인권법제정 및 국가인권기구설치 민간단체 공동추진위원회'를 결성해 "법무부 산화기관화 반대, 헌법기관에 준하는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 요구"라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기도 하지요.


공방 끝에 국가인권위원회는 2001년 11월 국가기구로 출범합니다. 3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누구의 간섭이나 지휘를 받지 않고 업무를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독립기구로 규정해 민간법인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배척했습니다.

사회적 파장 낳은 인권위 권고


인권위 권고와 의견표명은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살색'은 평등권 을 침해하는 용어라며 기술표준원에 한국산업규격을 개정토록 한 권고(2002.8.1)는 세간의 관심을 끕니다. 2005년 5월 기술표준원은 대신 살구색이란 용어를 쓰기로 결정하지요.

초등학생 일기장 검사가 인권침해(2005.4.7)라는 의견표명도 화제였습니다. 교사가 초등학생 일기장을 검사하는 관행은 아동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양심의 자유 등 헌법에 보장된 아동인권을 침해한다며 교육부총리에게 개선의견을 표명합니다. 현실성 없고 교육적 기능을 무시한 결정이라는 반박으로 논란이 빚어집니다.

국가기구로 설치하면 나라입장을 대변하는데 그칠 것이라는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목소리를 냅니다. ▲이라크 파병∙전쟁반대(2003.3.26)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개선(2003.5.12) ▲국가보안법폐지(2004.8.24) ▲사형제 폐지(2005.4.6) 권고 및 의견표명이 대표적입니다.

2005년 12월 26일에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를 권고하는데, 종래 대법원판례나 헌법재판소결정과는 상이한 해석입니다. 같은 날 발표한 조사결과는 경찰수뇌부 사퇴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시위 중 농민사망 원인이 경찰 과잉진압에서 비롯되었다는 조사판정으로 경찰청장은 임기를 채우겠다는 태도를 더 이상 고수하지 못하게 됩니다.

인권위 권고는 법적 강제력이 없습니다. 실효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파급효과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장점이 있습니다. 공식입장이지만 파격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사회 인권의식을 높이고 다양한 가치관 수립에 이바지했다는 격려가 들립니다. 무모하며 무책임하다거나 이념적으로 편향돼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섣부른 판단이 사회 갈등을 부채질한다는 부정적 시각도 있지만 논쟁은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과정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위는 독립기구

내용에 대한 논박이 아니라 발언주체를 문제 삼으며 준열히 꾸짖는 목소리는 온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국가기관으로서는' 부적절하다고 책잡는 일이지요. 파병반대의견을 냈을 때 여야가 정책 일관성 유지에 혼선을 가져온다는 이유로 인권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는데 인권위가 정부정책에 동조하는 의견만 내야한다면 존재이유가 무색해질 것입니다.

정부 비정규법안에 제동(2005.4.14)을 걸었을 때 당시 노동부 장관은 "잘 모르면 용감하다. 비전문가의 월권행위며 단세포적인 기준"이라며 원색적 비난을 퍼붓습니다. 주무장관으로서 입장을 밝히는 공격은 있을 수 있습니다. 논쟁과정을 부처 간 조율이 부족해서 생긴 미숙함으로 폄하해서는 곤란합니다.

인권위는 독립기구입니다. 독립성 확보를 위해 위원도 국회선출 4인, 대통령 지명 4인, 대법원장 지명 3인으로 구성됩니다. 1기 위원장은 퇴임 시 인터뷰에서 "독립기구 이해시키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했습니다. 고도의 독립성은 존립근거에 가깝습니다.

인권논의, 공론장에서 더 많은 토론 있어야

인권위 권고에 대해 업무분장 차원에서 월권이라고 비난하거나 국가기관이 정책에 엇박자를 놓아 혼란을 초래한다는 힐난은 오해에서 비롯된 면이 많습니다. 내용당부을 놓고 박론으로 언쟁을 벌이는 일과는 구별해야 합니다.

기속력 있는 헌법재판소 결정은 반면 신중함이 더 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속력은 모든 국가기관이 헌법재판소의 구체적인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것과 장래에 어떠한 처분을 행할 때 헌법재판소 결정을 존중할 것을 요구합니다(결정준수의무). 뿐만 아니라 이는 모든 국가기관이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문제된 심판대상뿐만 아니라 동일한 사정에서 동일한 이유에 근거한 동일내용의 공권력 행사 또는 불행사를 금지합니다(반복금지의무).

공론장에서 가설과 자료를 토대로 한 토론이 충분히 이루어진다면 헌법재판소가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결정의 파장은 막대한데 반해 선출된 권력이 아니어서 민주적 정당성은 취약하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새로운 길을 나서기가 쉽지 않은 형국입니다. 궁극에는 가치와 철학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우리사회 논의 수준이 투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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