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202

새로운 시작

등록 2006.01.05 20:12수정 2006.01.0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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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초관님."

"그 놈의 초관 소리 좀 이제 그만하라우. 이젠 초관이고 뭐고 아무것도 아니지 않네."

차예량은 한달 째 헛간에 갇혀있는 장판수를 찾아가 어색하게 말을 붙이고 있었다. 밥을 들여 올 때 가끔 서먹서먹하게 얼굴만 마주치다가 이틀 전 '장형'이라고 말을 걸었을 때 장판수는 크게 화를 낸 바 있었다. 차예량이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삐죽거리자 장판수는 빈 그릇을 물리고서는 거나하게 트림을 한 후 입맛을 다셨다.

"그래 무슨 할 말이 있기에 자꾸만 얼굴을 들이미는 것이네?"

"...... 사죄드리려고......"

장판수는 얼굴을 찡그렸다.

"사죄를 왜 나한테 하네? 자네가 두청에게 붙었다고 내게 아쉬운 건 하나도 없네! 다만 돌아가신 자네 형님이 안타까울 뿐이지."

차예량은 얼굴이 굳어졌지만 단단히 작정을 했는지 장판수의 가시 돋친 말에도 물러가지 않았다. 오히려 차예량은 장판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계화가 걱정되어서 그랬습니다! 어리석은 저를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장판수가 그리 모질지 만은 않은 사람이라 급히 차예량을 일으켜 세우며 그를 위로했다.

"이보라우! 그만 하면 됐대도 그러내…. 계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지 걔가 왜 심양에 가 있는지 이해가 안가는 구만."

차예량이 한숨을 쉬며 자신의 사과를 받아준 장판수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함을 표했다.

"두청도 계화가 왜 심양에 갔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기래? 하여간 넌 왜 여기 남아 있는거네? 속은 것을 알았으면 박차고 나가야지 정상이 아니갔어?"

"그게......"

차예량은 장판수에게 사금파리 조각으로 맹세를 한 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제가 두청과 손을 잡기로 약조한 후 보름 후에 각지에서 두령이라는 자들이 십여 명쯤 몰려왔습니다. 여기서 보면 두청이 우두머리 같지만 실은 그런 것도 아니더이다."

"그럼?"

"각각의 두령이 패거리를 이끌고 있고 동등한 입장에 서 있더이다. 이들을 모두 총괄한 우두머리가 없다 이겁니다. 두령이 오지 못한 쪽은 대신 사람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흠......"

"전 그들 앞에서 사금파리 조각을 받고 맹세를 했습니다. 서로 피를 섞어 술을 마셨고 맹세를 어기는 자는 끝까지 추격해 가족까지 죽인다고 했습니다."

"기럼 그게 겁이 나서 여기 있는게야?"

차예량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제가 떠나면 저들이 계화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기럴수도 있갔군. 헌데 한양에서는 아직 아무런 기별이 없네?"

"저도 모르겠습니다. 장형이 여기 온 이후 긴밀한 일을 논할 때는 절 제외해 버리니......"

장판수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자신이 여기에 있는 동안 두청이 다른 흉계를 꾸몄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점이 매번 마음에 걸렸다.

"평구로 늙은이는 왜 도통 보이지를 않나?"

"두청과는 이제 서먹한 사이라 두문불출할 따름입니다. 칼을 잘 쓰고 여기 객잔의 하인들에게 신망이 두터운지라 두청도 당장 어쩌지는 못하는 것 같더이다."

"알겠네."

차예량이 물러간 후 장판수는 벌렁 자리에 누워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일이 잘되어 최효일이 돌아오게 되면 의주로 가서 부윤을 뵙고 여비를 얻어 잡혀간 사람들을 데려와야갔어.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어 사금파리 조각을 받는 맹세를 할지라도 곁으로는 따르는 척 하면서 내 이놈들을 속속들이 파헤쳐 모조리 때려잡을 게야. 내래 위협받을 가족이 있어 뭐가 있어. 두청 이놈이 간악하긴 하나 어찌 내 속마음을 속속들이 알갔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긴 장판수는 어느덧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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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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