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내 연락처 절대 못 알려줘" 부모 피해 꽁꽁 숨어버린 자식들

[가족 절연②] 절연은 법적효력 없어 독립세대 인정 못받아... 가족사 개입 꺼리는 탓에 폭력 눈감고 사적인 일로 치부돼

등록 2024.05.24 13:50수정 2024.05.24 14:50
3
원고료로 응원
가정의달 5월이 반갑지 않은 이들이 있다. 부모 자식 관계를 끊어낸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절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탈가정’ 후 어려움에 대해 들어보았다. 또 가족이 일방적인 종속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변화도 모색해보았다.[편집자말]
[가족 절연] 1편에서 이어집니다.  
 
a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자녀들의 경우 절연 이후 심각한 경제적 위기를 겪게 된다. 사진은 서울 대학가 인근의 원룸촌 풍경. ⓒ 연합뉴스

 
가정폭력 등의 이유로 부모와 절연한 이들은 언제든 부모가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는 걱정 혹은 고통에 시달린다.

'절연'은 부모와 자식이 서로 연락하지 않고 한 공간에도 거주하지 않는, 가족관계의 상황을 표현하는 말일 뿐 법적인 효력이 없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부모 자식의 관계를 끊어낼 수 있는 법적 절차가 없다. 또 '탈가정'은 가정을 탈출했다는 뜻으로 가정폭력 등으로 인해 자녀가 부모 등 원가족과 분리된 상황을 말한다.

연락처 알아내 찾아오는 부모들... 법적인 '절연'은 불가능

미국의 경우 '부모분리(Estrangement from Parents)' 청구가 있다. 이는 부모를 상대로 혈족 관계를 소멸시켜 달라고 하는 소송으로, 한국 식으로 말하면 가족관계등록부에서 부와 모를 삭제하고 '고아'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나홀로 집에>로 세계적 스타가 되었던 배우 맥컬리 컬킨은 이 청구를 통해 아버지와의 혈족 관계를 끊어내고 법률적으로 남남이 돼 뉴스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가족관계등록부를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일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를 신고하고 피해사실이 입증되면 부모 등 가정폭력 가해자가 피해자 주소지 열람을 하거나 가족관계등록부를 발급하는 것에 제한을 두는 것 정도만 가능하다. 절연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가족관계 말소 같은 법률적 조치는 현행법상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과 절연한 김혜미 작가는 "아무리 절연했다고 해도 '동사무소(주민센터)'는 내 부모가 누군지, 그리고 내 연락처가 몇 번인지 알고 있으니 언제든 연결될 수 있지 않나"라고 했다. 전입신고 때에는 개인 연락처는 물론 세대주 정보 등 원가족에 대한 정보까지 모두 기입해야 한다. 때문에 부모의 접촉을 막기 위해 아예 전입신고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부모가 사망하는 경우에는 주민센터 등을 통해 장례 절차를 위한 연락이 오기도 한다. 

전입신고 주소지에 대한 정보 조회를 못하게 하는 '열람 조회 제한'도 있지만 부모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자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녀가 어디에 사는지를 물어보고 시달리다 못한 친구들이 말해서 부모가 자녀를 찾아내기도 한다. 부모를 상대로 접근금지를 받아낼 수도 있지만, 폭력 등 피해 입증이 전제되어야 한다. 탈가정했다고 해도 부모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자식의 주거지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관계 끊은 부모 재산 때문에 지원 제외... '단독가구' 인정도 쉽지 않아

특히 절연 후에는 현실적인 문제, 특히 경제적인 어려움이 크게 다가오는데 취약 계층으로서 지원받는 일도 쉽지 않다. 김혜미 작가는 "집을 나온 후에 (형편이 어려워서) 지원을 받기 위해 시도해 봤으나 조회 결과 부모 재산이 걸려서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기초생활 보장은 개인이 아닌 '가구'를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기초생활 급여 등을 신청하려면 단독 세대주 자격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주민등록법상 단독 세대주는 만 30세 이상인 자만 가능하고, 30세 이전에는 결혼을 통해 세대를 분리하거나 최저생계비 이상의 일정한 소득을 증명해야 한다. 

때문에 미성년자이거나 성년일지라도 학업 등의 이유로 소득 활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의 경우 절연을 통해 부모의 주거지에서 분리됐다 하더라도 기초생활급여를 신청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일례로 코로나19 때도 긴급재난지원금이 개인이 아닌 '세대' 단위로 지급돼, 탈가정했어도 세대 분리가 되지 않은 이들은 본인 지원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마한얼 변호사(사단법인 두루)는 미성년자도 단독 가구로 세대 분리가 돼야 하며, 부양의무자와의 관계를 증명하는 것이 완화될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마 변호사는 지난 17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주거 급여 신청 시)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를 신고한 경우 외에 절연을 했다고 증명할 공적인 방법이 없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완화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a

지난 2020년 5월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1,2,3,4 가 주민센터에서 별도로 마련한 긴급재난급접수처에서 선불카드를 발급하고 있다. ⓒ 이희훈

 
가족 싫어 '탈가정' 했는데... "부모랑 화해하라" 등떠미는 기관

가족 관계가 위기인데, 엉뚱하게도 위기 지원은 가족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이는 국가는 가정 내의 일, 가족 관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우리나라의 일면을 보여준다. 국가가 운영하는 쉼터는 잠시 어려움을 피해 쉬어가는 기관일 뿐 최종 목표는 '원가족'으로의 복귀다.

청소년 성소수자를 지원하는 사단법인 '띵동'의 정민석 이사장은 "가정폭력으로 인해 가족으로부터 탈출을 선택한 청소년들이 갈 수 있는 제도적으로 보장된 공간은 각 지역에 있는 위기 지원 쉼터인데, '시설'을 중심으로 위기 지원의 초점이 맞춰진 현실 속에서 국가는 쉼터에서 잠시 지내다가 다시 부모랑 화해하라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단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전제가 지금의 긴급복지지원법의 토대고, 이것이 해체되지 않는 한 탈가정한 이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사회 통념을 만들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탈출하는 이들에게는 경제적, 사회적 단절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문제가 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친척이나 친구, 이웃이 있는지 등을 의미하는 '공동체 연대성'에서 한국은 OECD 회원국 38개국 가운데 38위(2022년)였다. 한국인들은 가정 이외의 곳에서 사회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없다.

소수자 이야기를 문화 콘텐츠로 만드는 사회적 기업 282북스의 강미선 대표는 지난 2022년부터 탈가정 청년들을 만나왔다. 강 대표는 "탈가정을 한 청년들은 가정폭력을 겪고 집에서 나왔지만 사회적으로 어떤 혜택이나 도움을 얻을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자살이나 고립사 등의 위험이 높은 이들"이라면서 "가해자인 부모가 찾아올까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립은둔 청년'에 속해 본인이 살기 위해 지원 가능한 단체를 찾아갔는데, 정작 단체에서는 '부모님에게 도움을 요청해보라'라고 하니 입을 다물고 만다. 한국 사회가 가족을 중심으로 뿌리 깊게 박혀있는데, (절연이나 탈가정을) 삶의 다양한 선택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돼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가족 내 개입 꺼리는 한국사회... '맥락' 사라지고 개인문제로만 치부

지난 9일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은 '가정 밖 청소년 주거권 등 인권 상황 실태 조사 결과보고회'를 열었다. 다양한 이유로 부모 혹은 원가족과 절연하고 탈가정한 청소년 혹은 청년들의 주거권 등을 살피는 자리였다.

이날 청소년 인권 활동가 일움(활동명)은 "세상의 너무 많은 것들이 가정폭력과 닮아있고 닿아있다"라면서 "아이들을 위기로부터 구제해주는 방법은 또 다른 (허상의) 정상가족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신화는 한계에 부딪힌 지 오래"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떤 (가족이 아닌) 수평적인 관계도 약간씩 기울어지게 되고 싸우기 마련"이라며 "그럴 때 서로가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싸울 수 있는 권력이 서로에게 주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가족에 속할 수 있음과 동시에 가족을 꾸릴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족은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절대 끊어질 수 없다고 여겨지는 한국사회에서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어 내기란 쉽지 않다. 마 변호사는 "(근본적으로) 모든 사회적 기반을 가족에게 맡겨 두니 (문제가 생겼을 때 일대일로 해결할 수 있는) '협상력'이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가족 외부에서도 지지하고 개입하는 관계가 분명 필요한데, 한국 사회는 가족 내 개입 자체를 보수적으로 생각해 잘 하지 않는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마 변호사는 "그러다 가족이 깨지면 오직 서로에게만 책임을 묻고 관계를 끝내는 방식으로만 설명이 된다. 오히려 (절연 과정에서) 가족을 둘러싼 주변 환경이나 맥락이 사라지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a

부모와 자식이 상하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위치에서 존재할 수 있는 가족은 한국사회에서 불가능한 것일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절연과 탈가정을 고민하면서 가족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 연합뉴스

 
#가족절연 #탈가정청년 #보호종료청년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댓글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우리도 신라면과 진라면 골라 먹고 싶다
  2. 2 한국 언론의 타락 보여주는 세 가지 사건
  3. 3 한국 상황 떠오르는 장면들... 이 영화가 그저 허구일까
  4. 4 "백종원만 보고 시작한 연돈볼카츠... 내가 안일했다"
  5. 5 이종섭·임성근·신범철, 증인 선서 거부 ..."짜고 나왔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