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자녀들의 경우 절연 이후 심각한 경제적 위기를 겪게 된다. 사진은 서울 대학가 인근의 원룸촌 풍경.
연합뉴스
가정폭력 등의 이유로 부모와 절연한 이들은 언제든 부모가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는 걱정 혹은 고통에 시달린다.
'절연'은 부모와 자식이 서로 연락하지 않고 한 공간에도 거주하지 않는, 가족관계의 상황을 표현하는 말일 뿐 법적인 효력이 없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부모 자식의 관계를 끊어낼 수 있는 법적 절차가 없다. 또 '탈가정'은 가정을 탈출했다는 뜻으로 가정폭력 등으로 인해 자녀가 부모 등 원가족과 분리된 상황을 말한다.
연락처 알아내 찾아오는 부모들... 법적인 '절연'은 불가능
미국의 경우 '부모분리(Estrangement from Parents)' 청구가 있다. 이는 부모를 상대로 혈족 관계를 소멸시켜 달라고 하는 소송으로, 한국 식으로 말하면 가족관계등록부에서 부와 모를 삭제하고 '고아'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나홀로 집에>로 세계적 스타가 되었던 배우 맥컬리 컬킨은 이 청구를 통해 아버지와의 혈족 관계를 끊어내고 법률적으로 남남이 돼 뉴스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가족관계등록부를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일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를 신고하고 피해사실이 입증되면 부모 등 가정폭력 가해자가 피해자 주소지 열람을 하거나 가족관계등록부를 발급하는 것에 제한을 두는 것 정도만 가능하다. 절연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가족관계 말소 같은 법률적 조치는 현행법상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과 절연한 김혜미 작가는 "아무리 절연했다고 해도 '동사무소(주민센터)'는 내 부모가 누군지, 그리고 내 연락처가 몇 번인지 알고 있으니 언제든 연결될 수 있지 않나"라고 했다. 전입신고 때에는 개인 연락처는 물론 세대주 정보 등 원가족에 대한 정보까지 모두 기입해야 한다. 때문에 부모의 접촉을 막기 위해 아예 전입신고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부모가 사망하는 경우에는 주민센터 등을 통해 장례 절차를 위한 연락이 오기도 한다.
전입신고 주소지에 대한 정보 조회를 못하게 하는 '열람 조회 제한'도 있지만 부모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자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녀가 어디에 사는지를 물어보고 시달리다 못한 친구들이 말해서 부모가 자녀를 찾아내기도 한다. 부모를 상대로 접근금지를 받아낼 수도 있지만, 폭력 등 피해 입증이 전제되어야 한다. 탈가정했다고 해도 부모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자식의 주거지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관계 끊은 부모 재산 때문에 지원 제외... '단독가구' 인정도 쉽지 않아
특히 절연 후에는 현실적인 문제, 특히 경제적인 어려움이 크게 다가오는데 취약 계층으로서 지원받는 일도 쉽지 않다. 김혜미 작가는 "집을 나온 후에 (형편이 어려워서) 지원을 받기 위해 시도해 봤으나 조회 결과 부모 재산이 걸려서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기초생활 보장은 개인이 아닌 '가구'를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기초생활 급여 등을 신청하려면 단독 세대주 자격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주민등록법상 단독 세대주는 만 30세 이상인 자만 가능하고, 30세 이전에는 결혼을 통해 세대를 분리하거나 최저생계비 이상의 일정한 소득을 증명해야 한다.
때문에 미성년자이거나 성년일지라도 학업 등의 이유로 소득 활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의 경우 절연을 통해 부모의 주거지에서 분리됐다 하더라도 기초생활급여를 신청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일례로 코로나19 때도 긴급재난지원금이 개인이 아닌 '세대' 단위로 지급돼, 탈가정했어도 세대 분리가 되지 않은 이들은 본인 지원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마한얼 변호사(사단법인 두루)는 미성년자도 단독 가구로 세대 분리가 돼야 하며, 부양의무자와의 관계를 증명하는 것이 완화될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마 변호사는 지난 17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주거 급여 신청 시)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를 신고한 경우 외에 절연을 했다고 증명할 공적인 방법이 없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완화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