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무리를 지나쳐간 기마군 하나가 말 머리를 돌리다 갑옷 등짝에 두 발을 맞고는 말에서 떨어졌다. 이십여 보 거리에서 방향을 튼 스무 명 남짓한 기마군이 다시 짓쳐 들어왔다.
“으야앗”
[철컥, 철컥]
기합을 내지르며 창을 꼬나들고 길 위쪽을 향해 달려오는 기마군을 향해 ‘후’가 열심히 방아쇠를 당겼으나 오혈포의 공이가 빈 약실을 치는 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회전약실을 열어 빈 탄피를 쏟아낸 ‘후’가 잽싸게 주머니에서 탄환을 꺼내들었다.
“흐업!”
‘후’가 미처 약실에 탄환 한 발을 꽂기도 전에 힘껏 던진 기마군의 창이 배를 꿰었다. 한껏 부릅뜬 눈으로 몸을 떨면서도 오혈포를 놓지 못하는 후에게 연이어 오던 기마군이 환도를 큰 반원으로 그어 올렸다.
“하아.....”
‘후’가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자세를 유지하다 맥 없이 뒤로 넘어갔다.
“이 개노무에 시키들!”
[탕]
‘중’이 욕설을 뱉으며 쏜 총에, ‘후’에게 환도를 그었던 기마군이 떨어졌다.
기마군 몇의 시선이 길 위 몇 십 보 거리 둔덕으로 모아지고 활에 화살이 메겨졌다.
[탕]
이번엔 복 서방의 마병총에서 흰 화연을 뿜어냈다. 제일 먼저 화살을 메긴 기마군이 말에서 나동그라지자 나머지도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이내 활시위를 한껏 당겨 복 서방과 중을 겨냥했다.
[쉬잇-]
“억!”
활을 겨냥하던 기마군 중 하나가 뒷덜미에 꽂힌 비수를 잡으려 버둥거리다 떨어졌다. 저만치 길 아래에서 천돌이가 비수 던진 자세를 아직도 풀지 않고 있었다. 이어 부축하던 전을 내려 놓은 천돌이가 길 위의 기마군들 틈으로 내달았다.
“안 돼 이놈아! 어서 내빼란 말이다.”
[탕]
다시 장전을 마친 복 서방이 소리치며 기마군을 쏘았다. 아무래도 천돌이가 속도를 잃고 길에서 뒤엉킨 열 몇 마리의 말은 해볼만한 상대라 여긴 듯 했다. 그러나 아직 기마군을 상대해 본 적이 없는 젊은 천돌이가 제 재주만 믿고 설치는 게 불안했다. 무엇보다도 길 아래쪽의 보군들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허잇!”
잽싸게 앞구르기를 하며 떨어진 기마군의 목덜미에서 비수를 뽑아 든 천돌이가 껑충 뛰어 올랐다. 기마군 하나가 왼쪽 옆구리로 달려드는 천돌이를 향해 칼을 그었으나 오른팔로는 무리였다. 공중에서 허리를 틀어 가볍게 피한 천돌이가 기마군의 허벅지에 비수를 박아 넣었다.
“아악!”
비명이 가라앉기도 전에 땅에 내려 앉던 천돌이가 그 기마군의 허리를 끌어 땅에 박았다. 발을 곧게 들어 뒤꿈치를 떨어진 기마군의 인중에 박아 넣은 천돌이가 틈을 주지 않고 말의 배 밑으로 구르니 바로 그 위로 칼의 궤적이 그어졌다. 다른 기마군들이 에워싸며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언덕 위의 복 서방이 그 광경을 보고 내려서려는 순간 중이 손목을 잡았다. 두 눈이 마주쳤다. 중의 눈에도 복 서방의 눈에도 실핏줄이 터질 것처럼 핏발이 서 있었다. 중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복 서방이 중의 눈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눈꼬리가 퍼르르 떨렸다. 누구에게가 아니라 복 서방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었다. 애초에 1대의 전을 구하기 위한 시도를 말리지 않은 자신의 처사가 사태를 이 지경까지 몬 것이라 여겼다.
복 서방의 핏발 선 눈에 길 아래쪽으로 채 80보도 되지 않을 거리에서 뛰어 오고 있는 보군들이 보였다.
선두의 포군 십 여명이 정지한 채 무릎을 꿇고 이 쪽을 조준하고 있는 광경도 보였다.
[탕]
넋을 잃은 복 서방 옆에서 중이 먼저 방포했다. 정렬한 십여 명의 포군 중 하나가 벌렁 뒤로 넘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놀란 것인지 포군들 쪽에서도 두서 없는 방포 소리와 함께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중이 복 서방의 머리를 누르며 넘어뜨렸다. 거리가 멀었던지, 놀란 틈에 쏘았던지 총알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멀찍이서 들렸다.
“정신 차리십시오! 대장님마저 잘못되면 실상 한성의 백호대는 와해되고 맙니다.”
중이 복 서방에게 소리쳤다. 이어 중이 빼꼼이 고개를 내 밀어 내려다 본 언덕 아래에서는 저항하던 천돌이가 치켜든 말의 앞발에 어깨죽지를 밟히는 광경이 눈에 보였다. 말에서 내려 선 서너 명의 기마군이 천돌이의 목을 밟고 오라를 지웠다. 정신을 차린 복 서방이 내다 보았을 때 천돌의 시선과 마주쳤다.
“대장님 여길 떠야 합니다. 어서!”
길 아래편에서 몰려오는 보군들과 언덕으로 막고는 있으나 바로 코 앞의 마군들 다음 목표는 자신들일 게 뻔했다.
“중, 너는 1대 ‘전’을 맡아라. 난 천돌이를 맡으마”
“꼭.....그렇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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