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탕]
“으억! 헉!”
오혈포에서 연이어 터져나오는 총성과 그 수만큼의 비명이 동시에 울렸다. 그러나 금세 군졸들이 칼을 휘두르고 창을 내지르며 눈 앞까지 다가왔다.
[챙!]
군졸의 환도를 비수 한 자루로 막아낸 천돌이가 몸을 날렸다.
“아웁!”
천돌이의 무릎에 턱을 찍힌 군졸이 뒤로 넘어가는데 연이어 천돌이가 명치를 발꿈치로 밟았다.
“허엿!”
발을 땅에 대이기도 전에 몸을 뒤틀어 돌며 막 창을 찌르려는 군졸의 목을 제껴 차니 그만 흰자위를 드러낸 군졸이 맥 없이 무릎을 꿇었다. 천돌이가 물찬 제비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는데 좌, 우, 후의 몸놀림도 그에 못지 않았다. 어느새 열 남짓 달려들던 군졸의 기세는 꺾이고 겨우 두 명이 남아 오도가도 못한 채 벌벌 떨고만 있었다.
“됐다, 천돌아 어여 뛰거라!”
고갯마루 위 바위 뒤에 보고 있던 복 서방이 소리를 질렀다. 보총과 마병총을 겨눈 ‘중’과 복 서방이 지원사격을 해 주려했으나 워낙에 피아가 뒤엉킨 상황인지라 손을 쓰지 못했던 터였다. 그런데 겨우 이백 보도 되지 않는 거리에 한 떼의 기마군이 나타나자 상황이 다급해져 복 서방이 나서고 만 것이었다.
[두두두두]
비 내린 땅이라 흙먼지는 일지 않았으나 땅을 낼 것처럼 흙을 튕기며 뛰는 삼십여 마리 군마들의 기세가 더욱 위압적이었다. 저 정도 규모의 마군이면 뒤에 상당한 보군이 따르고 있을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좁게 잡아도 두 개 기(旗:30여명 단위의 부대)가 넘을 듯한 보군들의 머리가 고개너머로 보였다.
“냅다 뛰란 말이닷. 어서!”
복 서방이 다급한 나머지 손짓까지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탕]
옆에서 ‘중’이 방포하는 소리가 들렸다. 뛰어오던 군마 하나가 구르니 두어 마리가 연이어 고꾸라졌다. 저 정도 속도에서 낙마하였다면 낙상한 마군은 필경 반병신이 되었을 게 틀림없어 보였다.
[쉭-쉬쉭]
내 닫는 말 위에서 궁수들이 시위를 당겼다.
“이크”
상체를 드러내고 소리를 지르던 복 서방이 쏟아지는 화살비를 피해 고개를 숙였다. 어림잡아도 백오십 보가 넘을 거리에서, 그것도 흔들리는 말잔등에서 겨냥한 화살이 대개 복 서방주변 서너 걸음 안쪽에 낙착했다. 조선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도 빠르게 조총 체제로 전환되지 않은 이유를 알만했다. 조총이 무서운 살상무기이기는 하나 단가면에서나, 사거리면에서, 그리고 발사속도 면에서도 우선 쓰기엔 활이 훨씬 나은 탓이었다.
[탕, 탕]
보총과 마병총이 동시에 불을 뿜었다. 얼추 백이십 보. 말의 속도 때문에 거리는 부쩍 줄어 있었다. 그 만큼 이편으로 뛰고 있는 백호대원들과 추격대의 사이가 더욱 가까워져 가는 셈이었다. 말 하나가 다시 고꾸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복 서방이 내념으로 ‘중’의 보총 때문일 것이라 여겼다. 풍문에 듣자하니 본영의 흑호대 어떤 이는 마병총으로도 백오십 보 거리의 사람 머리를 정확히 꿰뚫는다고도 하는데 나이 탓인지, 조련미숙인지 복 서방은 백보가 넘으면 과녁이 아른거렸다. 더구나 지금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과녁이라면 요행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요행만 바라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고개 아래쪽의 백호대원들과 뒤쫓는 기마군들 사이의 간격이 채 오십 보도 안 되었다. 호마(胡馬)에 비하면 제주마는 한 없이 느려터진 녀석이라며 무시했었는데 막상 당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그마저도 날랜 천마처럼만 느껴졌다. 복 서방이 사력을 다해 쏘았다.
[탕]
“으악”
피격되어 말 위에서 떨어지는 훈련원 군졸의 비명소리가 들릴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팍]
다시 쏘려는 복 서방 머리 옆으로 스친 화살이 뒤편 나무에 박혀 부르르 떨었다.
[푸후 푸후]
숨이 턱까지 차도록 뛰던 ‘좌’가 바로 뒤에서 내뿜는 말의 거친 호흡을 감지했다 싶자 획 돌아서서 오혈포를 겨누었다.
[탕]
[후두두두]
총소리가 난 것과 말들이 ‘좌’를 짓밟으며 지나간 것이 거의 동시였다. ‘우’도 미처 피하지 못하고 군마에 휩쓸렸다. 1대의 ‘전’을 안고 길 아래쪽으로 구른 천돌이와 길 위쪽으로 뛴 ‘후’는 아직 무사했다.
“이 호로자식들, 다 죽어랏!”
‘좌’와 ‘우’의 너덜너덜하게 다져진 육신을 본 ‘후’가 이성을 잃고 오혈포를 겨누었다.
[탕,탕. 철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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