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초월 기만행위' 어떻게 먹혔을까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정-관-언 '황우석 커넥션' 파헤치는 법

등록 2006.01.11 09:41수정 2006.01.1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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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해 12월 23일 대국민사과를 발표하고 있는 황우석 교수. 황 교수는 사과와 함께 교수직을 사퇴한다고 밝혔지만, 그 이후에도 황 교수의 거짓말은 속속 밝혀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23일 대국민사과를 발표하고 있는 황우석 교수. 황 교수는 사과와 함께 교수직을 사퇴한다고 밝혔지만, 그 이후에도 황 교수의 거짓말은 속속 밝혀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국민과 대중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했다. < PD수첩 >은 "설마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고 했다. 종합하자면 황우석 교수팀의 논문 조작은 '상상초월의 기만행위'라는 애기다.

어이없다. 논문 조작 실상이 어이없을 뿐 아니라 그런 '기만행위'가 일사천리로 먹힌 현실도 어이없다.

하지만 세상사에 완전한 우연은 없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건 아궁이를 지피기 때문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 '상상초월의 기만행위'가 먹힌 데에도 그럴만한 이유와 배경이 있다.

어슴푸레 드러나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연기 나는 굴뚝 안을 들여다보니

<경향신문>과 <한국일보> 등은 한나라당 '황우석 진실조사특위'의 주장을 받아 10명 안팎의 의원이 황 교수로부터 후원금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적게는 50만원부터 많게는 300만원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기간은 2004년부터 2005년 사이다. '상상초월의 기만행위'가 집중되고, 연구비 지원이 집중된 시기다.

현행 선거법에 따르면 1회 30만원 이상, 1년 100만원 이상 후원금 지급자에 대해서는 선관위가 기부자를 실명으로 공개하도록 돼 있다. 통상적인 후원금 액수를 가르는 기준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최소 50만원, 최대 300만원의 후원금 액수는 적은 액수라고 보기 어렵다.


지금까지 중앙선관위에 의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후원금 수령 의원은 열린우리당 권선택 의원으로, 그가 받은 후원금은 300만원이다.

주목할 점은 권 의원이 황 교수와는 대전고등학교 동문일 뿐 아니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황우석 진실조사특위'가 주장한 10명 안팎의 후원금 수령 의원들이 어떤 상임위에 소속돼 있는지를 밝혀야 할 이유가 여기서 확인된다.


또 다른 뉴스도 있다. MBC는 어제 황 교수가 경기도 광주 퇴촌농장에서 수시로 접대를 했다고 보도했다. 정관계 인사와 과학담당 기자들을 퇴촌농장으로 불러 한번에 소 두세 마리씩 잡아 접대를 했고 이들이 돌아갈 때는 고기를 싸서 선물까지 했다고 한다.

종합해 보자. 정치인-관련 공무원-언론사 기자들이 황 교수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후원금과 접대, 선물이 오가기도 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는 얘기다.

황 교수의 경우는 여느 경우와는 다르다.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청탁과 로비를 하기 위해 후원금을 내고 접대를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당시 황 교수는 국민적 영웅이었고, 황 교수의 연구는 차세대 성장동력의 성패를 좌우하는 국가전략사업이었다. 이런 후광과 권위만으로도 거칠 것이 없던 황 교수였다. 그런 황 교수가 자신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럼 정관계 인사와 기자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과학기술부가 기초과학연구자들에게 지원될 돈마저 황 교수 지원비로 전용하고, 국회의원들은 황 교수팀에 연구비를 더 주자고 자진해서 나서고, 언론사는 황 교수를 변호하는 건 물론 청부취재까지 한 걸 마냥 우연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단지 국익을 우선시한 행동 정도로 치부할 수 있을까?

물론 자신을 지원해준 사람들에게 성의를 보여야 했고, 또 그 성의가 고마워 내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 후원금과 소갈비가 오갔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앞서 전한 뉴스는 정황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내칠 수도 없다. 그 정황이 중대한 단서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상상초월의 기만행위'가 아무 제동 없이, 어떤 검증도 없이 일사천리로 먹힐 수 있었던 동력이 황 교수를 핵으로 한 정-관-언 결탁구조였을 수도 있다는 단서 말이다.

국회여, 먼저 고해성사를 하라, 그리고 국정조사를 하라

그래서 규명해야 한다. 마침 민주노동당은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한나라당도 "국회에 등원한다면"이란 단서를 달아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국정조사 필요성에 대해선 논란의 소지가 별로 없다. 논해야 하는 건 국정조사의 공정성과 효율성이다.

한나라당 '황우석 진실조사특위' 스스로 밝힌 바대로 황 교수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의원은 여야를 아우르고 있다. 거기서 자유로운 정당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서 국회 국정조사가 과연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진행될 수 있을까?

과학기술부는 어제 서울대 조사위의 최종 조사결과 발표 직후 검찰에 한 사안을 요청했다고 한다. 연구비 유용·횡령 의혹에 대해 감사원과 함께 먼저 감사를 실시할테니 이에 대한 수사는 자신들의 감사가 끝날 때까지 늦춰달라는 요청이었다고 한다.

뒤늦게나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사후조치에 나선 것으로 '좋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후폭풍을 우려해 방어막 치기에 나선 것으로 '나쁘게' 볼 수도 있는 게 과기부의 요청이다. 다시 말해 상황은 아직 유동적이란 얘기다.

이런 상태에서 국회가, 정치적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국회가 철저한 국정조사를 실시할 수 있을까? 후폭풍이 어느 정도 거셀지 뻔히 알고 있는 피조사기관의 결사적 방어를 뚫고 서울대 조사위처럼 진실을 캐낼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전적으로 국회, 즉 각 정당의 마음먹기에 달렸다. 그래서 이들의 진정성을 재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정당별로 자신들이 져야 할 정치적 책임을 구체적으로 고해성사하고 나서 국정조사에 나서면 된다. 그래서 고해성사 내용을 국정조사 항목에 포함시키면 된다.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다. "각오하라"(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고 으름장을 놓고, "정쟁거리로 삼지 말라"(열린우리당 전병헌 대변인)고 되받아치면서 기세 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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