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권고안 트집 잡는 보수언론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사학법과 연계, 대정부 전선 튼실하게 할지도

등록 2006.01.10 11:41수정 2006.01.1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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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을 내놨다. 내용은 세세하지만 핵심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다. 인간답게 살 권리를 향유하는 데 약자와 강자, 소수와 다수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는 취지다.

당연한 얘기 같은데 일부 언론은 당연하지 않다고 비판하고 있다. 재계도 거들고 있다. 이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현실'이다. 국가인권위의 이상은 좋으나 현실을 도외시했다는 주장이다.

천부인권사상이 출현한 후 수백 년 간 지속돼온 논란이니 여기서 되풀이 할 필요는 없다. 한마디 말만 환기하자. 곽노현 국가인권위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70, 80년대 경제개발 시대에 국가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빠르고 능력 있는 사회 구성원을 지원했다면 '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은 '인권발전 5개년 계획'으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중심에 둔다는 데 의의가 있다."

지금 당장 시행하자는 게 아니라 앞으로 5년 동안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이므로 정부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짜 차근차근 풀어나가라는 얘기다.

그래서 국가인권위의 권고안은 현실적이다. 현실 개조의 당위성을 전제해 놓고 현실의 변화가능성을 열어놨기 때문이다.

다른 주장도 있다. 국가인권위의 권고안이 진보 편향이라는 것이다. "권고안 가운데 상당 부분이 진보진영에서 주장해 온 민감한 사안이어서 법률 개정 또는 폐지 과정에서 상당한 논란과 파장이 예상된다"(동아일보)거나, "권고안에는 진보 성향의 학계·정계 및 노동·시민단체가 주장해온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됐다. 이에 중도·보수 성향의 단체와 기업체들의 반발이 예상된다"(중앙일보)는 게 그것이다.

이들의 주장엔 권고안을 이념 갈등의 불씨로 삼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있다. 아울러 그런 구도가 전개되면 '필승'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다. <동아일보>가 같은날 "보수층 10년새 두꺼워졌다"는 기사를 1면 대문에 큼지막하게 건 걸 보면 그렇다.

권고안 놓고 진보-보수 격돌은 불가피

실소를 금치 못할 측면도 있다. 국가인권위가 진보 편향이어서 그런 권고안을 내놓은 게 아니라, 그런 권고안을 놓고 갈리는 세력을 진보와 보수라 칭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들의 주장엔 선후와 본말이 물구나무 서 있다.

하지만 이런 원론 타령은 그리 중요치 않다. 권고안을 놓고 진보와 보수의 격돌은 피하기 어렵다. 문제는 어느 지점에서 격돌이 발화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에 초점을 맞춘 곳은 <조선일보>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가 방향을 잡았다면 <조선일보>는 실천지침을 제공한 셈이다.

<조선일보>는 국가인권위의 권고안 가운데 '공무원·교사 정치활동 허용' 방안을 특화시켰다. <조선일보>는 이 안이 교사의 정치활동 제한을 합헌으로 결정한 헌법재판소의 2004년 판결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을 환기시킨 뒤 이 안이 "사실상 전교조 등 일부 교원단체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가 그리는 구도가 현실화된다면 국가인권위의 권고안은 한나라당의 사학법 무효화 투쟁과 연결된다. "학교를 친북좌파 집단인 전교조에 넘기려 사학법을 날치기 처리했다"고 주장해온 한나라당이 이 권고안을 두고 볼 리 만무하다. <조선일보>의 주장을 그대로 빌리면 "오는 2007년 대선에 공무원 50여만 명과 교사 40여만 명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길을 여는 국가인권위의 권고안을 한나라당이 어떻게 수용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사학법과 권고안의 상승작용을 기대하며 대정부 전선을 더 튼실하게 짤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대응은 그래서 주목거리다. 사학법과 '교사 정치활동 허용안'에 대해 어떤 전략적 판단을 내릴 건지가 우선 주목되는 사안이다

또 있다. 그동안 인권정부를 자처해온 게 참여정부다. 그런 참여정부의 진정성이 시험대 위에 오르게 됐다. 국가인권위의 권고안을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참여정부의 인권지수는 어렵지 않게 확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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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5단체장은 지난해 4월 22일 낮 서울 롯데호텔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인권위원회의 비정규직 의견 철회를 요구하며, 정부 원안대로 조속히 처리할 것을 촉구했다. 김용구 중소기업중앙회장, 김재철 무협협회장, 이수영 경총회장, 박용성 대한상의회장, 조건호 전경련 상근부회장 등이 기자회견에 앞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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