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347회

등록 2006.01.16 08:29수정 2006.01.16 08:27
0
원고료로 응원
제 83 장 연동비사(蓮洞秘事)

단사는 역시 조직을 관리하거나 조사하는데 특별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조직을 완벽히 장악하고 있다 해도 단 하루 만에 인원의 위치와 이동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조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제 본 장을 떠난 인원은 모두 아홉 명이예요. 그 중 네 명은 예정된 것이었고, 다섯 명은 행선지도 밝히지 않고 갑자기 사라졌어요.”

“다섯 명....?”

풍철한이 중얼거리듯 묻자 단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우선 육양수(六陽手) 어르신이 갑자기 어제 저녁 이후로 모습을 보이지 않아요.”

그 말에 풍철한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그 노인네... 졸지는 않았던 모양이군.)

하지만 풍철한은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을 툭 던졌다.


“저잣거리 싸구려 술집이라도 뒤져보지 그러냐? 그 어른 요사이 낙이라곤 술 드시는 것 밖에 없어 허구 헌 날 술 시중드느라 내 주머니가 거덜이 났다.”

“그렇지 않아도 찾아볼만한 곳은 모두 찾아봤어요.”

그러면서 풍철한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그 동안 그의 말마따나 술때문이라도 육양수 어른과 어울린 사람이 풍철한이니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풍철한은 내심 뜨끔했다. 하지만 풍철한의 얼굴에는 육양수 어른이 안 보여서 아주 시원하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나머지는...?”

“요광대(搖光隊) 수석조장인 반중유(潘重愈) 조장이 급히 떠난 것으로 조사되었어요. 수하들에게는 대주(隊主)에게 간다고 말했다더군요.”

요광대의 대주는 조국명이다. 그제 떠난 조국명에게 무슨 급한 일이 있어 다음날 따라간 것일까? 조국명은 무엇을 조사하고 있는 것일까?

“국명에게 간 것이겠지.”

풍철한은 여전히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단사에게 조사하라고 시켜놓고는 이제 자신은 관심이 없다는 모습이었다. 단사는 여전히 풍철한의 태도를 유심히 살피며 말을 이었다.

“또한 개양대(開陽隊) 삼조조장인 풍검(風劍)과 조원 두 명이 함께 없어졌더군요.”

따지는 듯 말을 하는 단사의 얼굴에는 풍철한을 향해 ‘자... 어떻게 변명할래?’ 하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아직도 자신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뭔가 숨기고 있는 듯한 풍철한에 대한 반격이었다. 개양대는 풍철한이 맡고 있는 곳이다. 개양대의 조장이 수하 두 명과 함께 사라진 것에 대해 변명을 해보려면 해 보라는 태도였다.

현재 균대위의 조직은 크게 이대오위로 나뉘어져 있고, 각 위와 대는 칠 개조로 나뉘어져 있다. 또한 각 위와 대의 조 편성은 조장을 포함해 일곱 명으로 이루어진다. 결국 각 위와 대는 사십구 명. 위장과 대주를 합하면 오십 명으로 총 삼백오십 명이다.

“그 친구 게으름 피우다 마침 그 때 나갔구먼.”

풍철한이 고개를 끄떡이더니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능글거리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단사가 샐쭉하며 흘겨보았다.

“뭔가 시켰어요?”

“뭘 알려고 그래?”

“알면 안 되는 일이예요?”

지금까지 그들 사이에는 비밀이란 게 없었다. 조직의 위계나 질서는 분명히 선을 긋고 있었지만 이대오위의 위장과 대주들은 형제와 같은 관계였다. 그것이 요사이 들어 틀어지고 있는 것이다.

“영주께서 뭐라고 지시했지? 이번에는 서로 하는 일을 모르게 하라고 하지 않았나? 영주의 엄명을 어길 셈이야?”

“도대체 영주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명령을 내린 거죠?”

“난 들 알겠어? 뭔가 생각이 있어서겠지.”

“그래도 풍오라버니는 영주와 독대해 한 시진 넘게 뭔가 얘기했었잖아요?”

“독대하긴....? 다들 술 먹다가 힘들다고 슬금슬금 빠져 나가는 바람에 붙잡혀 있었던 거지.”

“풍오라버니가 눈치를 줬잖아요?”

“내가 언제...?”

분명 살천문의 일이 끝난 후 그들은 술독에 빠진 듯 술을 마셨다. 모두 술이 취하기는 했지만 단사는 풍철한의 눈치에 다른 위장들을 불러내 파하게 했던 것이다. 헌데도 지금 와서 풍철한은 아예 시치미를 뚝 떼고 모른 척이다.

“정말 이럴 거예요?”

단사의 눈 꼬리와 함께 목소리 끝이 올라갔다. 자신은 지금 심각하게 묻는데 풍철한은 여전히 장난이다. 분명 영주는 풍철한에게 모종의 은밀한 지시를 내린 것 같았다. 헌데도 시침 뚝 떼고 있다. 풍철한이 갑자기 능글맞은 표정을 거두며 정색을 했다.

“영주께서 내게 어떠한 지시를 내렸는지 꼭 알고 싶어?”

단사의 얼굴에 호기심이 어렸다.

“큰 비밀이 아니라면....”

풍철한이 정색하자 오히려 단사가 말꼬리를 흐렸다.

“좋아... 단사에게는 어떤 지시를 내렸지?”

먼저 자신에게 내렸던 지시를 알고 싶은 것일까?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풍철한에게 내린 지시가 무언지 알고 싶었지만 이것은 분명 영주의 지시를 어기는 일이다. 헌데 갑자기 풍철한이 손을 저었다.

“아니야... 알 필요 없어. 그냥 알려주지.... 귀를 대봐.”

풍철한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은근하게 속삭이며 다가오자 단사는 무심결에 풍철한의 입에 자신의 귀를 갖다댔다.

“흐흠... 역시 단사의 몸에서는 좋은 냄새가 난단 말이야....”

풍철한의 입김이 단사의 귓밥 솜털을 간질이고 있었다. 간지러움과 함께 소름이 끼쳤지만 그녀는 궁금함에 억지로 참았다.

“영주께서 내게 그러시더군.”

술을 좋아해서인지 풍철한의 입김에서는 아직도 술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았다. 고역이었지만 그녀는 끈질기게 참았다. 하지만 풍철한의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발작했다.

“너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나는 그냥 이곳에서 빈둥빈둥 푹 쉬고 지내라고....”

그 순간 단사의 주먹이 풍철한의 가슴을 때린 건 순전히 풍철한 탓이었다. 단사가 속은 것이 분한 듯 씩씩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반드시 속은 것도 아니었다. 담천의가 풍철한에게 내린 지시는 풍철한의 말과 비슷했다. 단 한 가지 중요한 일만 빼고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와 저 인생의 후반기를 풍미하게 될지도 모를 무협작품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천지는 만인의 것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3. 3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4. 4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5. 5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