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346회

등록 2006.01.13 12:01수정 2006.01.1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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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결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들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드나들 때는 기관이 작동된 적이 없었다. 매우 위험하다고만 들었지 사실 그 역시 기관에 대해 자세히 아는 바 없었다. 담천의가 백결을 부축하며 몸을 일으켰다.

“성급히 들어왔군..... 자네에게 도움은커녕 거추장스러운 짐만 되는군.”


“조급히 생각할 필요 없소. 무림인들이 진입했다면 기관들 대부분이 작동되었을 테니 조금만 신경을 쓰면 쉽게 지날 수 있을 거요.”

백결은 툴툴거리며 웃었다. 부상을 입은 자신의 처지가 한심했는지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자네도 상엽을 만나면 조심하게. 그들이 사용하는 무공은 정말 무섭더군. 잔흠(潺歆)이 당했네. 그의 죽음으로 가까스로 한 명을 처리할 수 있었네.”

그에게 있어 잔흠은 마지막 수하였다. 수하라 했지만 형제와 다름없다. 잠시 목이 메는 듯싶었다. 여러 곳에 몸을 담고 있었지만 실제로 자신이 진심으로 마음을 의탁할 만한 곳은 없었다. 사부라 할 수 있는 독부자(讀傅子)라 불리던 천심(穿深) 어른이 암살된 때로부터 그는 백련교 내에서, 그리고 천지회 내에서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음을 알았다. 더구나 스스로도 모르는 가운데 자신이 모종의 조직을 위해 이용당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도 그 시기였다.

“전월헌이란 자의 검 역시 무서웠소. 유리검이 아닌 진정한 검으로 승부했다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오.”


한 치의 우위도 점하지 못했다. 만약 전월헌이 유리검을 믿지 않고 승부했다면 정말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전월헌은 유리검을 믿었고, 그것이 오히려 담천의에게 기회를 준 것과 마찬가지였다.

“알 수 없는 일이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야....”


절룩거리며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걷고 있던 백결이 고개를 흔들었다.

“유리검 말이오?”

“아니... 유리검은 전대 백련교의 고수인 비도탈명(飛刀奪命) 마운(碼暈)이란 인물이 죽기 전에 남긴 마지막 유품(遺品)이네. 모용수에게 비도술을 사사했던 인물이지만 말년에 심혈을 기울여 만든 유리검 아홉 자루는 뜻밖에도 전월헌에게 주었지.”

비도탈명 마운은 오장 이내에서는 그 누구도 그의 비도를 피할 수 없다고 알려진 비도술의 달인이었다. 가지고 있는 열여덟 개의 비도 중 아홉 개 이상을 날려 본 적이 없다는 인물. 모용수가 그에게서 사사를 받았다면 무정비도(無情飛刀)란 외호를 얻은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내가 알 수 없다고 말한 것은 바로 전월헌이 익힌 바로 그 검이네. 누구에게 배웠는지, 그 검의 원류(原流)가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는 말이네.”

뿌리 없는 무공은 없다. 무공이란 아무리 다양한 발전과 변형을 이루어도 그 근간이 되는 뿌리는 남아있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전월헌의 가공할 그 검공은 정말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전월헌은 십오 세까지 검을 잡은 적이 없었네. 잡다하게 전대고수로부터 이것저것 배우면서 별로 두각을 보이지 못하는 아이였단 말이야. 헌데 어느 날 갑자기 낭창거리는 연검을 잡고 나서 그는 달라지기 시작했네. 더욱 이상한 것은 그가 정말 그 동안 검을 잡지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이었네.”

“..........!”

“검을 처음 잡은 아이가 그토록 능숙하게, 더구나 다루기 까다롭다는 연검을 그토록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나 하는 것이었지. 결국 그는 주위 사람들의 이목을 숨기고 연검을 연마해 왔던 것이라 결론 내렸네. 이십이 세가 되던 해 그는 정식으로 사형제 중의 한 명이 되었고, 시일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입에서 강명의 검과 비견되기 시작했지.”

동굴은 인공이 가미된 천연동굴 같았다. 아직 초입이라서 그런지 동굴 안은 의외로 넓었고, 동혈은 한곳으로 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백결은 아주 신중하게 길을 찾아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강명이란 사람은 사형제 중 몇 번째요?”

“다섯째지. 전대 어른들이 처음부터 목적을 가지고 키운 것은 그 까지였네. 그 뒤로는 우리들이 다섯 명을 받아들인 셈이지.”

“헌데.... ”

담천의는 무언가 더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들 사형제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지만 백결의 입장을 생각해 보니 굳이 묻을 것도 아니었다.

“숨을 멈추게.”

백결이 오른 손을 들며 걸음을 멈췄다. 비릿한 내음이 맡아진 것도 같았다. 동혈은 급격히 좁아진 상태로 오장 정도 이어지고 있었는데 좁은 동혈이 끝나는 저편에서는 의외로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그 빛 덕으로 동혈 안에 뿌연 기류가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독액이 뿜어진 것 같군. 비릿한 것으로 보아 맹독을 가진 독사의 독 같아.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백결은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숨을 쉬었다. 그의 눈은 어둠을 뚫고 좁은 동혈을 세심하게 살피고 있었다.

“비침도 바닥에 떨어져 있구려.”

백결은 고개를 끄떡이더니 고개를 돌려 담천의를 보았다.

“담제.... 돌이라도 큰 놈 골라서 던져보지 않겠나? 중간 정도에 떨어지게 던져보면 좋을 것 같군.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담천의는 백결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동혈 아래쪽에 약간 튀어나온 곳을 발로 찼다. 아이 머리통만한 정도의 돌덩이가 부서져 나오자 지체 없이 앞으로 던졌다.

치익---슈우---!

돌이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벽에서 독액이 뿜어지며 비침이 날았다. 하지만 독액은 뿜어지다말고 중간에서 흘러내렸고, 비침 역시 몇 개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을 본 백결이 만족한 듯 미소를 띠웠다.

“아무리 정교한 기관이라 해도 무한정 독액이나 비침을 준비할 수 없는 일이지. 되었네. 가세나...!”

백결은 그것을 예상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숨을 멈춘 채 앞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판단한 것은 백결만의 착각이었다. 정교한 기관장치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법이다. 돌 정도에 작동할 정도라면 정교하다고 말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츠츳---- 슈아아----!

백결이 중간을 가기도 전에 사방에서 독액이 맹렬하게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수백 개의 비침이 난무했다. 좁은 동혈 안에서의 제한된 움직임만으로는 절대 피할 수 없는 상황. 담천의는 바로 백결의 등을 잡아 뒤로 잡아끌어 급히 물러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백결을 안고 좌측과 우측 양 벽을 번갈아 박차며 쾌속하게 앞으로 몸을 날렸다. 아무리 정교한 장치라도 독액과 비침을 내뿜고 다시 쏘아내려면 약간의 틈이 있기 마련이었다. 담천의는 그 순간을 이용해 빠르게 몸을 날려 통과했던 것이고 두 사람의 몸은 엉킨 채 바닥을 굴렀다.

“자넨 아주 고약하군.”
“무슨 말이오?”

“끄응.... 나를 완전히 바보로 만드니 말이네.”

이미 독액이 뿜어질 것이란 예상을 하지 못했으면 보일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혹시나 해서 조심했던 것뿐이오.”

백결은 몸을 일으키며 피식 웃었다. 부상으로 몸이 말을 안 듣자 머리마저 굳은 것도 같았다. 독액을 뿜는 좁은 동혈을 벗어나 뒹군 곳은 수십 명이 모여 있어도 좁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넓은 공간이었다. 더구나 여기저기 야명주가 박혀있어 비교적 밝은 편이었다.

두 사람이 나동그라진 공간 옆으로 종남파의 문하로 보이는 두 구의 시신이 보였다. 누군가와 싸우다 당한 듯 그들의 손에는 검이 쥐여져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도 엉켜서 죽은 것으로 보이는 두 구의 시체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주저앉아 있었다.

“저들은...?”

백결은 중앙에 엉켜있는 시신이 누구인지 알아본 듯 급히 다가갔다. 이미 목이 뒤로 완전히 돌려진 중년인은 황의 도복을 입고 있었다. 이미 목뼈가 부러져 즉사한 것으로 보였는데 그의 검은 주먹을 뻗었다 회수한 모습의 중년인의 가슴에 박혀 있어 두 인물은 치열한 접전을 벌이다가 동귀어진 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을 보는 백결의 얼굴에 의혹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진천권(震天拳) 언파(彦把)와 청성(靑城)의 청풍검(淸風劍)이라니..... 이들이 왜 싸운 거지?”

진천권(震天拳) 언파(彦把)는 진주 언가의 전대가주인 이혼권(離魂拳) 언무탁(彦珷琢)의 셋째아들. 또한 청풍검은 청성의 검법 중 청풍검법(淸風劍法)에만 매진하여 일가를 이룬 인물이다. 청성에 입문하여 검을 배우게 되면 청풍검법부터 배우게 된다. 검을 잡는 마음과 검의 가장 기본적인 초식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검법이 청풍검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아랫대 제자들이 익히는 청풍검법은 그리 위력적이지 않다는 것이 그 간 세간의 평이었다. 하지만 청풍검은 청풍검법의 다양한 검로와 변화를 연구하고 찾아내어 본래의 청풍검법이 가지는 오묘함을 되살린 인물이었다.

담천의는 고개를 흔들었다. 진주 언가라면 이미 언무탁의 기습을 받아본 터. 백결과는 달리 담천의는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던 상대의 음습한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는 다시 우교가 보면 알 수 있는 표식을 남겼다.
(제 82 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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