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중국의 대만 진출 저지하는 이유는?

미·중의 대만-북한 교환 시나리오, 타당성 없다(1)

등록 2006.01.22 19:55수정 2006.01.22 19:57
0
원고료로 응원
"향후 미국과 중국 간에 대만-북한 교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膾炙)되고 있다. 미국이 대만을 포기하는 대신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는 전제 하에서, 미국이 북한을 침공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까쓰라-태프트 밀약(1905년)에 친숙한 한국인들의 귀를 쉽게 유혹할 만한 시나리오다.

그럼, 이러한 시나리오는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이상, 미래의 현상을 예측할 때에는 과학적 접근법을 사용하여야 한다. 과학적 접근법이라는 것은,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조건에 대한 합리적 분석을 통해 미래의 현상을 확률적으로 예측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지금 일부 한국인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미·중의 대만-북한 교환 시나리오는 그러한 과학적 접근법을 결여하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시나리오가 현재의 조건은 물론 과거의 경험에 대한 합리적 분석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동북아에 일본과 러시아라는 국가가 없었다면, 위의 시나리오는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동북아 역내(域內)에 일본과 러시아라는 강력한 행위자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미국이라는 나라가 과연 대만을 포기할 것인가에 대해 검토해 보기로 한다.

대만이라는 곳은 중국 양자강 연강(沿江)과 동남 해안의 경제발전지역을 위협할 수 있는 전략적 위치다. 그런데 이 지역은 미국에게만 전략적 거점이 아니다. 일본 역시 대만에 대해 전략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미국의 세계패권이 날로 약화되어 가는 상황 속에서, 일본이 향후 '미국 없는 동북아'에서 중국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려면 대만과의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는 일이 필요하다. 근래 들어 일본이 대만과의 유대를 한층 강화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일본의 입장을 무시하고 대만을 포기하기도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미국이 대만을 포기한다 해도 일본이 단독으로라도 대만을 원조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일본 입장에서 볼 때에, 대만이 중국의 영향권 아래에 들어간다는 것은 크게 2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중국을 견제할 강력한 거점 하나를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오키나와에 대한 지배권이 위험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대만이 중국에 넘어가면 오키나와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점은, 오키나와와 대만의 지리적 근접성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일본이 과거에 어떤 조건 하에서 오키나와를 합병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876년에 런던에서 발행된 한 잡지에서는 "영국이 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면 유구(오키나와의 당시 명칭)를 점령해야 한다"는 권고가 담겨 있었다. 그만큼 오키나와는 이미 19세기 때부터 동아시아의 전략적 거점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아 왔다. 이처럼 서구 열강이 눈독을 들이던 오키나와를 일본이 먼저 차지한 데에는 대만과의 상관관계가 영향을 미쳤다.

1874년에 일본이 대만을 침략한 이래 대만에 대한 중국의 지배권이 약화되었다. 대만에 대한 본토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틈을 이용하여, 1879년 2월에 일본은 대만에서 동북쪽에 있는 유구를 합병하였다.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인물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이토우 히로부미(이등박문)다.

위와 같이 대만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일본의 오키나와 합병이 실현될 수 있었다. 그때와 지금의 역내 정세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에, 대만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것은 곧 오키나와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이 약화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은 오키나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대만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강화를 어떻게 해서든지 저지하려 할 것이다. 설령 미국이 북한 침공을 위해 대만을 포기한다 해도, 일본은 단독으로라도 대만을 지키려 할 것이다.

일본의 입장이 그처럼 확고하다면, 일본을 핵심 동맹국으로 두고 있는 미국 역시 마음대로 대만을 포기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대만을 포기할 것이라는 예측은, 일본이라는 행위자에 대한 간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이 일본을 핵심 동맹국으로 두고 있고 또 일본이 대만과 오키나와에 대한 전략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는, 미국이 북한 침공을 위해 대만을 포기할 것이라는 가설은 타당성이 없다고 하겠다.

그럼, 중국 입장에서는 과연 북한을 포기할 수 있을까? 북한을 포기하고 대만을 지키는 것이 중국에게 더 이익이 될까? 중국 입장에서 볼 때에, 대만과 북한 중에서 어느 쪽이 본토 방어에 더 중요한 곳일까? 그 점에 관하여는 제2편에서 계속 논의하기로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기사임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기사임을 밝힙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3. 3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