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한 가운데 호수를 찾아가다

[중앙아시아 여행기 20] 발하쉬 호수 1

등록 2006.01.27 11:39수정 2006.01.2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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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의 동남쪽에 위치한 발하쉬 호수. ⓒ 김준희

중앙아시아의 지도를 보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넓은 카자흐스탄의 영토다. 동쪽과 북쪽으로 숲과 산이 많고 가운데와 서쪽은 황무지 같은 지형이다. 그리고 그 동남쪽으로 초승달 모양의 커다란 발하쉬 호수가 있다.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 바로 이 발하쉬 호수다. 하지만 이 호수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다. 여행 전부터 이 호수에 대한 여행정보를 얻으려고 인터넷을 뒤져 보았지만 단지 백과사전에서 제공하는 정보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었다.

여행 도중에도 틈나는 대로 이 곳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카자흐스탄 동남쪽에서 동서로 길게 뻗어있는 이 호수 길이는 약 600km에 육박한다고 한다. 크기로 말하자면 유라시아 지역 어디에 내놓더라도 빠지지 않을 만한 호수다.

같은 유라시아에 있는 유명한 바이칼 호수나 몽골의 홉스골 그리고 키르키즈스탄의 이식쿨 호수 모두 그에 관한 많은 여행정보가 인터넷에 널려 있었다. 하지만 발하쉬 호수에 관한 여행정보는 찾을수가 없었다. 왜일까?

정보를 얻는데 실패하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 발하쉬 호수는 그 커다란 크기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관광지역으로 개발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이 호수는 시간 투자해서 여행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못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알마티에 와서 커다란 카자흐스탄 지도를 구입한 다음에 점점 굳어져 갔다. 그 지도에서 발하쉬 호수의 주변은 모두 사막지형으로 표시가 되어있었다. 지도에 의하면 발하쉬 호수는 사막 한 가운데에 위치한 호수인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나자 더욱 호기심이 생겨났다. 사막 가운데에 위치한 호수. 그렇기 때문에 막상 이곳에 가면 바이칼 만큼의 웅장함도 없을테고, 홉스골에서 느꼈던 아늑함도 없을테지만 뭔가 색다른 느낌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하게 되었다. 호수의 주변환경이야 어찌되었건 그렇게 큰 호수라면 한번쯤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물이 모여있는 곳은 그 자체가 하나의 스펙타클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알마티에서 발하쉬로 가는 기차는 오후 8시에 출발한다. '발하쉬'는 기차가 도착하는 도시의 이름이다. 발하쉬 호수가를 따라서 여러개의 도시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도시의 이름이 발하쉬라고 한다. 오후 8시에 출발하면 다음날 오후 4시에 도착한다. 문없이 개방된 침대칸의 가격은 1400팅게(팅게는 카자흐스탄의 화폐단위. 1달러는 약 130팅게).

기차에 올라서 자리를 잡자 역무원이 돌아다니면서 새 시트와 베개 커버, 수건을 나누어주었다. 공짜로 나누어주는 건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이것들을 사용하는 별도비용으로 160팅게를 지불해야 한다.

개방된 침대칸의 구조는 통로의 왼편에 서로 마주보는 2층 침대가 두개 있고 오른편에 창가와 나란히 또 2층 침대가 하나 있다. 그리고 이런 침대 6개가 반복되는 구조다. 내 맞은 편의 아저씨는 앉자마자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난 이 아저씨와 노트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대화를 했다.

아저씨는 엄청난 속도로 맥주를 비워가며 말을 했다. 알마티에서 발하쉬로 가는 버스도 있다고 한다. 버스로 가면 650km인데 기차를 타면 돌아서 가기 때문에 1100km가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만큼 시간도 많이 걸린단다.

발하쉬에 살고 있는 이 아저씨 말에 의하면 발하쉬에는 여러 곳의 숙박시설이 있는데, 1000~2000팅게 정도면 작지만 괜찮은 호텔을 잡을수 있을거라고 한다. 9시가 넘어서자 사람들은 침대에 시트를 깔고 베개에 커버를 씌우며 잘 준비를 하고 있다. 2층 침대의 아래칸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의자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같은 칸에 있는 한 아주머니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계속 나에게 빵과 음료수를 주면서 먹으라고 한다. 기차에서 20시간을 보내야 하면서도 먹을거리라고는 달랑 물 한병만 들고 온 나는, 이 아주머니 덕분에 배고프지 않게 밤을 보내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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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하쉬 가는 기차 내부. 문없는 침대칸의 모습. ⓒ 김준희

잠에서 깬 시간은 새벽 6시가 채 되기 전이었다. 사람들은 잠들어 있었고 주위는 어두웠다. 모두 잠들어 있을때 혼자 일어났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며 여유있게 화장실로 향했다. 개방된 침대칸인 이 객차에서는, 지금처럼 승객들이 있을 때에는 화장실 맞은 편 창문을 통해서만 제대로 된 바깥 경치를 감상할수 있다.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은 마치 우즈베키스탄에서 보았던 키질쿰 사막을 연상시켰다.

새벽 6시 30분이 되자 기차의 오른편으로 펼쳐진 황무지같은 초원 너머로 발하쉬 호수가 보였다. 바이칼과 홉스골의 주변에는 산과 나무, 숲이 있지만 발하쉬의 주변은 그런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지도에서 보았던 그런 지형이 맞긴 맞는것 같다. 물론 지금 보고있는 것은 발하쉬 호수의 일부에 불과하겠지만, 막막한 황무지에서 갑자기 호수가 나타난 그런 느낌이다.

화장실에 가려는 사람들로 통로가 붐비기 시작하자 난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어느새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잠에서 깼는지 부스스한 얼굴로 주섬주섬 이불과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잠시후에 '샤리샤간'이란 이름의 역에 도착하자 내 옆에 있던, 어제 밤부터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던 아주머니가 내 팔을 톡톡치며 잘가라는 말을 하고 내렸다. 이 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리는지 이곳을 지나자 자리는 텅텅 비기 시작했다.

한가한 객차에 앉아서 나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른편으로 보였던 호수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창밖의 경치는 황량한 사막지형 뿐이다. 듬성듬성 보이는 전신주와 뭔지모를 공사를 하는 현장 그리고 작은 마을들이 종종 나타날 뿐이다.

그때 한 남자가 내 앞에 앉으며 서툰 영어로 말했다.

"내 이름은 '콰니시'야"

건장한 체격에 짧은 머리,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 이름은 준. 한국에서 왔어"

순간적으로 어리둥절 했지만 나도 내 소개를 했다. 콰니시는 영어가 서툴었고 난 카작어와 러시아어를 모르지만 우리는 '바디랭귀지'와 메모를 통해서 대화를 했다. 28살의 콰니시는 알마티에서 근무하는 군인이라고 한다. 지금은 주말을 맞아서 발하쉬에 있는 집에 가는 길이라고.

내가 발하쉬에 여행을 간다고 하자 그는 나에게 숙소 잡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한다. 한참을 달리던 기차는 '모인티'라는 역에서 멈추었다. 이 곳에서 1시간 가량 정차한 후에 다시 출발한다고 한다. 나는 콰니시와 함께 바깥으로 나왔다. 배가 고파서 뭐 먹을 것이 없나 찾아보았지만 음식점은 모두 문을 닫았고 몇 개의 매점만이 문을 열었을 뿐이다.

우리는 매점에서 빵과 '도시락' 라면을 사서 다시 객차로 돌아왔다. 러시아와 구소련 지역에서 우리나라의 도시락 라면이 많이 팔린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작은 역에서 이것을 먹게 될줄은 몰랐다. 중앙아시아에 온 이후 처음으로 먹는 라면이다. 객차 안에 있는 온수기에서 물을 받아 빵과 함께 라면을 먹었다. 콰니시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배가 불러오자 잠이 왔다. 나는 사람들이 많이 내려서 텅 비어있는 객차안의 침대에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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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하쉬 호수가의 도시, 발하쉬. ⓒ 김준희

발하쉬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콰니시는 많은 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2개를 받아 함께 들고 밖으로 내렸다. 발하쉬 역은 마치 우리나라의 작은 지방 역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그 앞에서 버스를 타고 우리는 콰니시의 집으로 향했다.

"즈드라스부이쩨(안녕하세요?)"

작은 아파트의 5층에 위치한 콰니시의 집으로 들어가자 그의 부인이 나를 맞아주며 말했다. 콰니시 부부와 그들의 아기가 함께 살고 있는 이 집은 방 하나와 거실과 욕실, 주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콰니시는 짐을 내려놓고 어딘가로 전화를 하고 그의 부인은 주방에서 달그락 거리며 뭔가를 준비 중이다. 전화통화를 마친 콰니시는 아기를 안고 내 옆으로 왔다. 갓 돌을 넘긴 아기는 까만 눈으로 낯선 이방인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콰니시와 함께 거실에 앉아 있자니 잠시 후에 한 남녀가 이 집으로 들어왔다. 콰니시는 그들을 맞이하면서 자기의 친구들 이라고 소개해 주었다. 영어를 잘하는 32살의 아스카는 콰니시와 마찬가지로 군인이며 발하쉬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굴'이라는 이름의 아스카 부인도 영어를 잘했다. 아스카 부부는 한국에서 온 여행자를 만나보고 싶어서 콰니시의 전화를 받자마자 달려왔다고 한다.

우리는 거실식탁에 모여앉아서 시끌벅적하게 식사를 했다. 어제 저녁만 해도 난 발하쉬에 도착하면 혼자서 이 낯선 곳을 헤매야 할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기서 알게 된 친구들의 환대에 둘러싸여서 마냥 즐거운 기분이다. 아스카는 자기가 호텔을 잡아주겠다며 나를 차에 태우더니 싼 숙소로 차를 몰아갔다. 낡은 아파트의 아래층을 개조한 작은 호텔에서 우선 하루를 묵기로 했다. 가격은 1500팅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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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하쉬의 친구들.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이 콰니시. 좌측이 아스카 부부. ⓒ 김준희

호텔의 안을 둘러보더니 아스카가 말했다.

"싸기는 한데 여기는 좀 시설이 안좋아. 오늘 하루만 여기서 자고 내일은 다른 곳으로 가자"

아이굴은 내일 오후에 날 초대하고 싶다고 한다. 나는 고맙다고 하며 꼭 가고 싶다고 말했다. 발하쉬에 오면서부터 좋은 일들이 계속 생겨나는 것 같다. 난 아스카에게 물었다.

"여기서 발하쉬 호수에 가려면 걸어서 얼마나 걸려?"
"여기서? 5분만 걸어가면 되"
"그렇게 가까워?"
"응. 발하쉬 도시가 발하쉬 호수나 마찬가지야."

이미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스카는 내일 12시 쯤에 자기가 오겠다며 도시 인근에 교도소가 있어서 위험하니까 밤에는 돌아다니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아스카, 아이굴 부부와 헤어지고 나서 난 근처 가게에 들러서 먹을거리를 조금 사서 숙소로 들어왔다. 어려울거라고 예상했던 발하쉬 호수 여행이 웬지 쉽게 풀리는것 같다. 호수 구경은 내일 오전에 하자.

덧붙이는 글 | 2005년 7월 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몽골-러시아(바이칼)-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키즈스탄을 배낭여행 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2005년 7월 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몽골-러시아(바이칼)-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키즈스탄을 배낭여행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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