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안위를 갖고 논 자는 누구인가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일파만파 'NSC 문건' 공개 파문

등록 2006.02.03 10:53수정 2006.02.03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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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최재천 의원이 2일 공개한 '국정상황실 문제 제기에 대한 NSC 입장'이란 제목의 문건. 이 문건에 따르면, 외교부는 2003년 10월 FOTA 5차회의 당시 미국측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지지하는 내용의 교환각서 초안을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최재천 의원이 2일 공개한 '국정상황실 문제 제기에 대한 NSC 입장'이란 제목의 문건. 이 문건에 따르면, 외교부는 2003년 10월 FOTA 5차회의 당시 미국측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지지하는 내용의 교환각서 초안을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 오마이뉴스


사태가 커지고 있다.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은 어제 문건을 추가 공개했고, 청와대는 문건 유출자 색출에 나섰다. 설전도 거듭되고 있다. 최 의원은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한 한·미 공동성명은 한·미 상호방위조약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청와대는 아니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언론도 덩달아 춤을 추고 있다. 보도량을 늘리고 보도수위를 높이고 있다. 상당수 언론이 던지는 화두는 "왜"이다. 왜 여당 의원이 문건을 폭로한 걸까? 혹시 이종석 통일부 장관 내정자 견제용일까? 왜 청와대 내부 인사는 문건을 유출했을까? '강성 반미 자주파'가 '온건 자주파'를 공격한 것일까?

언론의 이런 접근법에는 여권 내의 갈등을 권력게임으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 그래서 재미있다. 하지만 재미를 만끽하기에는 사안이 엄중하다. 신선놀음에 빠지면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법이다. 더 크고 중한 사안을 놓칠 수 있다.

사안이 엄중하다, 그런데 너무 혼란스럽다

먼저 재구성하자.

2003년 10월 : 외교부, 전략적 유연성을 지지하는 내용의 각서를 미국에 전달하고도 청와대에 보고 누락
2005년 3월 8일 : 노무현 대통령,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전략적 유연성에 반대한다는 입장 표명
2005년 4월 5일 : 국가안전보장회의, 각서 교환사실을 보고받지 못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책임은 인정하나 외교부의 보고누락이 1차적 원인이라고 보고
2005년 4월 6일 : 노무현 대통령, 정동영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을 시켜 국가안전보장회의 점검. 대미 협상팀이 독단적으로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한 데 대한 점검
2005년 12월 : 국가안전보장회의서 주한미군 차출 시 '사전협의' 해야 하며 전략적 유연성 합의는 한미 상호방위조약 개정 사안이라는 외교부 주장 일축


머리가 어지럽다. 혼란, 어깃장, 불협화음, 자중지란의 흔적이 또렷이 드러난다. 통제나 일관성의 족적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노 대통령이 공사 졸업식 발언을 한 시점은 외교부가 전략적 유연성 지지 각서를 건넨 지 17개월 뒤이다. 또 노 대통령이 정동영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에게 '점검'을 지시한 시점은 각서 전달 18개월 후이다. 상식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청와대에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뒤늦게 각서 전달 사실을 알고 상황을 원점으로 돌리기 위해 공사 졸업식 발언을 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노 대통령이 공사 졸업식 발언을 한 지 한 달이 지나서야 국정상황실의 문제제기에 대해 국가안전보장회의가 해명을 했고, 그 다음날 바로 '점검'을 시작한 사실에 견주면 시차가 맞지 않는 주장이지만, 노 대통령이 비공식 경로를 통해 문제를 인지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즉각 판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노 대통령의 공사 졸업식 발언이 원위치용 발언이었다 하더라도 문제의 심각성이 반감되는 건 아니다. 한두 달 시차만 날 뿐 대통령에 대한 보고누락은 엄연한 사실이다. 사정이 이랬는데도 청와대는 미국에 각서를 전달한 외교부 실무팀을 문책하지 않았다. 오히려 각서 전달 책임자가 영전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2004년 9월 21일, 외교부와 국방부의 용산기지 이전 협상팀이 노 대통령과 국가안전보장회의를 배제한 채 협상을 진행하려 했다며, 그 근거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의 직무감찰보고서를 공개한 바 있다.

이 사안은 각서 전달과 똑같은 절차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한 측면이 있다. 전략적 유연성 협상과 용산 미군기지 이전 협상이 별개로 진행됐다는 점이 그것이다.

'난맥'을 넘어 '부실'로 이어진 외교안보정책

주한미군이 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광역기동군으로 재편된 미군이 한반도를 들락거리기 쉽게 하기 위해서다. 평택엔 항구가, 인근의 오산엔 공군기지가 있다.

주한미군 기지 이전은 전략적 유연성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두 사안을 따로 떼어내 협상을 했다. 그뿐인가. 주한미군 기지 이전은 한국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며 이전 비용 대부분을 우리가 부담하기로 했다.

'난맥'이라는 평가에다가 '부실'이라는 평가가 얹히는 게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외교안보정책이었다. 상황이 이 정도였다면 다음에서 거론하는 사안도 능히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최 의원이 어제 공개한 2005년 4월 5일자 '국정상황실 문제제기에 대한 국가안전보장회의 입장'이란 문건을 보면, 국가안전보장회의는 보고 누락의 1차적 원인을 외교부로 돌리면서도 "통제하지 못한 책임"을 인정했다. 외교부의 전략적 유연성 지지 각서 내용을 통제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뜻으로, 이때까지만 해도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했음을 뜻한다.

그런데 이런 입장은 8개월 후 돌변한다. 최 의원이 공개한 지난해 12월 29일자 국가안전보장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이종석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은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하되 주한미군 이동 시 한국과의 사전협의 조항을 포함시키자는 외교부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 결과 지난 1월 19일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한미공동성명이 나왔다.

청와대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문건유출자 색출이 아니다

a 최재천 의원의 연이은 문건 공개 파문이 커지고 있다. 왼쪽부터 최 의원, 이종석 통일부장관 내정자,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최재천 의원의 연이은 문건 공개 파문이 커지고 있다. 왼쪽부터 최 의원, 이종석 통일부장관 내정자,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 오마이뉴스

정리하자.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외교안보정책의 ABC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산하 관련 부처는 독단으로 일을 처리했다. 그런데도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은 상당 기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게 참여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의 실상이요, 외교안보라인의 실태다.

의혹과 비판은 날로 커지는데 청와대는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최 의원이 문건을 공개하면 그 때 가서야 "한 측면만 부각됐다"는 식으로 분리 대응하고 있다.

물론 최 의원이 공개한 문건은 국가안전보장회의 문서더미에서 뽑아낸 극히 일부분의 문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한 측면만 부각됐다"는 청와대 해명이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극히 일부분의 문건"이 던지는 충격파는 크고, 그 문건들로 인해 구성되는 정황은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 '전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최소한 2003년 10월의 각서 교환부터 올해 1월 19일 한미공동성명까지의 정책 논의·결정과정이 일목요연하게 공개돼야 한다.

"한 측면만 부각"됐는지 여부는 전체를 본 사람만이 판단할 수 있다. '전체'를 내보이지 않고 무조건 "한 측면만 부각됐다"고 주장하는 건 독선이다. 판단 근거를 제공하지 않은 채 자신의 판단 결과만을 강조하는 건 "무조건 믿어라"고 윽박지르는 것과 같다.

사안이 외교안보 문제이므로 '전체'를 공개하는 건 어렵고, 그러니 일단 믿어달라고는 말하지 말자. 사안이 워낙 엄중하고, 의혹은 이미 커질 대로 커졌다. 되돌리기가 어렵게 됐다.

청와대가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문건 유출자를 색출하는 게 아니다. 국민의 의혹과 궁금증을 말끔히 해소해주는 게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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