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oli 고향
"선상님, 우리덜 눈싸움 헐라요."
"나가 놀아라."
"야~."
선생님은 벽지학교에 근무하면서 가산점이 붙어, 새학년이 시작되기 전에 교감으로 승진하여 광주로 가실 분이었다. 한편으론 기대가 대단했을 게고 어디로 떨어질지 몰라 마음 한 구석은 뒤숭숭했을지도 모른다.
유난히 목울대가 톡 튀어나온 3학년 담임선생님은 첫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출석부를 챙겨 도로 교무실로 가셨다. 탐구생활과 방학숙제 검사도 마쳤으니 우린 홀가분했다. 우린 며칠 있으면 봄방학을 맞아 4학년으로 올라가니 공부는 늘 뒷전이었고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학교를 공부하러 다닌다기보다 시간 때우러, 정확히 놀러 다녔다고 하는 게 맞다.
선생님은 거의 1년을 아이들이 놀자고 한마디만 하면 교무실이나 우리 교실에서 가끔 한 번 창 밖을 내다볼 뿐 두 말 않고 허락하셨다. 시골아이들과 노닥거리기를 좋아하는 선생님과의 만남은 더없는 환상적 결합이었다. 과목마다 정해진 시간을 무시하고 운동장에서 뛰어놀도록 했으니 아이들에겐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러다가 심심하면 학생을 불러서 책을 읽게 했다. 그게 공부였다.
시골마을에 밤새 눈이 내리더니 학교 갈 때도 그칠 줄 몰랐다. 아이들은 오늘 뭘 하며 놀까 머리 아프게 궁리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학교 가는 길에서부터 눈싸움이 시작되어 교실에 도착했을 때는 옷이 온통 젖어 있어 장작난로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옷과 양말을 말렸다.
절반은 덧버선을 신고 밖과 교실을 오가며 눈을 던져 초를 칠해 광을 낸 교실바닥을 어지럽혔다. 이런 날은 그걸 닦아내야 하는 당번만 고생한다. 이런 날에 당번이 걸리면 악다구니를 써가며 말려도 도통 듣는 아이가 없으니 골탕을 넘어 환장할 노릇이다.
운동장엔 저학년 중심으로 곳곳에서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몇몇은 교실 벽에 분필로 원을 조그맣게 그려 뭉친 눈을 원 안에 집어넣는 놀이를 하고 있다. 눈 위에서 뒹굴기도 하고 나무를 흔들어 뭉텅이 눈을 맞도록 장난질을 일삼는다.
"땡땡땡."
아이들은 종소리에도 아랑곳 않다가 마지못해 들어간다.
"차렷 경례."
"선상님 안녕하신그라우?"
"그려, 별일 없었쟈?"
"예. 근디요 아직까장 아새끼덜이 들오지 않았당께요."
"욘녀려새끼들…. 아직도 눈싸움 허고 있냐?"
"평지애기들 셋이서 은행나무 앞에서 놀고 있어라우."
"삼순이 얼른 가서 데려오니라."
"알았당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