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까지 넣어 맹렬히 싸웠던 눈싸움

눈싸움 하러 학교에 다녔던 천진한 아이들과 한통속 선생님

등록 2006.02.08 16:49수정 2006.02.08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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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goli 고향

"선상님, 우리덜 눈싸움 헐라요."
"나가 놀아라."
"야~."


선생님은 벽지학교에 근무하면서 가산점이 붙어, 새학년이 시작되기 전에 교감으로 승진하여 광주로 가실 분이었다. 한편으론 기대가 대단했을 게고 어디로 떨어질지 몰라 마음 한 구석은 뒤숭숭했을지도 모른다.

유난히 목울대가 톡 튀어나온 3학년 담임선생님은 첫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출석부를 챙겨 도로 교무실로 가셨다. 탐구생활과 방학숙제 검사도 마쳤으니 우린 홀가분했다. 우린 며칠 있으면 봄방학을 맞아 4학년으로 올라가니 공부는 늘 뒷전이었고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학교를 공부하러 다닌다기보다 시간 때우러, 정확히 놀러 다녔다고 하는 게 맞다.

선생님은 거의 1년을 아이들이 놀자고 한마디만 하면 교무실이나 우리 교실에서 가끔 한 번 창 밖을 내다볼 뿐 두 말 않고 허락하셨다. 시골아이들과 노닥거리기를 좋아하는 선생님과의 만남은 더없는 환상적 결합이었다. 과목마다 정해진 시간을 무시하고 운동장에서 뛰어놀도록 했으니 아이들에겐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러다가 심심하면 학생을 불러서 책을 읽게 했다. 그게 공부였다.

시골마을에 밤새 눈이 내리더니 학교 갈 때도 그칠 줄 몰랐다. 아이들은 오늘 뭘 하며 놀까 머리 아프게 궁리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학교 가는 길에서부터 눈싸움이 시작되어 교실에 도착했을 때는 옷이 온통 젖어 있어 장작난로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옷과 양말을 말렸다.

절반은 덧버선을 신고 밖과 교실을 오가며 눈을 던져 초를 칠해 광을 낸 교실바닥을 어지럽혔다. 이런 날은 그걸 닦아내야 하는 당번만 고생한다. 이런 날에 당번이 걸리면 악다구니를 써가며 말려도 도통 듣는 아이가 없으니 골탕을 넘어 환장할 노릇이다.


운동장엔 저학년 중심으로 곳곳에서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몇몇은 교실 벽에 분필로 원을 조그맣게 그려 뭉친 눈을 원 안에 집어넣는 놀이를 하고 있다. 눈 위에서 뒹굴기도 하고 나무를 흔들어 뭉텅이 눈을 맞도록 장난질을 일삼는다.

"땡땡땡."


아이들은 종소리에도 아랑곳 않다가 마지못해 들어간다.

"차렷 경례."
"선상님 안녕하신그라우?"

"그려, 별일 없었쟈?"
"예. 근디요 아직까장 아새끼덜이 들오지 않았당께요."

"욘녀려새끼들…. 아직도 눈싸움 허고 있냐?"
"평지애기들 셋이서 은행나무 앞에서 놀고 있어라우."

"삼순이 얼른 가서 데려오니라."
"알았당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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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goli 고향

종소리가 울리지 않았다면 다들 정신을 놓고 눈싸움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개중에 철없는 아이들 몇몇이 남아 있던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삼순이와 그의 오빠 창균이, 기중이, 병규가 헉헉거리며 차례대로 들어왔다. 늘 별 야단을 맞지 않아 당당히 서서 들어오는 아이들은 온기를 쐬자 볼이 발갛다 못해 눈밭 홍시보다 더 빨갛다.

"그럼 다 왔쟈?"
"예-"

"국어책 펴도록."
"슨생니-임."

"왜 해섭이?"
"공부도 다 했응께 눈싸움 하먼 안 되끄라우?"

"나가 놀아."
"야~."

그 다음 말은 누구도 듣지 못했다. 먼저 나가려고 신발을 들고 있었던 놈들은 벌써 빠져나갔지만 신발장 주변은 이내 아수라장이 되었다. 뒤엉켜서 고무신을 찾는 아이들로 북새통이다.

"야, 양지가 한편 헐 텡께 니기 마을 다 모타 봐."
"기연치 니기들만 한편 묵을라고 허냐?"

"얌마새꺄 숫자가 안 되잖녀."
"글면 고렇게 허자."

아직 마을 대항의 뿌리는 남아 있었다. 양편으로 나누니 스물한 명씩이었다. 운동장엔 누군가 눈사람을 여러 개 만들어 놓았다. 그걸 가만 둘 리가 없다. 두 패로 나뉘어 사르르 녹으며 오는 춘설을 뭉치느라 여념이 없다. 각 진영에 열두어 개씩을 쌓아두고 호주머니에 두 개씩 넣고 손에도 눈 뭉치가 들려 있다.

"야, 넘어오지 말고 똑바로 서 있어. 한나 둘 서이 하면 시작하는 거다."

7~8m 떨어져 신사답게 시합을 시작하는 것까지는 좋다.

"한나 두울 셋!"
"야~."

a 백아산 아래 초등학교가 있었다

백아산 아래 초등학교가 있었다 ⓒ sigoli 고향

하늘하늘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눈 덩이가 쉬지 않고 상대편을 향해 날아갔다. 처음엔 대개 '볼~'이다. 하나 둘 눈에 맞아간다. 머리를 숙여 살짝 피했다가 던지기를 반복했다.

직구를 던지는 최동원처럼 위에서 내리꽂는 키 큰 성호와 병용이 그리고 병주가 있으니 우리 쪽으로 급격히 전세가 기울게 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여기에 나뭇짐 나르던 힘이 가장 셌던 육남이까지 있으니 상대편 기가 질릴 만한 상황이 펼쳐지는 건 시간문제다.

두꺼운 윗옷에 맞기도 하고 바짓가랑이에 맞기도 한다. 몇 번 던지다가 곧 금은 사라졌다. 맘대로 뛰어다니며 육박전 태세로 바뀌었다. 사람이 몰려 있는 곳에 집중하여 투척하다가 우리 마을 사내들은 그 중에서 제일 예쁜 일순이와 소나기에 나오는 소녀처럼 창백한 서운이, 해숙이를 공격 목표로 삼았다.

"야 새끼덜아 왜 그려? 니기덜 슨생님한테 일러분다."
"야 일를라믄 일러라. 한나도 안 무섭당께."

2차 성징이 고개를 들 즈음이었으니 남자애들이 오히려 약한 여자아이들을 돌보기는커녕 어떻게든 관심 한번 끌어 눈에 들어보려고 하는 짓이다.

"허지마야."

처음엔 눈을 던지다가 아예 서넛이 합작을 하여 눈을 퍼부을 참이다. 뭉치지도 않고 바닥에 있는 눈을 대충 두 손에 모아 얼굴에 비빈다. 그뿐이 아니다. 목덜미 사이로 밀어 넣기까지 한다. 일순이가 바닥에 엎드렸는데도 그치지 않았다. 다른 아이였더라면 벌써 울음보를 터트려 교무실로 갔을지도 모르지만 선생님 매까지 부러뜨린 아이가 아니던가.

"참말로 왜 그냐? 잉? 그만 허랑께. 자꾸 구찮게 허면 울 아부지한테 일러 불거다. 긍께 고만해."

머리가 헝클어진 채 나뒹군 아이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았다.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은 운동장을 빠져나가 교실 뒤쪽에 있는 관사 근처로 피신하였다. 잠시 뒤 한 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렸지만 눈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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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goli 고향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운동장이 질컥거리도록 눈이 슬슬 녹기 시작한다. 이 땐 눈이 훨씬 더 잘 뭉쳐져 그냥 움치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 때는 더 단단하여 멀리까지 던질 수도 있다. 물까지 질질 흐르지만 힘들이지 않고도 화단에서 무기를 만들어 그 때 그 때 댈 수 있다. 교무실만 빼고 교실과 화장실, 논과 밭을 오가며 융단폭격을 한다.

"야, 째까만 쉬었다 허면 안 되겄냐?"
"뭔 소리 얌마. 항복을 하던가 해야지."

"우린 여자애들이 다 숨어각고 숫자가 더 적당께."
"콧물 없는 소리 하덜 말어야."

시간이 지나자 학교는 더 이상 배움의 전당이 아니었다. 웬만한 눈 덩어리로는 성에 차지 않아 지루할 때가 되었고 배도 고파왔다. 여자애들은 바람을 피해 눈을 쓸고는 핀치기를 하고 있었다.

"야 색끼들아 매운 맛 좀 볼텨?"

'쒱~~~'

반대편의 대장 격이었던 상복이가 보통보다 더 크게 눈을 뭉쳐 병용이에게 힘껏 직격탄을 날렸다.

"앗야. 워매 이것이 뭤이여?"
"왜 그냐 병용아?"

병용이 이마에서 빨간 피가 주루룩 흘러내렸다. 때로 바구니 터트리기에서 돌을 주워 던지기도 했지만 사람에게 돌을 던지다니. 눈 속에 돌멩이를 넣어서 어떻게든 전세를 뒤집어볼 생각이었단다.

결국 돌을 던진 아이는 교무실로 불려가 학교를 파할 때까지 손들고 벌을 서 있었던 걸로 모자라 아이들에게 등짝을 발로 두들겨 맞았다. 다친 아이는 관사 겸 양호실에서 노란 콩 조각이 들어 있는 큼직한 빵 하나를 먹으면서 '아까쟁끼'를 바르는 특혜를 누렸다.

세 시간 동안 이어질 것 같던 눈싸움은 불미스런 사고로 끝이 났다. 그때 난로 위에서 따끈하게 데워진 밥이 어찌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눈싸움은 점심을 먹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오후 1시 무렵 집으로 오는 길엔 같은 마을이지만 우리보다 오리가 먼 방촌 여자애들을 눈밭에 처박기로 했지만 논두렁길로 도망치는 바람에 허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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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goli 고향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시골아이 고향(www.sigli.com)을 만들고 있다. 실감나는 눈싸움 장면이 없어 아쉽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김규환 기자는 시골아이 고향(www.sigli.com)을 만들고 있다. 실감나는 눈싸움 장면이 없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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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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