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에 붙은 딱지를 벗겨주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게 빗어주면 값을 더 쳐주기도 했다. 쇠빗이 녹슬어 있지만 이걸 만나니 참 반갑다.sigoli 고향
가보 1호는 소다. 소 막부터 치우고 꿀꿀이를 깔끔하게 자도록 돕는 게 순서였다. 장화를 신었던 건 한참 뒤였으니 그냥 고무신 차림이다. 질러놓은 빗장을 풀고 고삐를 풀어 마당으로 끌고나오자 오랜만의 외출이라 나대기 일쑤다.
감나무 아래에 묶어 놓고는 마당에 있는 망옷자리 즉, 퇴비, 두엄자리를 잡고 쇠스랑으로 다소 마른 짚을 콕 찍어 꺼낸다. 문턱을 넘어 질질 끌고 가서는 낙엽이 쌓인 자리에 휙 던져 올린다. 묏자리를 잡아 뗏장을 한 켜 한 켜 올릴 모양으로 널찍하게 시작하였다.
겉을 대강 걷어내자 이젠 소똥과 짚이 오줌과 똥을 한껏 머금고 약간은 썩은 상태로 단단히 굳어 있다. 그 때 아버지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 철사도막이 발견되었다.
"호랭이 물어갈 철사토막이 왜 있다냐? 큰일 날 뻔 했구먼."
초식동물이 간혹 쇠토막을 먹었다가 창자가 터져 죽기도 하는데 부패한 사료를 많이 먹었다가 고창증(鼓脹症)에 걸려 죽는 일 다음으로 흔하고 위험한 게 철사다. 아이들이 더러 옷핀을 먹고도 밖으로 배출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도록 되새김질을 하는 소에겐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냄새도 발효가 한참이나 진행되었는지라 김을 폴폴 내며 다소 거뭇하다. 몽근겨(거칠지 않도록 가늘게 잘 빻아 벼 껍질과 쌀 겉이 섞인 고운 겨. 왕겨에 대비되는 말로 소나 염소, 돼지 따위 가축에게 먹인다)도 뒤섞여 있다.
끌어내기를 거듭하자 이젠 거의 떡진 상태다. 한 꺼풀 더 벗겨내자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가마솥을 열 때처럼 확 얼굴을 감싼다. 이제 아버지는 아예 신발을 벗고 긴 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고 다닌다. 옷과 발목까지 묻을 뿐만 아니라 발효열에 의해 따끈따끈하기 때문이다.
절반 가까이 치웠을까 싶을 땐 벌써 웬만한 나무더미 높이로 올라가 있다. 툭툭 찍어 퇴비 무더기를 모아 온 힘을 다해 끌어내니 몸에서도 땀이 뻘뻘 난다. 오전 10시도 되지 않았는데 마루에 웃옷까지 벗어놓고 계속 하셨다.
"어이, 출출 헌디."
"한 잔 잡숫고 허실라요? 막둥아 주막에 좀 댕겨오니라. 한눈팔지 말고 후딱 와야 헌다 알았제? 니기 아부지 시장허신께."
"알았어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