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가 싫으면 나에게" 정치권 왕따게임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이합집산

등록 2006.02.21 10:49수정 2006.02.21 10:58
0
원고료로 응원
복잡해지고 있다. '연대' 또는 '통합'은 열린우리당이 상표 출원한 단어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한나라당도 나서고 있다. '범자유민주주의세력 대연합'을 추진한다고 한다.

한나라당은 어제 자민련과의 합당을 선언한 데 이어 민주당, 국민중심당과의 선거 공조, 즉 연합공천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일보>의 보도다.

이재오 한나라당 대표의 말에 따르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지켜온 정치세력이 굳게 뭉쳐서 지방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취지 아래 "민주당, 국민중심당 관계자들과 접촉해 논의하고 있고 자민련 통합도 대연합의 일환"이라고 한다.

이재오 대표는 "논의 중"이라고 했지만 사실관계는 좀 더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은 몰라도 민주당 입장에서 선거공조는 호남에서의 역풍이 불 것을 염려해야 하는 카드다.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아니다. 그래서 이재오 대표의 '구상'이 과장전달된 것인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인되는 건 있다. 자민련과의 합당, 그리고 최소한 '구상' 수준은 확인된 민주당, 국민중심당과의 선거공조 움직임에는 공통점이 있다. '반열린우리당 전선' 구축이다. 열린우리당이 추진하는 '반한나라당 전선' 구축에 대한 맞불카드다.

'반열린우리당'과 '반한나라당'의 각축전

이합집산 움직임은 어지럽고 복잡하지만 구도는 간명해지고 있다. '반열린우리당 전선'인가, '반한나라당 전선'인가의 문제다. 양대 정당이 점이지대의 세력을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 지방선거 필승 카드로 삐져나왔다는 건 상식이다. 더 나아가 대선을 염두에 둔 판짜기란 성격도 갖고 있다.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 모두 절박성과 필요성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일단 이기고 봐야 하는 게 선거의 속성 아니던가. 하지만 그건 그들의 얘기다. 양대 정당의 얘기일 뿐이다. 국민 입장에선 달리 봐야 할 게 있다.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반열린우리당 전선'은 지역 연합이다. 동서분할 구도를 깨면서 서쪽 지역에서마저 열린우리당의 존립 기반을 약화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의석이 하나 밖에 없는 자민련과 합당을 선언한 이유도 그것이다. 의석 하나보다 더 중요한 충청지역의 자민련 조직을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그래서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반열린우리당 전선'은 퇴행적이다.

열린우리당이 추진하는 '반한나라당 전선'은 실체가 불분명하다. 임종석 의원의 중도개혁세력 통합론이나 염동연 사무총장의 창조적 파괴를 통한 통합 주장은 민주당과의 합당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서쪽 지역의 기반을 복원하자는 얘기다. 그런 점에선 한나라당의 지역연합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이 주장은 당 입장으로 채택된 게 아니다. 전당대회 기간 내내 범양심세력 연대를 주장한 김근태 최고위원의 경우는 이들과 다르다. 김근태 최고위원은 민주당과의 통합에 대해 수도권에서 역풍이 불 수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김근태 최고위원이 추진하는 연대는 지역 연합이 아니라 인물 연합이다.

정동영 의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범양심세력 연대를 주장한 김근태 최고위원과는 달리 정동영 의장은 미래평화개혁세력 연대를 주장하고 있지만 발걸음은 다르지 않다. 의장이 되자마자 고건 전 총리, 강금실 전 법무장관과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지만 민주당과의 통합은 말하고 있지 않다.

한나라당의 '퇴행적 지역연합' VS. 열린우리당의 '잡탕식 인물연합'

따라서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추진하고 있는 '반한나라당 전선'을 지역 연합으로 볼 수는 없다. 말 그대로 한나라당과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연합 정도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열린우리당의 '반한나라당 전선'이 뚜렷한 정체성을 띠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나라당을 반대한다는, 소극적이고 피동적인 차원의 공통분모만 있을 뿐 국민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할 비전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그 단적인 예가 고건 전 총리다. 열린우리당 스스로 '반한나라당 전선'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로 평가하는 고건 전 총리의 실체와 비전이 뭔지는 불분명하다. 본인은 '중도 실용'을 주장하지만 이는 이명박 서울시장도 주장하는 것이다. 스펙트럼이 넓다 보니 정체성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국민들이 알아서 해석해야 할 판이다.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지역 연합이 퇴행적이라면 열린우리당이 구상하는 인물 연합은 잡탕식이다.

양대 정당은 "그래도 좋다"고 한다. 선거는 어차피 차선의 게임이라며 선택을 강요한다. '이러니 나에게 오라'가 아니라 '쟤가 싫으면 나에게 오라'다. '비전'에 대한 믿음을 북돋우는 게 아니라 '안티'의 정서를 자극하는 게 작금의 선거판이다. '왕따 게임'이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4. 4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5. 5 6개 읍면 관통 345kV 송전선로, 근데 주민들은 모른다 6개 읍면 관통 345kV 송전선로, 근데 주민들은 모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