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전 시작한 몽골기병, 그러나 시간이 없다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본격 시험대 오른 정동영, 그의 선택은?

등록 2006.02.20 09:45수정 2006.02.2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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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표정이 밝지 않다. 오늘자 조간에 실린 그의 표정이 그렇다는 얘기다. <한겨레>가 1면 머리에 실은 정 의장 표정은 비장하다 못해 살벌한 느낌을 줄 정도다.

새로 당 의장에 선출됐으니 활짝 웃는 얼굴을 실어줄 만도 했을 텐데 조간은 왜 인심을 쓰지 않았을까? 아마도 정 의장의 앞날이 순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대다수 조간은 첩첩산중인 그의 처지와,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운명이 갈릴 그의 앞날을 냉정하게 짚었다. 환호보다는 근심이 앞설 수밖에 없는 게 그의 처지라는 얘기다.

그럼 정 의장의 근심 중에 맨 앞자리에 놓일 근심은 뭘까? 아마도 시간 부족일 것이다.

정동영, 그의 제1 근심은 '시간부족'

정 의장은 경선기간 내내 '자강론'을 폈다. 범양심세력 연대를 주장하는 김근태 후보에 맞서 먼저 당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자강'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 곳을 손 봐야 한다. 당의 체질을 바꾸고, 당의 정책노선을 바로 잡고, 청와대와의 관계도 새로 세워야 한다. 일이 많다 보니 시간을 넉넉히 잡아야 하건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들인 공만큼 효과가 금방 나타나는 게 아닌데 지방선거는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게 문제다. 시간이 없다. 지방선거 전에 '자강'을 이뤄 당 지지율을 끌어올리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일까? 정 의장은 경선과정에서 '몽골기병론'을 다시 꺼내들었다. 신속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1차 '몽골기병론'을 펼 때와 지금은 당 사정이 많이 다르다. 1차 때는 소속의원 40여명의 '미니 여당'이었지만 지금은 1차 때보다 의원 수가 100명 넘게 늘어났다. 덩치가 커지면 행동은 굼뜨게 마련이다.

환경도 많이 다르다. 1차 때는 참여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였지만, 지금은 4년차에 접어든 시점이다. 국민이 정부여당에게 들이댈 잣대의 가짓수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아졌다. 1차 '몽골기병'의 무대가 초원이었다면 2차 '몽골기병'의 전장은 산악이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는 없다. 지방선거를 돌파하지 못하면 '끝'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눈 여겨 볼 뉴스가 있다. 정 의장이 당선 직후 고건 전 총리와 강금실 전 법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협력을 논의했다는 뉴스다. 고 전 총리와는 일주일 후쯤에 직접 만나기로 했고, 강 전 장관에겐 측근을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정 의장이 외부 인사에 신경을 쓰는 이유가 뭔지는 확실치 않다. 범양심세력 연대론을 폈던 김근태 최고위원에 대한 '예의' 차원인지, 아니면 정 의장도 '살 길'을 외부 인사에서 찾기 시작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예상외로 빠르다는 점이다. 정 의장이 편 '자강론'의 핵심은 단계론이었다. 먼저 당을 강화시킨 뒤에 외부인사와의 연대를 모색해 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정 의장의 외부인사 '즉각 접촉'은 단계론에서 병행론으로 노선을 수정했다는 해석을 낳을 수도 있다.

이보다 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있다.

정 의장은 어제 대구를 전격 방문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정면 비판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아성에서, 박근혜 대표의 정치적 모태를 건드린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정 의장은 의장 수락연설을 통해 "혈세를 낭비한 자치단체와 단체장에 대해 국회가 국정조사권을 발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의 윤상림·황우석 국정조사 요구에 맞서 지자체 국정조사 카드를 꺼내 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진의 노선에 힘을 실은 것이다.

취임하자 한나라부터 공격... 자강의 기본은 '전열정비'

이 두 사례가 뜻하는 바는 분명하다. 정 의장은 한나라당과의 각을 날카롭게 세우기로 했다.

그럴 수도 있다. '자강'의 기본인 '전열 정비'를 이뤄내는 효과적인 방법은 긴장도를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한나라당과 각을 세운다고 해서 국민 지지가 회복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부작용이 클 수도 있다.

정 의장도 적극 동의한 지자체 국정조사는 '맞불 카드'다. 그 자체로서 정쟁의 소지를 안고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국정조사 대상으로 꼽은 26개 지자체는 감사원이 고발한 곳으로, 검찰 수사가 예정돼 있다. 검찰이 수사를 하기도 전에 국회가 먼저 나서 국정조사를 한다고 하면 국민이 순순히 동의할까? 마찬가지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윤상림·황우석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추진하는 야당과 한 두름으로 묶여 지방선거용 정쟁을 벌인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리 봐도 그렇고 저리 봐도 그렇다. 정 의장이 시험대에 오른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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