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3년, 설거지는 했지만 비전이 없었다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선택과 집중이 사라진 공허한 경제정책

등록 2006.02.24 10:39수정 2006.02.2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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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이 참여정부를 야박하게 평가하는 이유는 당장의 고통을 달게 받아들일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사진은 지난 1월 25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한 노무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이종호

'참여정부 3년'에 대한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모든 언론이 다양한 방법으로 지나온 3년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다. 평가는 좋지 않다. <문화일보>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여론조사 결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22.9%로 밑바닥을 기록했다는 게 그 방증이다.

야박한 평가가 다수이지만 눈에 띄는 호평도 있다.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았다는 평가다.

<한국일보>는 기업 및 금융기관 최고경영자 33명과 민간경제연구소 대표 5명 등 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참여정부가 지난 3년간 가장 잘 선택한 경제정책 가운데 하나로 '경기부양책 억제'를 꼽았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일부학자들 사이에선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중 가장 훌륭한 것으로, 이전 정부와 달리 '단기 부양책'의 유혹을 떨친 것을 들기도 한다"고 보도했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도 어제 정례 브리핑을 갖고 "참여정부는 … 무리한 경기부양책보다는 중장기적 관점에 입각해 구조적인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데 중점을 둬왔다"고 말했다.

단기부양책 유혹 뿌리친 건 잘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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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참여정부 출범 3주년을 맞아 정례브리핑을 한 한덕수 재정경제부 장관 겸 부총리. ⓒ 재정경제부

자타를 막론하고 참여정부의 경기부양책 억제를 훌륭한 정책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참여정부가 출범할 때 우리 경제는 세 개의 거품 때문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부동산·벤처·카드 거품이 그것이다. 국민의 정부가 경기부양 차원에서 마구잡이로 벤처기업을 지원하고, 무차별적으로 카드를 발급하는 걸 용인하고, 막무가내로 집값 올리는 걸 지켜본 결과 내수는 위축됐고 금융시장엔 먹구름이 끼어있었다. 그 뿐인가? 북핵 벽에 가로막혀 한국 경제의 대외신인도는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런 '대란' 상황 속에서 출범했으면서도 참여정부는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았다. '설거지 정부'를 자임한 것이다.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고 평가해야 옳다. 거품 붕괴 여파로 10년 불황을 겪은 일본의 경우를 참조하면 참여정부는 물론 후임 정부의 지지도까지 제물로 바쳐야 할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손가락으로 가야 할 곳을 가리켰을 뿐 걸음을 떼진 않았다. 이게 문제였다.

한덕수 부총리는 "중장기적인 관점에 입각해 구조적인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데 중점을 둬왔다"고 자평했지만 이의를 제기할 여지는 많다. 참여정부가 부양과 성장을 포기하고 구조개선에 치중하고자 했다면 칼을 들어야 했다. 경제구조를 뒤트는 요소를 찾아 도려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몇가지 예를 들자.
국회 재정경제위는 어제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금융산업구조개선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초과 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기로 했지만 2년간 유예기간을 줬다. 당초 개정안보다 후퇴했다는 비난을 샀던 열린우리당의 권고적 당론에서 더 후퇴한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권고적 당론에는 2년 유예기간을 준다는 규정이 없었다.

금산법 후퇴시키고, 출총제 완화한다 하고... 앞으로 나아간 건?

참여정부 금융정책의 수장인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소신임을 내세워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는 정책을 장기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했다. 자산총액 6조원인 적용기준을 완화시킨다는 계획이다.

한국경제의 구조를 틀지우는 금산문제, 재벌문제에 대한 최근의 동향은 이렇다. 좋게 봐야 어정쩡한 태도요, 나쁘게 보면 뒷걸음 치고 있는 형국이다. 설거지를 하기로 작정했다면 기름기를 말끔히 씻어내야 옳을 것을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더 있다. '경제반 정치반' 사안 두 가지만 짚자.

검찰은 X파일에 연루된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 관계자 전원에 대해 무혐의 처리했고, 회사 돈을 빼돌려 가족 생계비로 쓴 두산그룹 총수 일가에 대해서는 불구속 처리했다.

대상그룹 임창욱 명예회장에 대한 봐주기 수사로 문제가 됐던 이종백 서울중앙지검장을 사실상 '좌천'해야 한다는 천정배 법무장관의 의지가 최종 관철되긴 했지만 인사 과정에서 청와대는 이종백 현 부산고검장을 두둔했다는 언론 보도도 있다.

이제 정리하자. 선택을 했으면 집중했어야 한다. 경기부양을 포기하고 구조개선에 집중하고자 했다면 내쳐 달렸어야 한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선택일수록 결연함이 커지는 법이거늘 참여정부는 그렇지 않았다. 설거지를 하려 했지만 자세는 어정쩡했다.

선택과 집중이 병행되지 않는 포기는 무기력하고 무책임하다. 국민들이 참여정부를 야박하게 평가하는 이유가, 왜 먹고 살 길을 만들어주지 않느냐는 불만 때문만은 아니다. 당장의 고통을 달게 받아들일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데 실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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