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 다로 발언은 '히로히토 일병 구하기'

A급 전범 분사는 일왕의 전쟁 책임 은폐하려는 것

등록 2006.03.10 10:35수정 2006.03.1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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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8일 나고야 시내의 한 강연에서 국왕(소위 '천황')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주장했다가 국제적 비판을 받은 바 있는 아소 다로 일본 외무장관이, 이번에는 A급 전범 분사(分祀)를 시사하는 발언으로 또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a 아소 다로 일본 외무장관.

아소 다로 일본 외무장관. ⓒ 일본 외무부 홈페이지

그는 3월 8일 일본기자클럽 회견에서 "야스쿠니는 기본적으로 전사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인데, 전사자가 아닌 분에게도 제사를 지내고 있다"며 A급 전범 분사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여기서 "전사자가 아닌 분"이라는 표현은 A급 전범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다른 국가나 일본 국내에서 비판을 받지 않고, 천황과 총리도 참배할 수 있도록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기서 분사(分祀)라는 것은, 야스쿠니신사에 안치되어 있는 A급 전범 14명의 위패를 분리[分]하여 다른 국립시설에서 별도의 추모제[祀]를 지내는 것을 가리킨다.

1월 28일 나고야 발언의 경우 일본정부 지도부와 사전 교감을 거치지 않은 채로 이루어지는 바람에 일종의 자충수가 되었지만, 이번 발언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의 숙고를 거친 뒤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월 28일 발언과 3월 8일 발언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점을 알 수 있다. 우선 '목적'이라는 측면에서는 두 발언이 동일하다. 두 발언 모두 '국왕이 야스쿠니 참배를 해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밝힌 것이라는 점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지난번의 경우에는 뚜렷한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이번 발언의 경우에는 국왕의 참배를 위한 사전 단계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야스쿠니신사에서 A급 전범을 분사하면 국왕의 참배가 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방법론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니까 야스쿠니신사에서 A급 전범의 위패만 제거되면 국왕이나 총리가 그곳에서 참배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내비친 것이다.


국왕 참배의 방법론 제시한 것

그럼, A급 전범의 위패가 제거되는 것과, 국왕이 그곳에서 자유롭게 참배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 일본의 전쟁책임에 관해 살펴보아야 한다.


오늘날 남북한·중국은 끊임없이 일본의 과거사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 내 일부 보수세력과 일본인들은 "이미 여러 번 사과했는데, 왜 자꾸 사과를 요구하느냐?"며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주변국들이 끊임없이 사과를 요구하는 데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일본의 사과가 진심이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과하는 사람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아느냐?"며 반문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일본인들의 사과가 거짓이라는 점은 그들의 행위에서 잘 드러난다.

그 행위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들이 최종적 전쟁책임자인 히로히토 전 국왕을 심판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갖고 있었다면, 그들은 지난 60년 동안 히로히토 전 국왕을 어떻게든 심판하고 청산하려 했을 것이다. 물론 미국이 히로히토 전 국왕을 비호한 측면도 있지만, 어쨌든 간에 그를 심판하지 않은 최종적 책임은 일본 국민에게 있는 것이다.

a 히로히토 전 국왕과 왕비

히로히토 전 국왕과 왕비 ⓒ 일본 궁내청 홈페이지

이 같은 일본의 몰염치 때문에 주변국들은 끊임없이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고 또 야스쿠니 참배를 반대하는 것이다. 과거의 범죄를 제대로 청산하지도 않으면서 '군국주의와 전쟁을 미화하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일본이, 주변국들 입장에서는 의심쩍게 보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야스쿠니 문제는 일본의 국제적 행보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야스쿠니 문제는 주변국들이 일본을 견제하는 '호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 우익은 야스쿠니 참배를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정당성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또 훗날 일본이 군사적으로 대외침략을 감행할 때에도 그곳이 국민통합을 위한 성전(聖殿)의 기능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우익은 야스쿠니를 포기할 수 없다

과거에 낙방했더라도 관직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 없는 선비는 결코 서책을 찢어버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서책이 있어야만 몇 년 뒤에 다시 응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야스쿠니라는 '서책'를 버릴 수 없는 이유도 동일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나 아소 다로 외무장관 등이 야스쿠니 참배에 집착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 우익은 어떻게든 야스쿠니 참배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중국측의 공격에 역공을 가하기로 하였다. 중국측은 "일본 총리가 A급 전범이 안치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피해국 국민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이라는 비판논리를 펼쳐 왔다. 한국정부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논리에 동조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측 논리를 뒤집어 보면, A급 전범만 분사하면 국왕이나 총리가 야스쿠니신사에서 참배해도 된다는 논리가 된다. 그래서 일부 일본 우익세력은 중국측의 비판논리를 역이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측 논리 역이용하여 야스쿠니 참배 관철 시도

처음부터 야스쿠니신사 자체의 문제점을 부각시키지 않은 중국정부의 논리에는 이러한 함정이 있었던 것이다. 일본 총리가 그곳에서 참배하려 하는 이유는 비단 A급 전범 때문만이 아니라 그곳에 안치된 모든 '전범' 때문인데, 중국정부의 공격 포인트는 A급 전범에만 국한되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일본에서는 A급 전범 분사를 지지하는 논리가 상당한 힘을 얻고 있다. 그러한 흐름 속에는, 1985년 8월 15일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한 바 있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등도 포함된다. 아소 다로 외무장관의 3월 8일자 발언도 나카소네 전 총리의 발언에 대한 동조 발언인 것이다.

그들이 A급 전범 분사를 지지하는 의도를 살펴보면 이러하다. 과거 전쟁 당시의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A급 전범에게 전쟁책임을 뒤집어씌운 뒤에 그들을 야스쿠니신사에서 분사하면, 크게 2가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는 중국 등이 더는 야스쿠니 참배를 문제 삼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점이고, 또 한 가지는 히로히토 전 국왕이 이번 기회에 전쟁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주된 의도는 후자(後者)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쟁 당시의 총리 등에게 전쟁책임을 모두 전가함으로써 '일본의 상징'인 히로히토 당시 국왕을 '엄호'하려는 것이다.

'히로히토 일병 구하기'

그러나 지금의 국왕과 달리, 당시 히로히토 국왕은 전쟁을 실질적으로 지휘한 명실상부한 최고 통치권자였다. 아무튼 그럼에도, 일본은 중국측의 A급 전범 비판 논리를 역이용하여 이번 기회에 '히로히토 일병 구하기'를 시도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소 다로 외무장관의 3월 8일자 발언은 비단 야스쿠니 참배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히로히토 전 국왕의 전쟁책임을 A급 전범들에게 전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A급 전범에 집중된 중국정부의 야스쿠니 비판은 이번 기회에 수정되어야 한다. 중국정부의 논리를 따르고 있는 한국정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는 야스쿠니신사 그 자체를 문제 삼는 접근법이 필요하며, 히로히토 전 국왕의 전쟁책임을 끝까지 '추격'하는 접근법이 필요할 것이다.

'특A급 전범'인 히로히토 전 국왕이 청산되지 않는 한, 일본이 그 어떤 사과를 한다 해도 그것을 믿을 수 없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히로히토 전 국왕을 심판하지 않는 한, 남북한·중국 등은 일본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느슨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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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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