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로비와 골프파문, 역사는 되풀이되나

[정치 톺아보기 122] 야당의 공세·오락가락 해명·미묘한 여권반응

등록 2006.03.13 10:34수정 2006.03.15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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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이해찬 총리가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던중 머리를 긁적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역사는 되풀이되는 모양이다. 이해찬 총리의 부적절한 골프 파문과 그 전개과정이 김대중 정부의 이른바 '옷로비' 사건과 닮은 꼴이다.

우선 자고 나면 하나씩 불거지는 의혹과 해명이 비슷한 양상이다. '40만원 내기 골프'가 '100만원 내기 골프' 의혹으로 과장된 사실도 드러났지만, 해명의 상당 부분 역시 거짓으로 드러났다. 관련자들의 석연치 않은 해명과 말바꾸기가 오히려 의혹과 불신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오락가락한 해명뿐만 아니라 파문이 개각과 맞물리고 대통령의 해외순방 중에 증폭되었다는 점도 닮은꼴이다. 또한 악화된 여론에 기대어 야당이 국정조사와 특검수사를 요구하며 총공세를 펼치며 이를 정치 쟁점화하는 것도 닮은꼴이다.

닮은꼴 ① 개혁정부의 도덕적 고리를 노려라

옷로비 사건은 김대중 정부가 IMF 금융 위기를 어느 정도 수습해 나가던 1999년 5월에 처음 불거졌다. 외화 밀반출 혐의로 구속된 최순영 대한생명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가 당시 강인덕 통일부장관의 부인 배정숙씨 등을 통해 김태정 검찰총장 부인 연정희씨에게 수천만원대의 '옷로비'를 시도했다는 의혹 제기가 그 발단이었다.

그러나 그 배경은 97년 대선 때 국세청을 동원해 기업으로부터 대선자금을 강제모금한 이른바 세풍(稅風) 사건으로 위기에 몰린 한나라당이 99년 벽두부터 펼친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공세전략과 무관하지 않았다. 개혁을 표방한 정부의 도덕적 약한 고리를 치고 들어가는 일종의 보수 기득권 세력의 반발인 셈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이른바 '국회 529호실' 사건과 고관집 절도사건 등이다.

당시는 국회 제1당으로서 사실상 '집권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98년 9월 검찰의 중간수사결과로 밝혀진 세풍 사건의 주범 서상목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99년 4월 표결에서 부결시킬 때까지 7개월 동안 '방탄국회'를 5회나 열면서 질질 끌던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한나라당은 99년 벽두부터 국회 529호실이 '정치사찰을 위한 안기부 분실'이라며 이 곳의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그런 가운데 얼마 안 가서 이번에는 고관집 절도사건이 터졌다. 절도사건 피의자 김강룡이 유종근 전북지사의 서울관사에서 거액의 달러뭉치와 귀금속을, 김성훈 농림장관의 집에서는 고가의 미술품을 훔쳤다고 폭로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 사건에 대해서도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국회 529호실이 정치사찰을 위한 도청시설을 갖춘 안기부 분실이라는 한나라당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으며, 김강룡이 주장한 내용들도 일부 거짓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들은 개혁을 추진한 김대중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김대중 정부로서는 국정쇄신을 통한 민심 회복이 필요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5월 24일 17개부처 각료 중 11명을 교체하는 대폭 개각을 단행했다. 신임 장관 가운데는 검찰총장 재임중 국회의 탄핵소추 대상이 된 김태정 법무장관도 포함돼 있었다. 야당은 반발했다.

그런데 5·24 개각이 있던 바로 그 날, 외화 밀반출 혐의로 구속기소된 최순영 대한생명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는 98년 말 강인덕 전 통일부장관의 부인 배정숙씨와 김태정 법무장관(당시 검찰총장)의 부인 연정희씨가 옷값 수천만원의 대금결제를 자기에게 요구했으나 액수가 너무 커 거절했다고 '폭탄발언'을 했다.

닮은꼴 ② 솔직하지 못한 초기 해명이 의혹 키웠다

당초 이 사건은 이형자씨가 "배씨를 통해 연씨의 옷값 등 2400만원어치의 대납을 요구받았다"고 주장한 반면 연씨는 이를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해 처음에는 두 사람 사이의 '진실게임' 정도로 전개되었다.

또 이씨는 남편의 구속을 막기 위해 검찰총장 부인과 장관 부인들에게 수억원대의 옷을 선물했다는 소문이 나돌아 이미 청와대 사직동팀(경찰청 특수수사과)으로부터 내사를 받은 뒤였다.

그러나 사직동팀을 지휘하는 박주선 법무비서관이 내사결과 보고서를 김태정 검찰총장에게 보여주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옷을 구입한 시점과 장소 그리고 옷값 등을 둘러싸고 이씨와 고위층 부인들의 말이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잇단 말바꾸기로 서로를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우는 행태에 대한 국민여론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정권의 도덕성 문제와 신뢰의 위기로까지 확대되기 시작했다.

골프 파문도 이와 비슷하게 전개되는 양상이다. 이 총리와 그의 '부적절한 파트너들'은 골프 파문이 처음 불거졌을 때 사실대로 밝히고 사과했으면 될 사안인데도 골프모임의 성격, 주선자, 비용 부담 등을 밝히지 않아 온갖 의혹을 자초했다.

옷로비 당시에는 강인덕 전 통일부장관의 부인 배정숙씨가 잇단 말바꾸기로 의혹을 증폭시켰다면, 이번 골프 파문에서는 이 총리 비서실장을 지낸 이기우 교육부차관의 말바꾸기와 거짓 해명이 의혹을 증폭시켰다.

당사자들의 오락가락한 해명뿐만 아니라 파문이 개각과 맞물리고 대통령의 해외순방 중에 증폭되었다는 점도 닮은 꼴이다. 옷로비 파문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5·24 개각 뒤에 러시아·몽골을 순방 중이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3·1절 골프 직후 3·2 개각을 단행하고 현재 아프리카를 순방 중이다.

닮은꼴 ③ 개각과 맞물리고 대통령 순방 중에 확산

김대중 대통령은 해외순방 중에 옷로비 파문이 시끄럽자 김중권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김태정 장관이 로비를 받아 죄가 될 일을 했냐"고 물었다. 김 실장은 "그런 일은 없었다"고 답했다. 김 대통령은 "이 사람, 저 사람 다 나가라고 하는 것은 나를 무장해제시키려는 것이다"고 말해 사실상 이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당시 해외순방을 수행한 관계자에 따르면,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인데 정상외교 소식은 뒷전에 밀리고 국내 신문에는 연일 옷로비 파문이 대서특필되자 김 대통령은 심기가 불편했다.

해외순방 중에는 국내 문제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말아달라는 사전 요청에도 불구하고 현지 기자회견에서는 이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그러자 김 대통령은 낯빛을 바꾸며 다른 이야기를 했다. 불쾌감의 표시였다. 그리고 마침내 6월 1일 귀국 공항 기자회견에서 불쾌감이 폭발했다. 김 대통령은 옷로비 의혹 제기에 대해 '언론의 마녀사냥'이라고 일갈했다.

악화된 여론에 기대어 야당이 국정조사와 특검수사를 요구하며 총공세를 펼치며 이를 정치 쟁점화하는 것도 닮은 꼴이다.

한나라당은 10일 주요당직자 회의에서 이 총리의 골프로비사건을 규명하기 위해 ▲3·1절 골프 당사자들의 전화통화 내역 제출 요구 ▲야4당 합의로 국정조사 요구 ▲해임건의안 제출 ▲특검법 제출 등 4단계 절차를 밟을 것이라며 그전에 이 총리가 스스로 사퇴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단계별로 압박수위를 높여가겠다는 '지구전 전략'이다.

옷로비 의혹 때도 한나라당은 ▲고급옷 로비 의혹사건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 사건 ▲김강용 고관집 절도 사건 ▲3·30 재보선 당시 50억원 살포 의혹 사건을 4대 의혹 사건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국정조사와 특검제 도입을 강력히 주장했다.

김 대통령은 결국 ▲검찰 수사 ▲국회 진상조사 청문회 ▲헌정 사상 첫 특검까지 실시하는 홍역을 치른 끝에 사직동팀 내사보고서의 외부 유출이 문제되어 마침내는 박주선 법무비서관과 김태정 법무장관이 구속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두 사람은 나중에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명예를 회복하고 옷로비 사건은 '실체없는 해프닝'으로 끝나 언론의 과잉 보도가 비판대에 오르기도 했다(관련 기사 참조).

닮은꼴 ④ 반전에 반전... 오락가락 여권 대응과 야당의 총공세

옷로비 파문의 당사자인 김태정 법무장관와 골프 파문의 당사자인 이해찬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야당의 공세에 대한 여권의 인식과 대응 움직임도 닮음꼴이다.

옷로비 파문이 증폭되던 99년 5월말 당시 동교동계는 김중권 비서실장 등 이른바 '신주류'가 김대중 대통령의 입과 귀를 막고 있다고 비난했다. 동교동계는 5·24 개각으로 당내의 정치인 장관들이 물러나고 국민 여론의 불신이 큰 김태정 검찰총장이 법무장관에 기용된 것은 김중권 실장의 입김이 작용한 탓이라는 인식이었다.

그러자 연일 언론에는 '신·구주류 갈등설'이니 '청와대 언로가 막혔다'느니 하는 보도가 오르내렸다. 김대중 대통령은 해외순방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음날인 6월 2일 권노갑 고문과 한화갑·김옥두·최재승·설훈·정동채 의원을 청와대로 불렀다. 그리고는 이렇게 질책했다.

"야당이나 언론이 김중권·김태정을 공격하는 것은 나를 무장해제시키겠다는 의도다. 거기에 대통령 측근들이 편승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그러나 김태정 법무장관은 결국 여론에 밀려 16일 만에 중도하차했다. 6월 7일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이 점심시간에 폭탄주를 마시고 기자들에게 "검찰이 조폐공사 노조의 파업을 유도했다"는 요지의 '취중 폭탄발언'을 한 것을 계기로 김 장관은 경질되었다.

당시 민주당의 소장파를 대표했던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통일부 장관 시절에 "옷로비 사건의 교훈은 다름아닌 '민심'을 등져서는 정치도 통치도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사소한 옷로비 사건'이 정권의 안위를 뒤흔든 사건으로 변한 것도 결과적으로 민심을 등한시한 결과라는 얘기였다.

"금전수수보다 '패션쇼' '디너쇼'가 문제 아니었냐"

김대중 정부 시절에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현실론을 들어 "주가를 조작한 사실이 없으면 검찰수사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겠지만 국정조사에 가면 문제다"면서 "'옷 로비' 때도 금품수수는 없었지만 국민들에게는 '앙드레 김 패션쇼'와 '나훈아 디너쇼'가 더 문제 아니었냐"고 반문했다.

'금전 수수관계'가 드러나야 사건이 성립하는 검찰 수사와 달리 국정조사에서는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정치적 쟁점화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비록 검찰총장 부인이 '로비용'으로 받은 모피코트를 돌려준 것으로 나중에 확인되었지만 IMF 극복과정에 국민들에게는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하면서 고관대작 부인들은 함께 어울려 값비싼 모피 코트를 걸치고 패션쇼와 디너쇼에 몰려다닌 이미지를 연상케 한 것이 국민들로부터 정서적인 이반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노무현 대통령이 아프리카를 순방 중인 지금 여권 또한 이 총리의 거취 문제를 둘러싸고 미묘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당권파인 정동영계를 중심으로 이 총리 거취에 대한 '사퇴 불가피론'이 우세한 가운데 노 대통령 직계 의원들은 '유임론'을 고수해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골프 파문 초기에만 해도 '사퇴론'이 우세했으나 예상보다 높지 않은 사퇴 여론에 고무된 탓인지 청와대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유임론'이 전파되는가 싶더니, 골프 모임 참석자인 영남제분 대표의 주가조작 및 내기 골프 의혹을 계기로 '사퇴 불가피론'이 제기되는 등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총리의 거취 문제에 대해 "해외순방에서 돌아온 후 판단하도록 하자"고 유보한 상태다. 노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에 이병완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골프 파문에 대한 경위를 파악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를 포함해 비서실이 어떤 식으로든 관련 보고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내일 귀국하는 노 대통령의 '마지막 판단'이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지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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