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정당' 한나라당의 위기 탈출법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사죄는 하나 사퇴는 않는다?

등록 2006.03.21 09:49수정 2006.03.22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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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밖에 있는 이명박(왼쪽) 서울시장과 당을 떠난 최연희 의원.
당 밖에 있는 이명박(왼쪽) 서울시장과 당을 떠난 최연희 의원.오마이뉴스
최연희 의원은 사죄는 하나 사퇴는 않는다고 했고, 이명박 시장은 사과를 하면서도 (테니스 의혹이) 사실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말이 없다.

아예 말이 없었던 건 아니다. 어제 열린 의원총회에서 최 의원 등에 대한 비난 발언이 쏟아졌다고는 한다. 하지만 향후 대책에 대해 결론을 내린 건 없다. 그래서일까? 한나라당의 공식입장은 이것이다. "최 의원은 이미 당을 떠났고 이 시장은 당 밖에 있기 때문에 당이 언급할 위치가 아니다."

참 편하다. 그럼 남의 당 사람이었던 이해찬 총리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날선 공격을 했을까? 물론 공공의 문제이기 때문이었을 게다. 그럼 성추행 사건이나 황제테니스는?

답을 구할 이유조차 없다. 어떤 사안은 공공의 기준을 들이대고 어떤 사안은 당 기준을 내미는 이중 태도만 확인하고 넘어가자. 답을 구해야 하는 건 따로 있다. 한나라당은 왜 이런 비판을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나 몰라라' 하는 걸까?

웰빙 정당 의원들은 '독박' 대신 '보신'을 선호한다

박근혜 대표의 처지는 어제 이 코너를 통해 짧게나마 짚었으니까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자. 박 대표가 곤혹스런 처지에 빠져있다면 의원들이 나서 길을 열어줄 만도 할 텐데 왜 이조차 하지 않는 걸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꼬리표다. 자타가 공인하는 한나라당의 꼬리표는 '웰빙 정당'이다. 이게 문제다.


한나라당의 최고위원인 김영선 의원은 웰빙을 "우아하고 잘 나가는 귀족적인 모습"으로 규정했고, 정형근 의원은 "서민과 근로자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규정했지만 이것보다 더 중한 게 있다.

'웰빙'의 속성은 '오직 나만'이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게 웰빙이다. 웰빙이 실현된다면 굳이 궂은일에 팔 걷어부치고 나설 이유가 없다. 게다가 궂은일 정도를 넘어 자칫 '독박' 쓰는 일이라면 또 다른 웰빙 형태, 즉 보신에 주력한다.


이게 핵심이다. '오직 나만'의 정서가 한나라당을 모래알 정당으로 만든다.

이 문제를 집중 제기한 사람이 있다. 바로 김형오 의원이다. 김 의원은 지난해 11월 한나라당 의원들의 "전투력과 역동성이 떨어진다"며 그 이유를 "의원 배지를 뗀다 하더라도 돌아갈 자리가 있기 때문에 궂은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속성)"에서 찾았다.

근거도 제시했다. 한나라당 의원 중 서울대 출신이 45%, 연고대까지 합치면 64%다. 법조계·학계·관계 출신이 60%이며, 영남 지역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싹쓸이하고 있다.

당이 죽을지라도 나는 죽을 수 없다

한나라당 국가발전전략연구회와 수요모임은 17일 공동으로 '지방선거와 한나라당의 진로' 정책세미나를 주최했지만 자리를 끝까지 지킨 의원은 4명에 불과했다.
한나라당 국가발전전략연구회와 수요모임은 17일 공동으로 '지방선거와 한나라당의 진로' 정책세미나를 주최했지만 자리를 끝까지 지킨 의원은 4명에 불과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사정이 이러니 '사즉생'의 전투력이 나올 리 없다. 그런 절박성은 '밀리면 끝'이라는 위기감이 만연해야 나올 수 있지만 한나라당 의원 상당수는 그런 위기감하고는 거리가 멀다. 김 의원 말대로 금배지 떼도 따로 웰빙 할 곳이 있고,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당선이 보장된 지역이 있다.

웰빙이 실현된 마당에 성추행 의원하고 각을 세워 '인간성'(?)을 검증받을 이유가 없다. 유력 대권주자를 비판해 손해를 자초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당이 약간 손해 볼지는 모르나 나에게 미치는 화는 없다. 당과 나는 별개 운명체다. 당의 '사(死)'가 곧 나의 '사'는 아니다.

그러니까 이런 풍경이 연출된다. 국민대 김형준 교수가 '대선 필패의 법칙'이 작동되는 한나라당을 질타하던 토론회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킨 의원은 고작 4명. 이 숫자라면 이 토론회를 주최한 '국가발전전략연구회'와 '새정치수요모임' 소속 의원 대다수도 중간에 자리를 떴다는 얘기다.

그래서 진수희 의원은 이렇게 한탄했다. "매맞는 자리에서도 우리 당 의원들은 불성실했다."

불성실한 모습이 태도의 문제로 국한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오직 나만'은 불성실한 태도를 낳고, 불성실한 태도는 '지금 이대로'를 잉태한다. '수구' 또는 '보수'의 법칙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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